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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ug 31. 2018

때로는 맥주처럼, 때로는 시처럼 축구읽기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8월 26일 마흔두 번째 방송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올해는 유독 스포츠 이벤트가 많은 것 같아요. 올해 초에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시작해서 러시아 월드컵이 있었고,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죠. 


ann 생각해보면 정말 올해는 팀코리아 응원하느라 1년이 다 가는 느낌이긴 해요.

그래서 오늘은 스포츠에 대한 책을 가져왔는데요. 스포츠에도 종목이 워낙 다양하잖아요. 그중에서도 특별히 축구에 대한 책으로 골라봤습니다.


ann 축구도 빼놓을 수가 없죠러시아월드컵에서 세계 1위 독일을 상대로 이겼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는데요.

우리가 축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할 때 흔히 ‘공은 둥글다’고 하잖아요. 약팀이 강팀을 이길 수 있는 게 축구라는 스포츠의 특징이라는 건데요. 우리가 독일을 이겼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우리가 말레이시아에게 졌잖아요. 이런 걸 보면 정말 공은 둥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런 게 축구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하죠.


ann 그럼 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피버 피치>라는 책입니다.


ann 피버 피치작가가 누구죠?

닉 혼비라는 영국 소설가가 쓴 책인데요. 피버 피치는 몰라도 닉 혼비는 아시는 분 많을 거예요. ‘하이 피델리티’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하우 투 비 굿’ 같은 소설이 유명한 데요. 하이 피델리티는 강박적인 기록 수집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중에 존 쿠삭이 나온 영화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로 각색이 됐고요. 이런 식으로 닉 혼비의 소설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소설가가 됐습니다.     

ann 소설가가 쓴 축구 이야기군요소설가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저번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구팬이라고 했던 것도 기억나고요.     

그런 게 있는 거 같죠. 닉 혼비는 영국 프로축구팀인 아스널의 광팬인데요. 이 책은 자신이 아스널의 팬이 된 이유와 아스널과 함께 해온 순간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닉 혼비가 얼마나 유명한 아스널의 팬이냐면요. 22년 동안 아스널의 감독을 맡아왔던 아르센 벵거가 올해 물러났거든요.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는 이야기일 텐데요. 스포츠 매체들이 기사를 많이 썼잖아요. 그런데 세계 최대 스포츠 전문 매체인 ESPN에서 벵거를 떠나보내는 아스널 팬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칼럼을 실었는데요. 바로 이 칼럼을 닉 혼비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냥 단순히 축구를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자타공인 인정하는 거죠.     


ann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하게 이야기나눠볼게요.

벤 폴즈 파이브의 스모크입니다.


M1 ben folds five - smoke

https://youtu.be/L0e3TH1m02c


ann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먼저 영국 소설가 닉 혼비가 쓴 <피버 피치>. 어떤 이야기들이 있나요?     

이 책은 닉 혼비가 열한 살에 처음 축구장을 가본 이후 축구라는 스포츠, 그리고 아스널이라는 팀에 매료되고 그 이후로 아스널의 서포처로 살아온 생활을 풀어내고 있거든요. 그런 게 있죠. 소설가가 스포츠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 스포츠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로 방향을 튼다거나 거기에서 교훈적인 메시지를 끄집어내서 쓰는 책들도 있어요. 저는 그런 책은 읽다가 덮어버리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게 없어요. 왜 그럴까 하고 봤더니, 일단 닉 혼비의 삶과 축구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하나예요.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돼 있는 거죠.     


ann 축구와 하나된 삶이라는 게 어떤 건지 상상이 안 되네요.

영국 노동자 계층의 남자들이 축구에 쏟는 애정은 상상을 초월하거든요. 닉 혼비도 직업은 소설가지만 다를 게 없는 거죠. 닉 혼비가 아스널과 함께 좋아했던 하부리그 팀이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라는 곳인데요. 이 팀이 1978년에 상위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아요. 그 경기를 닉 혼비가 여자친구랑 친구들이랑 다 같이 보러가요.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승격이 되는 경기니까 얼마나 치열하고 또 보는 입장에서도 쫄깃쫄깃하겠죠. 그런데 경기 종료 20분 전에 상대팀이 먼저 골을 넣었어요. 그 순간 닉 혼비의 여자친구가 기절을 한 거예요. 너무 긴장한 채로 보다가 골을 먹으니까 놀라서 순간 정신을 잃은 거죠. 아무리 축구가 중요해도 여자친구가 기절했는데 병원을 가야 될 거 아녜요. 그런데 닉 혼비는 경기장을 지켜요. 친구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동안에도 경기장에 남아서 20분 남은 경기를 본 거예요. 그 경기를 응원하던 팀이 역전해서 이기거든요. 닉 혼비가 샴페인까지 터지고 나서야 여자친구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축구는 나를, 아내가 어느 순간에 아이를 낳는다 해도 병원에 함께 가지 않을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나는 아스널이 FA컵 결승전을 치르는 날 아이가 태어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나는 열한 살짜리 꼬마가 되어버린다. 축구가 성장억제제 역할을 한다고 했던 것은 진심으로 한 말이다.”


ann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자 입장에선 정말 구제불능인 남자친구네요.

본인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닉 혼비의 삶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인생이었거든요. 어릴 때 부모가 이혼을 하고 본인의 잘못이 큰 것 같지만, 여자친구들과의 연애도 쉽지가 않았고요. 소설로 성공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실업을 밥 먹듯이 했고요. 우울증이 심해져서 정신과 치료도 받고요. 그러는 와중에 버팀목이 되어준 게 바로 축구라는 스포츠였던 거죠.


ann 그저 재밌다고 축구장을 계속 찾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거네요.     

그렇죠. 삶의 어떤 순간에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닉 혼비가 찾은 건 축구였던 거죠. 이 책은 일기 같은 형식이거든요. 닉 혼비가 본 아스널의 경기를 한 경기씩 복기해보면서 그때 자신의 심경이나 처지를 같이 적고 있는 방식인데요. 자신의 인생이 우울하다고 하소연하기보다는 아스널이 형편없는 경기를 펼쳤다고 분노하거나 망연자실하거나 하는 식이예요. 앞에서 이야기했던 스포츠를 도구로 삼아서 인생의 교훈을 전달하려는 책과는 거리가 먼 거죠. 어떤 삶은 그 자체로 보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잖아요. 닉 혼비가 대단히 교훈적인 인물은 아니고, 그런 것과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축구라는 스포츠에 진심을 담아서 함께 하는 모습은 충분히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하죠.


ann 책밤지기도 스포츠 좋아하잖아요이 책을 보니까 야구장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던가요?

물론입니다. 기아 타이거즈가 올 시즌에 정말 형편없는 경기를 펼치고 있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어릴 때 타이거즈의 경기를 보게 됐고 좋아하게 돼버린 걸요. 닉 혼비가 책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한동안 아스널의 경기를 보지 않다가 오랜만에 경기장을 찾은 다음에 한 말인데요.

“나는 8월의 뙤약볕 아래서 비지땀을 흘리며 욕을 퍼부었고, 한동안 잠자코 잘 있던 예전의 불만이 몸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꼈다. 늘 딱 한 잔만 더 마셔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알코올중독자처럼,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응원하는 팀이 형편없이 지는 경기를 보면 다시는 안 오겠다고 다짐해놓고도 다음 경기에는 어쩔 수 없이 응원석에 앉아서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외치며 응원가를 부르기 마련이죠. 정말 이 책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ann 래 한 곡 듣고 조금 더 이야기해볼게요.

넬리 퍼타도의 아임 라이크 어 버드입니다.


M2 nelly furtado – I’m like a bird

https://youtu.be/roPQ_M3yJTA


ann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먼저 닉 혼비의 <피버 피치만나봤고요두 번째 책은 뭘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부제가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이고요.


ann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제목만 봐도 여자 축구를 다룬 책이란 걸 알 수 있네요.

재밌는 건 이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이 김혼비예요. 앞에서 소개해드린 닉 혼비랑 이름이 같죠. 우연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닉 혼비의 이름을 따서 지은 필명입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연재가 된 걸 모은 거예요. 연재를 할 때 본명이 아니라 필명을 썼는데, 어떤 이름으로 지을까 고민하다가 닉 혼비의 피버 피치를 생각해서 김혼비로 지었다고 하더라고요. 지어놓고 보니 혼비라는 이름이 어쩐지 한글 이름으로도 잘 어울리고요.


ann 닉 혼비만큼이나 김혼비 작가도 축구를 사랑하겠네요.

저는 이 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책만 보면 축구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강한 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이 분이 축구를 시에 비유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비유가 정말 적절해서 아, 정말로 축구를 좋아하고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비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ann 축구와 시가 어떻게 연결돼 있다는 거죠?     

다른 스포츠랑 함께 비교하는데요. 축구는 야구처럼 규칙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형식을 잡아주지도 않고요. 농구처럼 득점이 빠르게 이뤄져서 성취의 눈금을 바로바로 보여주지도 않고요. 형식도 촘촘하지 않고, 성취도 바로바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축구는 보는 사람이 알아서 적극적으로 숨은 맥락과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축구는 시와 비슷하다는 거죠. 시도 읽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행간을 파악해야 하잖아요. 그런 지적인 면이 축구의 아름다운 면모라는 거죠.     


ann 축구가 시와 닮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정말 그렇네요.     

그렇죠. 책을 보면 15개의 챕터로 돼 있거든요. 각각의 챕터가 축구용어로 돼 있는데요. 한 편 한 편의 에피소드가 다들 재밌고 흥미롭습니다. 저자가 직접 여자축구팀에 들어가서 경기를 치르면서 축구에 대해 알아보고 배워가는 이야기거든요. 응원석에 앉아서 보기만 하는 책이 아니라 경기장에 직접 뛰어들어가서 몸으로 부딪히는 이야기니까 훨씬 생생한 거죠.     


M3  웁스나이스 – here we go


ann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이야기하고 있어요이 책은 여자축구에 대한 이야기잖아요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남자 축구와는 조금 다른 게 있나요?     

우리가 사실 여자축구를 잘 모르잖아요. 올해 러시아 월드컵도 남자들의 스포츠였죠. 선수도 남자 감독도 남자 스태프도 남자, 유일하게 응원석에만 여자가 보이고. 그러니까 축구는 남자의 스포츠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 여자축구를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 거죠. 그리고 여자축구에 대해 아는 사람들도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기 쉽다는 게 작가의 지적인데요. 여자축구라고 해서 남자축구와 다를 거라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라는 거죠.      

ann 아무래도 우리가 주변에서 여자축구를 많이 접하지 못해서겠죠?

그렇겠죠. 이 책의 작가도 여자축구팀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알아봤는데 모집 글을 보지 못해서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하게 모집 글을 발견하고 지금의 팀에 합류하게 됐다고 하거든요. 사실 여자축구는 아마추어팀도 많지가 않고, WK리그라는 프로리그가 있지만 그 경기도 평일 저녁에만 하고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여자축구를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은 거죠.


ann 그래도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건 마찬가지라는 게 작가의 생각일 거 같은데요어떤 매력이 있다고 하나요?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매력이 있는 거죠.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예쁜 머리보다는 편한 머리를, 예쁜 몸보다는 강한 몸을 갖는 것으로, 몸과 축구 사이에 다른 욕망이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일대일 맨투맨의 관계처럼.’

우리가 여자가 축구한다고 하면 흔히 하는 말이 자외선 때문에 피부 관리는 어떻게 하냐, 살이 타는 거 아니냐,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정말 축구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 다른 욕망보다도 축구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앞서게 된다는 거죠.     


ann 사회에서 흔히 여자들에게 정해놓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전력질주하는 거네요.

그렇죠.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이렇게 축구를 정말 스포츠 자체로 좋아하는 여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 선수가 얼굴이 잘생긴 경우가 있으면 정말 최악이라고 한다네요. 정말 그 선수의 플레이를 좋아해서 좋아하는 건데, 얼굴 때문에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라는 거죠. 그래서 베컴을 좋아한다고 어디가서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여자축구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사실 비슷한 거죠.     


ann 어떻게 보면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여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깨는 일이기도 하네요.     

김혼비 작가가 인터뷰한 걸 보면 이런 말을 해요. 

“사회 전체로 보면 여자가 OO를 한다고? 라는 문장에서 OO에 들어갈 단어의 숫자를 줄여가는 것 자체가 사회운동일 수 있다. 우리 팀과 많은 여자 축구팀 동료들이 여기에서 ‘축구’라는 단어를 하나 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재밌고 흥미로운 책을 읽으면서 아마추어일지라도 여자축구팀이 걸어가는 길을 응원하는 것도 꽤나 의미있는 일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M4 maroon5 – three little birds

https://youtu.be/mUYsp5baM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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