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Sep 16. 2018

삶의 끝에 서있는 의사들의 에세이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9월 2일 마흔세 번째 방송은 의사작가들의 책을 두권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최근에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이 책을 쓰면서 작가로 데뷔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중에서도 주목받는 분들이 바로 의사입니다. 의사 작가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거죠.


ann 맞아요서점에 가보면 의사들이 쓴 책이 많더라고요최근에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있는데 이 책도 의사가 쓴 거죠?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인 김승섭 교수가 쓴 책인데요. 건강과 질병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라는 걸 다양한 사례로 보여주는 책이거든요. 한 번 꼭 읽어볼 만한 책이긴 합니다. 


ann 왜 이렇게 의사 작가의 책이 인기가 많은 걸까요?

일단은 우리가 잘 모르는 세계를 다루잖아요. 병원은 우리가 잘 가고 싶지도 않고, 잘 알려고도 하지 않는 곳이잖아요. 약간 터부시하는 그런 느낌이 있죠. 그런데 막상 병원 신세를 질 일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 세계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는 거죠. 그리고 의사 작가가 쓴 책을 읽다보면 약간 힐링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의사는 몸을 치료해주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분들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보니 읽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는 거죠.


ann 의사 작가의 책은 몸이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해준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오늘 처음 소개해드릴 책은 응급실 의사로 유명한 남궁인 작가의 <지독한 하루>라는 책입니다. 이 책도 말씀드린 것처럼 읽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ann 남궁인 작가는 소셜미디어에도 여러 글을 많이 올리고 있죠책은 어떤 느낌인가요?

책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과 비슷한 느낌인데요. 응급실에서 근무하면 매일 같이 많은 환자를 만나게 되잖아요. 그런 환자들을 치료하고 또 어떤 때는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회를 담담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내는 그런 책입니다. 남궁인 작가가 두 권의 에세이를 썼는데 이 책은 두 번째로 나온 책이고요.      


ann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하게 이야기 나눠볼게요.

재주소년의 밤새 달리다입니다.


M1 재주소년 – 밤새 달리다.

https://youtu.be/-YGujxE4RB0


ann 의사 작가들의 책 이야기하고 있어요먼저 남궁인 작가의 <지독한 하루만나보는데요어떤 이야기들이 있나요?     

사실 책에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눈길을 끌어당겨서 특별히 어떤 이야기가 재밌다, 좋았다 이렇게 소개해드리기는 힘들 것 같아요. 25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정말 책을 펼치고 단숨에 읽었을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했거든요. 읽다보면 삶과 죽음이라는 게 얼마나 백지장 한 장 차이인지에 대해서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ann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의사들이니까요.

그렇죠. 책에 보면 어린 남매가 사고를 당해서 응급실에 실려온 이야기가 나와요. 아이들이 5층 빌라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놀다가 방충망만 처져 있던 창 밖으로 밀려나온 거예요. 머리부터 떨어진 오빠는 즉사하고, 다리로 떨어진 여동생은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구했고요. 그래도 다리가 다 망가진채로 엉망진창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거죠. 저는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남궁인 작가가 이렇게 써요.

‘아이는 울거나 보채지 않고, 허공을 향해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아프다고 소리 지르거나 우는 아이는, 대부분 턱이나 눈 위가 조금 찢어진 경우다. 그 아이들은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며, 다만 불편하기 때문에 운다. 하지만 이렇게 살과 뼈가 튀어나가 버렸을 때는 소리도 지르지 않고, 일말의 고통도 호소하지 않는다.’

죽음이 바로 눈 앞에 왔다는 걸 어린아이도 직감하는 거죠.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그냥 입을 다무는 거예요. 아무리 아프고 고통이 심해도 말이죠.


ann 손가락만 살짝 베어도 아픈 게 우리 몸인데고통이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아프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군요.

그런 거 같아요. 응급실에 있으면 정말 다양한 환자가 찾아오기 마련이잖아요.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정말 다양한 종류의 병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병원에서 제일 먼저 거치는 관문이 응급실이니까요. 그중에서도 특별히 마음이 아픈 건 아무래도 아이들의 이야기죠. 앞에서 소개해드린 이야기처럼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남궁인 작가가 정말 분노한 건 아동학대 사례인 거죠.


ann 아동학대 사례도 책에 나오는군요.     

챕터의 제목이 ‘악마를 만나다’인데요. 생후 2개월 된 아이가 응급실에 실려왔는데 두개골이 온통 조각난 채로 들어왔다고 해요. 뭔가로 2개월 동안 계속 머리를 내려쳤다는 거죠. 치료를 위해 작은 두개골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데도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계속된 구타와 고통 때문에 드릴로 머리가 뚫리는 정도에는 움직임이 없었던 거예요. 아이의 아빠가 경찰에 잡혀가고 아이는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지만 사실 어느 것도 해결된 건 없잖아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게 의사의 일이지만, 이렇게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악인 앞에서는 의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거죠. 그런 무기력감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배어 있는데 정말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요.


ann 응급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올까요

남궁인 작가가 평소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을 보면 의료 현장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는데요. 책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나와요. 응급의학과는 의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과 중에 하나인데요. 그 이유가 안타깝죠. 단지 일이 많거나 밤을 새워야 하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 주취자들의 난동이나 폭언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곳이 응급의학과여서라는 겁니다.

남궁인 작가도 응급실에서 근무하면서 그런 일을 적지 않게 경험했다고 하는데요. 경찰을 불러도 웬만한 일이 아니면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고 해요. 그런 인식이 있는 거죠. 병원에서는 의사가 갑이고 환자가 을이기 때문에, 을인 환자가 조금 폭언을 하거나 난동을 부려도 이해해줘야 한다는 인식이죠. 이런 인식은 정말 잘못된 건데요. 의사가 다치면 환자도 다칠 수밖에 없겠죠. 응급실이나 의료진에 대한 폭언, 난동이 좀 더 강하게 처벌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ann 래 한 곡 듣고 조금 더 이야기해볼게요.

옥상달빛의 걸어가자입니다.


M2 옥상달빛 - 걸어가자

https://youtu.be/N9rSlHmX_qY


ann 의사 작가가 쓴 책들 만나보고 있어요두 번째로 이야기할 책은 뭔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병원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신경외과 의사인 김정욱 씨가 쓴 책인데요. 앞에서 소개해드린 <지독한 하루>가 무겁고 진지한 느낌이라면 <병원의 사생활>은 그보다는 조금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ann 책 표지를 봤는데 수술대 위에서 기록한 신경외과 의사의 그림일기라고 소개돼 있네요.

그림일기라는 말이 적절한데요. 저자인 김정욱씨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취미로 했다고 해요. 얼마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냐면, 지금 이 분이 일하는 곳이 성균관대 부속 삼성창원병원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서울에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가게 된 건데, 낯선 도시에 가면서 제일 먼저 검색해본 게 바로 화실이었다고 해요. 쉬는 날 가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 있는지부터 챙긴 거죠.


ann 그럼 이 책에는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실려 있는 거네요?

맞습니다. 모두 70여개 정도의 그림이 실려 있는데요. 표지에 실린 그림도 작가가 직접 그린 거고요. 글도 글이지만 이 그림들을 보는 것만 해도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세이에 쓴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그림을 직접 그리는 식인데요. 그림의 수준도 제가 보기에는 꽤나 높은 편이어서요.      


ann 이 책을 쓴 의사 작가는 신경외과 의사라고 했죠어떤 병을 치료하는지 잘 모르는 분도 있을 거 같아요.     

사실 저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신경외과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잘 몰랐는데요. 신경외과는 뇌, 척수, 말초신경에 관련된 외과적 수술 치료를 주로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병으로는 뇌종양이나 뇌출혈 같은 질병을 다루는 곳인 거죠. 김정욱 작가가 책에 ‘신경외과가 뭘 하는지 평생 모르고 사는 분들이 행복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뇌출혈이나 뇌종양은 정말 치명적인 병이니까, 모르고 지내는 분들이 행복한 일이라는 말에 절대 공감을 했습니다.      

ann 아까 이 책은 조금 가볍고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읽을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떤 이야기가 그런가요?     

환자의 이야기도 있지만 이 책은 작가 개인이 어떻게 의사가 됐고, 의사가 된 후에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거든요. 100일 동안 당직을 서야 하고, 당직이 끝나면 진정한 과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100일 당직기, 매주 금요일이면 교수와 그 아래 의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교수님이 끓여주는 라면을 먹으며 한 주를 정리하는 라면시간 같은 이야기도 소소한 재미를 주고요. 제가 재밌게 읽었던 건 신경외과 의사들이 금요일 밤에 마침 두어시간 짬이 나서  병원 밖에서 술을 한 잔 하기로 한 거예요. 크록스에 반바지, 허름한 티셔츠만 입고 의사들이 번화가로 나섰는데 친구가 예약해준 좋은 술집을 갔더니 복장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 거죠. 다들 잘 차려입고 나왔는데 자기들만 초췌한 모습이니까 결국 도망치듯 나와서 작은 호프집으로 가는 이야기인데요. 별 것 아닌데 저는 이 이야기가 너무 공감돼더라고요. 재밌기도 하고요. 의사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M3  자우림 – 영원히 영원히

https://youtu.be/ba7feV8L3rQ


ann 의사 작가들의 책 만나보고 있어요김정욱 작가의 <병원의 사생활이야기 중인데요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요?     

‘삶 끝에서 만나는 타인의 삶’이라는 챕터가 있는데요. 어느 날 어린 환자가 경막외혈종이라는 병으로 들어와요. 뇌를 싸고 있는 바깥 막과 두개골 사이에 피가 고이는 병인데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아이는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거죠. 뇌사 상태에 이른 건데요.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 기증을 위한 절차가 시작되거든요. 담당 의사가 아이의 부모에게 장기 기증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고요. 자신들의 자식이 가망이 없으며 장기를 기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겠어요. 그런데 그 말을 해야 하는 거죠.      


ann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데요. 다른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결국 환자의 부모가 동의를 하고 장기 기증도 이뤄지는데요. 에피소드 뒤에 붙어 있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에요. 김정욱 작가가 장기 기증에 대해 이렇게 씁니다.

‘삶의 끝 그리고 죽음 뒤에 이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사후 세계가 아니라 다른 이의 삶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이 죽음 뒤에 남겨진 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나는 많이 봐왔다. 성심껏 치료한 의사라면 장기 기증을 설명하는 것에도 당당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의사는 그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ann 삶의 끝 뒤에 이어지는 게 다른 이의 삶일 수도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장기 기증의 의미를 고스란히 잘 담고 있는 말.

맞아요. 이런 따뜻한 감성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림을 그리는 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책 곳곳에 따스한 감성이 묻어 있거든요. 의사라고 하면 차갑고 냉철하고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잖아요. 이 분은 그런 느낌은 아니겠구나 싶은거죠.  


ann 차갑고 냉철한 의사라고 하면 하얀거탑의 장준혁 과장을 빼놓을 수가 없겠죠.     

그렇죠. 책에도 장준혁 과장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외과의사 봉달희라는 드라마도 있었거든요.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차갑고 냉철하면서 실력은 최고인 의사라면, 봉달희는 장준혁처럼 천재는 아니지만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런 의사인 거죠. 그러면서 장준혁 같은 의사를 만나고 싶습니까, 봉달희 같은 의사를 만나고 싶습니까. 하고 김정욱 작가는 책에서 묻고 있거든요. 스쳐 지나가듯 나오는 대목인데도 가만히 고민해보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내가 원하는 의사는 어떤 의사일까, 이런 고민을 해보게 되는 거죠.     


ann 책밤지기의 결론은?     

어려운 거 같아요. 머리로는 봉달희 같은 의사가 좋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내가 아프거나 내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면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가 치료해주었으면 하기 마련이잖아요. 우리 모두는 언젠가 환자이고 보호자일 것이라고 김정욱 작가가 이야기하는데요. 우리는 어떤 의사를 원하나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M4 bruce springsteen – hungry heart

https://youtu.be/0My2AqPFpFg




매거진의 이전글 때로는 맥주처럼, 때로는 시처럼 축구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