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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Sep 16. 2018

명곡과 목욕탕, 술맛을 돋우는 최고의 안주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9월 9일 마흔네 번째 방송은 술맛 나는 두 권의 책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날씨가 조금 선선해졌죠. 유난히 더운 여름이 끝나고 이제 가을이 오는 것 같은 기분이라서 아주 행복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날이 선선해지면 생각나는 게 있죠? 바람 솔솔 부는 테라스에 앉아서 시원하게 맥주 한 잔, 아니면 선선한 밤공기에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기분까지 좋아지잖아요. 술 마시기 좋은 계절, 가을이 다가오는 걸 기념해서 오늘은 술맛 나는 책을 두 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술맛 나는 책저희 방송에서 몇 번 다룬 적이 있죠?

찾아보니까 작년 가을에도 같은 주제로 방송을 했더라고요. 이맘때면 역시나 술에 대한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고로 작년에 소개해 드린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과 소설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였습니다.


ann 두 권다 책밤지기가 좋아라했던 기억이 나네요오늘 소개해줄 책도 그만큼 좋은가요?

물론입니다.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mbc 기자인 조승원씨가 쓴 책인데요. 이분이 자타공인 술꾼입니다. 국가 공인 주류 자격증인 조주기능사를 취득했고, 2011년에는 직접 ‘술에 대하여’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고요. 그야말로 술에 대해서는 빠지지 않는 분인 거죠.


ann 어떤 책인지 궁금하네요.     

제목은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입니다. 부제가 ‘예술가의 술 사용법’이고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가, 그중에서도 뮤지션들과 술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입니다. 전설적인 팝과 록 뮤지션들이 우르르 등장하는데요. 오아시스, 밥 딜런, 존 레논, 이글스, 미카, 스팅, 레이디 가가, 재니스 조플린... 뭐 이름만 나열했는데도 엄청나죠.

ann 그런 대단한 뮤지션들의 술 이야기라고 하니까 기대되네요재밌는 이야기가 많겠죠?

음악과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웬만큼 음악을 들었다 하는 분들도 잘 모르는 디테일한 에피소드들을 찾아내서 소개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영국의 록 그룹인 오아시스는 멤버들이 다들 거칠고 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해요. 형제인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가 공연을 앞두고 술 취해서 싸우다가 공연이 취소되기도 하고요.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인데요. 하루는 오아시스랑 콜드플레이가 한 무대에 같이 서게 됐어요. 콜드플레이도 대단한 밴드지만 오아시스보다는 후배잖아요.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목을 풀면서 연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아시스의 노엘이 들어와요. 크리스가 계속 발성 연습을 하니까 노엘이 뭐 하냐고 물어요. 크리스가 “공연 앞두고 연습하고 있죠. 형님들도 연습 하시잖아요?”하고 되물어요. 그러니까 노엘의 대답이 걸작이에요.

“응 우린 공연 앞두고 연습 같은 거 안해. 우린 그냥 술 마셔.”     


ann 우린 그냥 술 마셔정말 대단한 술꾼들이네요.     

오아시스가 2009년에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공연 주최 측에 전달한 요구사항이 화제가 된 적도 있어요.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 뭘 준비해달라 이런 건데요. 어떻게 적혀 있었냐면, ‘페어리 컵케이크와 매콤함 코올슬로우, 멕시코 음식, 작은 전투함을 가라앉게 만들 정도의 술.’ 이렇게 쓰여 있었거든요.     


ann 작은 전투함을 가라앉게 만들 정도의 술이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죠??     

정말 재밌죠.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도 예전에는 대단한 술꾼으로 유명했거든요. 김 회장이 2010년에 언론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주량이야기가 나왔어요. 몇병이다 이렇게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자기가 평생 살면서 마신 술이 유조선으로 5~6척은 될 것이다라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렇게 마시고 살아 있는 게 가능하냐 이런 건데, 술꾼들의 위는 뭔가 남다른게 아닌가 싶어요.


ann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이야기해봅시다.     

오아시스의 원더월입니다.


M1 oasis - wonderwall

https://youtu.be/bx1Bh8ZvH84


ann 가을을 맞아서 술맛 나는 책 만나고 있어요먼저 뮤지션들의 술 이야기를 다룬 <열정적 위로우아한 탐닉>. 오아시스 말고 또 재밌는 뮤지션 이야기해주세요.     

이번에는 의외의 뮤지션인데요. 바로 밥 딜런입니다. 젊었을 때 밥 딜런도 술을 정말 좋아했다고 하거든요. 오아시스처럼 먹고 죽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와인이나 맥주를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여기저기 있고요. 록 그룹 U2의 보노가 기네스를 한 상자 들고 밥 딜런을 찾아가서 둘이 맥주를 마시면서 계속 대화를 나눴다는 일화도 자서전에 나오고요.

재밌는 건 밥 딜런이 위스키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위스키에 대한 술을 두 곡이나 만들었다는 건데요. 1963년에 녹음한 ‘더 문샤이너’라는 노래는 산골짜기에서 달빛을 받으며 몰래 밀주 위스키를 만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1970년에 발표된 ‘코퍼 케틀’이라는 노래도 밀주 위스키를 만드는 주조업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요.


ann 달빛을 받으며 밀주 위스키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뭔가 서정적인데요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답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죠. 가사도 정말 좋은데요. 이런 식이에요.

‘난 골짜기로 가고 있어 내 증류기에 앉아 있을 거야 위스키 마시고 죽지 않는다면 대체 뭐가 날 죽게 할까’

밥 딜런이 2010년에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대기실에 준비해달라고 한 목록이 정말 소박해요. 오아시스는 작은 전투함을 가라앉게 만들 술을 준비해달라고 했잖아요. 밥 딜런은 ‘생수 1병, 재떨이, 그리고 화이트 와인’ 이렇게 요청했대요. 뭔가 이런 것마저 낭만적이죠.


ann 술을 즐기는 모습에서 뮤지션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네요.

한 명 더 소개해드리면 한국에서도 정말 인기가 많은 팝스타인 미카도 대단한 술꾼입니다. 어떻게 아느냐면 술에 대한 노래가 정말 많아요. 미카의 노래 중에요. ‘Love you when i’m drunk’는 오직 술에 취했을 때만 너를 사랑한다, 술이 깨서 정신 차리면 너랑 끝이야. 이런 가사의 노래인데요. 왜 이런 가사를 썼냐고 물으니까 “도저히 현실에서는 이런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 노래로 만들어봤다”고 하더라고요.

‘닥터 존’이라는 노래도 있고, ‘relax, take it easy’라는 노래도 술을 마시고 만든 노래고요. 술을 정말 좋아하지 않고는 이렇게 술에 대해서 많은 노래를 만들 수는 없겠죠.


ann 미카도 술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겠죠?     

2009년 9월에 미카가 정규 2집의 첫 싱글을 발매했어요. 그리고 그날 밤에 트위터에 미카가 이런 글을 올립니다. ‘오늘 밤 어디어디 클럽에서 파티할 겁니다. 저녁 6시반부터 술값은 제가 다 냅니다. 거기서 봐요’

다들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6시반에 미카가 그 클럽에 나타나요. 밤 11시까지 모두 600명이 모여서 파티를 즐겼는데 어마어마한 파티였다고 합니다. 팬들이 미카와 함께 술을 마시고 떼창을 쉴 새 없이 부르고 한 거죠. 파티가 진행된 4시간 반 동안 나온 술값만 3400만원이었다고 하고요. 미카는 그걸 신용카드로 긁고 떠났다고 하네요.

미카와 술 덕분에 탄생한 명곡도 있는데요. 바로 아델의 롤링 인더 딥입니다. 미카랑 아델이 절친이라고 하는데요. 아델이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우울할 때 미카랑 와인을 마셨대요. 그러다가 아델이 갑자기 멜로디를 흥얼거렸는데 미카가 그걸 듣고는 대박이 날 거란 걸 깨닫고 반드시 곡으로 만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롤링 인더 딥이 된 거죠.


ann 이런 걸 보면 술의 순기능을 무시 못하겠구나 싶어요특히나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원천 같은 거 같죠.

맞아요. 그렇지만 뭐든 절제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책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책에 재니스 조플린이 나오거든요. 블루스의 여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1960년대 최고의 블루스 싱어죠. 재니스에 많이 비교되는 게 21세기 소울 디바인 에이미 와인하우스거든요. 둘 다 당대 최고의 재능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술과 약물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죠. 재니스 조플린이 워낙 술을 많이 마시니까 주위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을 거잖아요. 그래서 병원을 종종 가서 검사도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정상으로 나왔대요. 알코올 분해 능력이 일반인보다 월등하게 좋아서 정상으로 나온 거죠. 그걸 믿고 재니스는 더 술을 들이부은 거고요. 결국 끝이 좋지 않았죠.      


ann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재능을 낭비하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죠.     

그런 의미에서 책에 나오는 레이디 가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도 같은데요. 레이디 가가도 정말 술을 좋아하는 뮤지션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그녀가 2013년 11월에 공연 도중에 갑자기 금주 선언을 했어요.

“술과 마약 때문에 많은 예술가와 친구가 사라져가는 걸 봤기 때문에 오늘 밤 나는 여러분 앞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창의적으로 되기 위해 마약을 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술을 마시지 않을 겁니다. 난 마약 없이도 해낼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다들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ann 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레이디 가가의 Dope입니다.


M2 Lady gaga - Dope

https://youtu.be/lMyfd5w9kF8


ann 다가오는 가을을 맞아서 술맛 나는 책 만나고 있어요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뭔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낮의 목욕탕과 술>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ann 제목부터 느낌이 확 오는데요목욕탕따로 떨어뜨려놓고 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인데 모아놓고 보니까 뭔가 느낌있어요.

정말 그렇죠. 뜨끈한 물에서 몸을 착 녹이고 밖에 나와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딱 하는 그 느낌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죠. 책 제목부터가 딱 술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썼구나 하는 느낌이 오죠. 이 책의 저자가 정말 재밌는 분입니다.


ann 어떤 분이죠?

일본 작가인데요. 구스미 마사유키라는 분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군가 하는 생각이 들죠.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데요. 대표작이 바로 <고독한 미식가>입니다.      


ann 고독한 미식가드라마나 만화나 좋아하는 분이 정말 많죠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가 쓴 책이군요고독한 미식가는 얼마 전에 한국에서 촬영해서 인기를 끌기도 했죠.     

아, 제가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이기도 해요. 제가 맛집을 좋아하잖아요. 또 혼자 살다보니까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처럼 혼자서 밥을 먹거나 할 일이 많거든요. 그럴 때면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서 밥을 먹는거죠. 고독한 미식가랑 심야식당, 이렇게 두 편의 드라마를 애청합니다.      

ann 그런데 생각해보면 고독한 미식가에는 술을 마시는 장면은 별로 안 나온 거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작품 속에서 고로상은 술을 잘 못하는 캐릭터로 나오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원작자도 술을 잘 못하겠거니 했는데, 사실은 정반대였던거죠. 원작자인 구스미 마사유키는 정말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입니다. 이 책은 원작자가 직접 가본 목욕탕과 그 근처의 술집에서 낮에 술을 한 잔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요. 정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인데 막상 한데 모아놓으니까 기가막힌 조화를 자랑하는 거죠. 여기에 고독한 미식가 느낌의 탁월한 묘사가 더해지니까 술에 대한 이만한 예찬이 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M3  MIKA – relax, take it easy

https://youtu.be/RVmG_d3HKBA


ann 가을을 맞아 술맛 나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인 구스미 마사유키가 쓴 <낮의 목욕탕과 술>.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지도 좀 설명해주세요.     

모두 열 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각각 목욕탕 한 군데, 술집 한 군데 이렇게 나와요. 그중에서도 도쿄 진보초에 있는 우메노탕과 허름한 술집인 헤로쿠 이야기가 인상깊어요. 저자가 완전 초년병 시절에 원고를 냈는데 출판사 사장이 원고료를 돈으로 주지 않고 목욕탕에 데려가더랍니다. 한낮에요. 그래서 같이 목욕을 하고 바로 싸구려 술집에 데려가서 술을 샀대요. 돈이 없으니까 일단 맥주라도 사겠다 이런 거죠. 그런데 그날 마신 그 맥주 맛이 정말 기가 막혔다는 겁니다.      


ann 원고료 대신에 값진 경험을 한 거네요

그렇죠. ‘아, 그렇구나. 특별한 맥주 맛을 느끼게 해주려고 목욕탕에 데려간 거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리고 그 이후로 한낮에 목욕을 하고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 하는 걸 즐기게 됐다고 합니다. 


ann 이런 걸 보면 대단한 취미가 필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남들이 뭐라든 나만의 의식 같은 게 있으면 힘든 세상살이도 견딜만한 게 아닌가 싶고요.

제 생각도 그래요. 한낮에 목욕을 즐기고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요즘에 유행하는 ‘소확행’이 생각나기도 하거든요. 목욕하고 맥주 한 잔 마시는 데 큰 돈이나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별거 아니지만 소중한 나만의 취미, 세리머니가 있다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ann 이 책을 읽을 땐 꼭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읽어야겠어요.     

그렇죠. 맥주의 맛에 대한 묘사가 정말 재밌거든요. 한낮에 목욕을 하고 맥주를 한 잔 마시는 걸 이렇게 묘사하는데요. 

‘지금 맥주는 내 몸 안으로 무혈입성을 달성했다. 나의 모든 세포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열광한다. “맥주 만세!” “맥주 만세!” “임금님 만세!” “임금님 만세!”’

너무 재밌는 묘사죠. 낮에 목욕을 하기 힘든 직장인 분들은 밤에 퇴근하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맥주 한 캔 준비하고 이 책을 펼치면 딱일 거예요.      


M4 보드카레인 - 심야식당

https://youtu.be/rsCBMX7Aj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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