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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Oct 06. 2018

여행에서 두 번 다시란 없으니까

소설가의 여행기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9월 30일 마흔일곱 번째 방송은 소설가의 여행기 두 편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이제 10월이잖아요. 전국 산마다 단풍이 가득 물들고요. 여행하기 좋은 때죠. 10월 20일부터는 가을 여행주간이라고 해서 국내 여행객을 위한 할인 행사도 한다고 하고요. 가을이 지나기 전에 여행 한 번 다녀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ann 오늘은 여행에 대한 책을 준비하셨군요책밤지기는 올 가을에 여행 계획 중인 게 있나요?

저는 11월 초에 동해 쪽으로 다녀올까 생각 중입니다. 속초나 강릉, 양양 같은 곳은 여러 번 가봤는데 동해시는 가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바다가 정말 예쁘다고 해서 주말에 다녀와 볼까 하고 있고요. 캠핑 다니는 친한 형과 함께 설악산으로 캠핑을 다녀올까도 싶고요. 어쨌거나 날씨 좋을 때를 놓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ann 그렇군요그럼 오늘 소개해주실 여행에 대한 책은 어떤 건가요?

저희가 여행에 대한 책을 한두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주제를 ‘소설가의 여행’으로 잡아봤습니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두 명이 쓴 여행 산문집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소설은 묘사가 중요하잖아요. 이분들이 쓴 책을 읽고 있으면 절로 여행지의 풍경이 떠오르고 나도 여행을 가야겠다 싶은 마음이 듭니다.


ann 첫 번째 책은 뭔가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소설가 김연수의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입니다. 여행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잡지인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라는 게 있거든요. 여기에 김연수 씨가 연재한 에세이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낸 겁니다. 지난 여름에 출간된 책인데요. 저는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습니다.

ann 책밤지기가 김연수 작가를 많이 좋아하잖아요여행기는 소설과 또 다른가요?

그렇죠. 저는 김연수 작가를 거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보거든요. 하루키와 동급으로 글을 잘 쓴다는 것도 있지만, 두 분의 생활이나 삶이 어쩐지 모르게 닮아 있는 것도 있어서 그래요. 하루키도 여행기를 소설만큼이나 많이 쓰거든요. 그래서 김연수 작가의 이번 책을 굉장히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기도 하고요.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빌 브라이슨이나 폴 서루 같은 작가가 쓴 여행기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소설 같아서라고요. 서사가 있거나 사람이 나오는 여행기를 좋아한다는 말인데요. 김연수 작가의 여행기를 보면 이런 느낌이 있거든요. 소설과 다른 듯, 또 닮아 있는 여행기죠.     


ann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네요노래 한 곡 듣고 이야기 자세히 해볼게요.     

김동률의 출발입니다.


M1 김동률 - 출발

https://youtu.be/xgvckGs6xhU


ann 소설가의 여행기김연수 작가의 <언젠가아마도이야기 중입니다어떤 이야기들이 있나요?     

이 책은 김연수 작가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어떤 한 곳을 가서 쭉 쓴 글이 아니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4년에 걸쳐서 다닌 여행에 대한 글을 모은 거죠. 한국에서도 순천, 여수, 부산, 대구 같은 지역도 나오고요. 해외에서도 몽골,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태국, 이란, 일본, 중국 등 정말 다양한 나라를 다녀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ann 어떤 여행지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었나요?

우리가 흔히 여행기라고 하면 생각하는 여행지에 대한 사소한 정보들은 별로 없어요. 대신에 여행지에서 느낀 김연수 작가의 사색과 고민이 책에 주로 담겨 있거든요.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도 김연수 작가의 생각들이라는 거죠. 몇 가지 부분이 있는데요. 호텔이 왜 외로운 공간인지에 대한 부분이 그중 하나예요.


ann 호텔이 외로운 공간이다어째서요?

중국 선양을 여행할 때의 이야기를 하는데요. 김연수 작가가 소설을 쓰려고 중국 연길에서 9개월 동안 체류한 적이 있어요. 그걸 끝내고 한국에 오기 전에 잠깐 며칠 선양의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거죠. 그런데 소설도 다 쓰고 외딴 도시에서 혼자 호텔방에 앉아서 할 일이 마땅치 않은 거예요. 그래서 며칠 동안 혼자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아무 말도 할 일이 없고요. 그러면서 김연수 작가가 이렇게 적습니다.

“호텔은 왜 외로운 것일까? 그건 모든 호텔이 도시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시 한가운데 있다는 건 불빛의 한가운데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창으로 늘 불빛이 드리워진다.”


ann 호텔이 외로운 건 도시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도 생각나고요멋진 표현이네요.  

그렇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할 때 나오는 표현도 인상적인데요. 이 여행기는 제목이 ‘모든 삶을 다 살 수 없으니 나는 연필을 사겠다’ 에요.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죠. 실제로 김연수 작가가 여행지에 가면 꼭 하는 일이 현지의 문구점을 찾아서 필기류를 사는 거라고 하거든요.


ann 다들 그런 습관이 있죠해외여행 가면 나만의 물건을 정해서 모아오는 분들

저 같은 경우에는 엽서를 모으는데요. 제 친구 중에는 소주잔 크기의 작은 잔을 모으는 친구도 있고요. 김연수 작가는 연필 같은 필기구를 모으는 게 그런 습관인 거죠. 상틒페테르부르크에서도 가장 큰 문구점과 두 번째로 큰 문구점을 보고 필기구를 산 일화가 나오고요. 다들 박물관이며 미술관, 뷰포인트를 찾아서 여행 다니기 바쁜데 문구점을 찾아다니는 소설가의 모습이라, 어쩐지 잘 어울리기도 하죠. 현지에서 적당한 문구점을 못 찾으면 머물던 호텔의 연필이라도 챙겨온다고 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재밌는데요. 호텔 연필을 가져올 때는 내가 가진 여분의 연필과 바꿔놓는 것이 마땅한 예의라 그렇게 했다, 고 적습니다.     


ann 호텔 연필을 가져올 때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거군요확실히 자신만의 여행 철학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연수 작가라서 특별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자신만의 여행 철학이 있으니까 특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여행을 왜 떠나는지 여러 이야기를 하잖아요. 쇼핑하러 가기도 하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만들러 가기도 하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찾은 김연수 작가만의 답은 이거예요.

“여행에서 두 번 다시란 없으니까, 다시 왔을 때 나는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닐 테니까.”

여행은 우리를 적어도 한 뼘 정도는 성장시켜주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뼘이 될지 반 뼘이 될지 세 뼘 네 뼘이 될지는 각자에게 달린 거겠지만, 어쨌거나 발판은 우리 옆에 있는 거죠. 


M2 짙은 – feel alright

https://youtu.be/w_veh407BkY


ann 소설가의 여행기먼저 김연수 작가의 <언젠가아마도이야기했고요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뭔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ann 제목에서 작가도 나오고 어디를 여행한 지도 나오는군요.

맞습니다. 정유정 작가 좋아하는 팬이 아마 정말 많을 텐데요. <7년의 밤>이나 <28> <종의 기원> 같은 한국형 스릴러의 개척자 같은 분이죠.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보면 굉장히 묘사나 상황 전개가 치밀하고 꼼꼼하고 그렇거든요. 도대체 이런 작가가 쓴 여행기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하면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ann 정유정 작가가 여행기를 쓴 적이 있었던 건 몰랐어요언제 나온 책이죠?

2014년에 나온 책인데요.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인 <28>이 2013년에 나왔어요. 그런데 28을 다 쓰고 나서 정유정 작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부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돼서 무기력해진 상태가 됐다고 해요. 직장인들도 많이 겪는 번아웃 증후군 같은 게 정유정 작가를 찾아온 거죠. 이럴 때 뭔가 새로운 활력소가 될 만한 걸 찾게 되잖아요. 정유정 작가에게는 여행, 그리고 히말라야가 바로 그 새로운 활력소였던 거죠.     

ann 그럼 소설이 나오고 난 후인 2013년에 떠난 여행이었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이 여행이 얼마나 대단한 결심이었는지를 우리가 이해하고 읽어야 되는데요. 해외여행이 요즘은 자유롭잖아요. 여권 없는 사람 찾는 게 더 힘들 정도죠. 그런데 정유정 작가는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까지 여권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반도를 떠나는 여행을 다닌 적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여행기의 첫 시작은 구청에 가서 여권을 신청하는 거고요. 여행을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남편을 어렵게 설득하고, 후배인 김혜나 작가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하고. 그렇게 생전 처음 한국 땅을 떠나서 가는 첫 해외여행지가 히말라야인 거죠.     


ann 첫 해외여행지가 히말라야사실 히말라야는 여행이라기보다는 거의 산행 아닌가요.     

물론이죠. 정유정 작가가 택한 코스가 안나푸르나 환상종주라는 트래킹 코스거든요. 히말라야 산맥 중부에 있는 안나푸르나 영봉을 끼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한 바퀴를 도는 트래킹 코스인데요. 해발 5416미터의 쏘롱라패스라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 난코스예요. 5416미터면 한라산 두 개를 더한 것보다 높잖아요. 그런 트래킹 코스를 17일 동안 종주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코스인 거죠.     


ann 이런 트래킹 코스를 번아웃 증후군의 해결책으로 택한 게 정말 정유정 작가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유정 작가는 스스로를 링 위에 선 파이터로 여기더라고요. 링 위에서 싸울 힘이 떨어졌으니까 쉬는 게 아니라 링 위에서 계속 싸울 수 있는 이유를 찾으려고 한 거죠. 진짜 파이터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고요. 마침내 쏘롱라패스를 정복하고 나서 정유정 작가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었대요.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나 자신과 싸울 수 있을까, 하고요. 그때 이런 대답이 마음속으로 들렸다고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고요. 이런 영적인 체험을 위해 사람들이 그 힘든 길을 뚜벅뚜벅 걸으려 히말라야로 향하는 것도 같아요.


M3  ADOY - Young

https://youtu.be/zUgpD0tW1rI


ann 소설가의 여행기 이야기하고 있어요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이야기 중인데요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이 책은 앞에서 소개해드린 김연수 작가의 <언젠가, 아마도>와는 또 정반대의 매력이 있는데요.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를 걸으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정말 디테일하게,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김연수 작가의 여행기가 사색 위주라면 정유정 작가의 이 책은 관찰과 묘사 위주인 거죠. 두 작가의 특색이 확 드러나는 것 같아서 재밌기도 하고요.     


ann 어떤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나요?

트래킹을 떠난 지 열흘째에 드디어 정유정 작가 일행이 쏘롱라패스 정복에 나서거든요. 전날 숙소였던 쏘롱페디가 해발 4450미터에 있는데 쏘롱라패스는 5416미터에 있어요. 무려 1000미터를 한번에 올라야 하는 거죠. 그냥 생각하기에 1000미터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4500미터에서 5500미터를 가는거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거죠. 거기다 열흘 동안 트래킹을 하면서 고산병에다 음식도 제대로 맞지 않고,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에서의 도전이니까요.

마침내 쏘롱라패스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의 묘사가 저는 정말 공감했어요. 정유정 작가가 이렇게 적거든요.

“언제부터인가,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시선은 노란 카고백에만 붙박여 있었다. 그것이 풍선처럼 보이면 아등바등 따라가고, 카고백으로 보이면 숨을 골랐다.”


ann 앞서 가는 사람의 카고백만 보게 되는군요. 히말라야의 그 아름다운 풍경은 하나도 볼 수가 없고요.

저도 한라산이나 지리산을 갈 때 이런 경험이 있거든요. 고개만 돌리면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지는데 너무 힘들어서 도무지 옆을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앞에 가는 사람만 놓치지 않고 쫓아가는 본능만 남은 거죠.

또 인상 깊었던 건 여행지에서의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예요. 히말라야 트래킹이란 게 정말 몸도 피곤하고 쉽지 않은 건데도 정유정 작가가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자요. 아무래도 고산병 증세인 두통도 있고, 잠자리가 불편한 영향도 있었겠죠. 아마도 이런 경험 하신 분들도 많은 거예요. 그런데 같이 여행을 간 김혜나 작가는 잠을 아주 편하게 잘 자니까 그걸 보고 정유정 작가가 어느 소설에 나오는 구절 하나를 떠올립니다.

“잠을 잘 수 있는 사람과 잠을 잘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종을 갈라놓는 중대한 경계 가운데 하나다.”     


ann 여행지에서의 불면증정말 정유정 작가의 여행기는 세세한 묘사나 상황 설명이 공감이 많이 가네요.     

제 주변에도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온 지인이 몇 명 있는데요. 다들 한 번 가보고 나서 하는 말이 또 가겠다에요. 그만한 매력이 있는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고요. 정유정 작가의 이 책은 히말라야 트래킹을 준비하는 분이 있으면 실제로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가이드북 역할도 할 수 있거든요. 워낙 꼼꼼하게 적혀 있으니까요. 정유정 작가를 좋아하거나 히말라야 트래킹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M4 페퍼톤스 – 긴 여행의 끝

https://youtu.be/ban-n5B7S5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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