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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Sep 23. 2018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9월 23일 마흔여섯 번째 방송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작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지금 아직도 귀성길, 귀경길에 있는 분들도 제법 있을 것 같네요. 집에서 가족, 친지들끼리 모여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 같고요. 추석이잖아요. 일년에 딱 두 번만 있는 명절. 그만큼 소중하고 행복하게 보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은 경우가 많죠.


ann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명절이 마냥 행복하기는 어렵다는 얘기죠?

그러니까요. 뉴스들 보면 추석 같은 명절 이후에 부부싸움도 늘고 아예 이혼을 하는 사람들도 평소보다 많아진다고 하고요. 가족, 친지들이 다 모이는 자리니까 소중한 만큼 아무래도 부담감도 커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지고 그런 게 있을 것 같아요. 특히나 결혼한 부부들을 보면 아내분들이 일이 몰리고 스트레스도 많아지고 하니까 많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죠.


ann 정말요즘엔 조금 나아졌다고 해도 명절 때마다 음식이며 청소며 하느라 어머님들 쉴 틈이 없죠.

저는 명절에 가족, 친지들이 다같이 모여서 서로 얼굴도 보고 안부도 묻고 하는 게 참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부담을 온통 아내, 어머니, 이렇게 여자들한테만 지우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좋은 문화까지도 같이 욕을 먹는 거죠. 올 추석에는 방송 들으시는 분들은 가족이 다 같이 음식도 준비하고 뒷정리도 하고 그렇게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소개해드릴 책을 준비했습니다.


ann 어떤 책들인가요앞부분만 들어서는 내용이 짐작이 안 되는데요?

조금 무거운 내용의 책들이기는 한데요. 그래도 최대한 덜 무겁게 소개해드릴게요. 주제를 이렇게 잡아봤어요. ‘있을 때 잘하자’. 옆에 있는 아내, 엄마가 어느 날 없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크겠어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잖아요.


ann 아내와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수 있는 책인 건가요?

그렇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두 권의 책은 아내와 사별한 이후에 작가들이 쓴 책입니다. 아내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를 세계적인 작가들이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거든요.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저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졌는데요. 아내나 엄마의 소중함을 평소보다 훨씬 크게 느껴야 마땅한 추석 명절을 맞아서 특별히 골라봤습니다.     

ann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네요첫 번째 책부터 소개해주세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영국의 유명 소설가인 줄리언 반스가 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입니다. 줄리언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받았고, <플로베르의 앵무새> <내 말 좀 들어봐> 같은 소설도 굉장히 유명한데요. 줄리언 반스의 책을 보면 항상 모든 책이 ‘팻에게 바친다’라는 헌사로 시작하거든요. 이 팻이 바로 반스의 아내인 팻 캐바나입니다. 팻 캐바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영국에서 손에 꼽히는 문학 에이전트였거든요. 작가와 출판사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이죠. 1979년에 반스와 캐바나가 결혼했는데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부부였다고도 하네요.     


ann 그런 아내가 먼저 죽은 거군요?  

맞습니다. 2008년 10월에 아내가 죽게 되는데요. 길을 걷다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알고 보니 뇌종양이었던 거죠. 쓰러지고 37일 만에 죽게 됐는데요. 30년을 넘게 함께 살다가 하루아침에 아내를 잃은 거잖아요. 이 책은 그 상실에 대해 기록한 책입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이야기 자세히 해볼게요.

이적의 빨래입니다.


M1 이적 - 빨래

https://youtu.be/YeOzeRrRKxc


ann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작가들의 이야기먼저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만나보고 있습니다.

줄리언 반스와 아내인 팻 캐바나가 영국 문단의 대표적인 금슬 좋은 부부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으니 사람들이 다들 얼마나 관심을 가졌겠어요. 그런데 반스는 입을 다뭅니다. 아내에 대해서는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고, 질문이 들어와도 답도 하지 않고요. 그저 묵묵하게 소설만 계속 썼거든요. 그러다가 5년이 지나서 갑자기 이 책이 나온 겁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원제는 ‘levels of life’고요. 삶의 층위들 정도로 번역이 되겠죠.


ann 어떤 책인가요아내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면요. 책이 세 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우선 1부는 19세기 후반에 기구를 타고 실제로 하늘을 올랐던 세 명의 실존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도 아니고 일종의 르포 문학 같은 방식이고요. 2부는 이 실존인물 가운데 남녀 두 명이 서로를 사랑했다고 가정하고 쓴 허구적인 소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부가 줄리언 반스가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아내를 잃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거고요.


ann 1, 2부와 3부는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네요?

원제가 삶의 층위들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1부에서 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르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하늘의 이야기죠. 2부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지상의 이야기고요. 그리고 마지막 3부는 죽어서 땅에 묻힌 아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가는 지하 세계의 이야기가 되는 거죠. 말 그대로 우리 인생의 순간들을 하늘, 지상, 지하의 세 단계로 구분해서 풀어낸 겁니다. 물론 이 책의 방점은 마지막 3부에 있고요.


ann 세계적인 작가다운 구성이라는 생각이 드네요오늘은 아내를 떠나보낸 작가들의 이야기니까, 3부에 대해서 좀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아내를 갑자기 잃고 나서 반스가 처음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고 해요. 세상 사람들의 무심함에 대한 분노요. 반스가 이렇게 적거든요.

“세상이 그녀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하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잖아요.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반스가 늦은 밤에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데 택시 기사가 이런 말을 해요.

“아내분은 주무시고 있겠네요?”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아무런 악의도 없이 오히려 친절한 관심을 표시한 걸 수 있죠. 하지만 이 말이 반스에게는 정말 뼈아프게 다가오는 거예요. 반스가 마음속에 일렁이는 여러 감정을 간신히 다스리면서 이렇게 답을 해요.

“그러면 좋겠네요.”


ann 그러면 좋겠네요듣기에 따라서 정말 여러 의미를 가진 말이네요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가 느껴지는 대답.

그렇죠. 저는 책으로 읽는 건데도 줄리언 반스가 얼마나 상심했는지가 느껴졌습니다. 그만큼 아내의 빈자리가 컸다는 거겠죠. 책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서 소개를 해드릴게요. 반스가 세상 사람들을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하는데요.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 시절 세상은 노골적이게도 섹스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나중에는 사랑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 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로 세상은 슬픔을 견뎌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ann 슬픔을 견뎌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반스는 슬픔을 견뎌내지 못한 쪽인 건가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나 봅니다. 줄리언 반스가 아직 젊은 작가이던 시절에 아내를 잃은 육십대 남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적이 있어요. 그 책의 한 대목을 반스가 자신의 아내의 장례식에서 읽었는데요. 그 대목을 잠깐 읽어드릴게요.

“아내가 죽을 때 당신은 당신의 사랑 속에서 검증을 받는 기분이다. 당신은 그 검증을 통과한다. 이것은 사랑의 모든 과정의 일부이다. 그런 후 광기가 찾아온다. 그다음엔 고독이 찾아온다. 사람들은 당신이 그 아픔에서 벗어나게 될 거라고 말하고 실제로도 벗어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터널을 빠져나와 영국 해협을 향해 내닫는 기차처럼 벗어나는 게 아니다. 기름막을 뒤집어쓴 갈매기 같은 꼴로 벗어나는 것이다. 당신은 한평생 타르 범벅이 된 깃털에 뒤덮여 살 것이다.”


ann 아내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지 느껴지는 표현이네요..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김사월의 누군가에게 입니다.


M2 김사월 - 누군가에게

https://youtu.be/11mxnvHowTY


ann 아내그리고 엄마라는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 일깨워주는 책들을 살펴보고 있어요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어떤 책인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아내의 빈 방>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ann 아내의 빈 방제목부터 슬프네요이 책은 어떤 작가가 쓴 건가요?

저희 방송에서 몇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소설가이자 미술비평가로 유명한 존 버거와 그의 아들인 이브 버거가 함께 만든 책입니다. 존 버거의 아내였던 베벌리 밴크로프트 버거가 2013년에 눈을 감았거든요. 작가이자 화가였던 존 버거와 그의 아들인 이브 버거는 아내이자 엄마를 잃고 나서 상실에 빠져 있다 그녀를 추모하는 글과 그림을 엮어서 짧지만 묵직한 추모집을 냅니다. <아내의 빈 방>이 바로 그 추모집이고요.


ann 존 버거도 지난해 세상을 떠났죠사랑하는 아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그런 영향이 분명 있었을 것 같아요. 먼저 이 책이 어떤 책인지부터 간단하게 설명드리면요. 작가 설명과 인용 표기까지 다 해도 40페이지 정도 되는 굉장히 짧은 책인데요. 그마저도 존 버거나 이브 버거가 직접 찍거나 그린 사진, 삽화가 많아서 글의 분량만 놓고 보면 금방 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쳐보면 그게 쉽지가 않아요. 


ann 40페이지짜리 책인데 금방 읽을 수가 없다왜일까요? 

페이지 터너라는 말을 쓰잖아요. 큰 고민 없이 쉽게 쉽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볼 수 있다는 뜻인데요. 이 책은 양은 짧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담겨 있는 이야기와 감정이 결코 가볍지가 않거든요. 존 버거의 아내이자 이브 버거의 엄마를 떠나서 베벌리라는 한 사람의 일생이 이 짧은 책에 응축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ann 어떤 표현이 그렇게 인상 깊었나요?  

책을 보면 이런 질문이 나와요.

“당신 옷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사랑하는 이가 죽은 후에 따라오는 이 질문을,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은 집에서 하고 있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후에 그 사람이 남긴 물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건 정말 다들 몇 번쯤은 맞닥드리는 질문이잖아요. 존 버거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 거죠.     


ann 그렇죠계속 간직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누굴 줄 수도 없고그런 고민이 되죠.

그렇죠. 물론 옷을 다 간직할 수도 없으니 조금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조금은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하고 조금만 간직하고 그런 식으로 해야겠죠. 존 버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이렇게 적습니다.

“대답은 분명하지만, 그 질문은, 아무 대답도 허락하지 않는 은밀한 의문처럼 가까운 곳에서 계속 떠오른다오. 당신 옷 몇 점을 이 글에도 걸어 두겠소.”     


ann 당신 옷 몇 점을 이 글에도 걸어 두겠소정말 아름다운 표현이네요. 

존 버거의 다른 글들이 그렇듯이 이 책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내거든요. 그런데 그런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 정말 소중한 순간들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중요한 이유가 이런데 있는 거겠죠. 그런데 우리는 일상 속에서 그런 시간의 소중함을 자주 까먹고 지나가곤 하는 거고요.


M3  아이유 – 한낮의 꿈

https://youtu.be/GaR7hwuBgeA


ann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작가들이 쓴 추모의 글존 버거의 <아내의 빈 방이야기하고 있어요책에서 또 좋았던 부분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아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존 버거는 어느 글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는데요. 이런 글입니다.

“당신이 내게 말했지.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으면 판에 박힌 말과 죽은 날짜 같은 것으로 나를 가두지 말고 내가 잠든 곳의 흙을 한 줌 떠 주세요. 그럼 아마도 한 줄기 풀잎이 당신에게 죽음은 무언가를 또 하나 심는 것에 불과함을 알려 줄 테니.”          


ann 이야기를 들어보면 존 버거는 줄리언 반스와 다르게 아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한뭔가 정화한 것 같기도 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사람들이 저마다 슬픔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방법이 다르잖아요. 줄리언 반스와 존 버거의 책은 그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상황 자체는 둘 다 다르지 않으니까요. 존 버거도 아내의 빈자리를 담담하게 돌아보는 것 같지만 그 빈자리를 다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모습도 보이거든요. 어쩌면 자신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더 담담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도 같고요.


ann 오늘 이 책들을 고른 이유가 있을 때 잘하자옆에 있는 아내그리고 남편도 다를 건 없겠죠내 옆자리를 지켜주는 사랑하는 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자는 계기였는데요예상했던 대로 된 것 같나요?

아무래도 책의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너무 슬펐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드는데요. 그래도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빈자리는 정말 티가 확 나거든요. 이 책의 처음과 끝에 존 버거가 쓰는 작업실의 풍경이 나오는데요. 물건들은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안에서 존 버거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아내의 모습은 없거든요. 그 쓸쓸함만으로 이 책이 하려는 이야기는 다 하는 거죠. 아내의 빈 방, 아내의 빈자리라는 건 평생을 살면서 모르고 지내도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정말 있을 때 잘하자는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M4 Collective Arts & 이원우 - 꽃

https://youtu.be/9uZ1HW1vf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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