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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Oct 07. 2018

책으로 아이돌하기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0월 7일 마흔여덟 번째 방송은 '책으로 아이돌하기'라는 주제로 아이돌 문화에 관한 책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얼마 전에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있었죠. 문재인 대통령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방탄소년단, BTS라고 하죠.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인 BTS가 유엔 총회에서 직접 연설을 한 건데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을 하는 중요한 행사였는데, 그런 자리에서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연설을 한다니 깜짝 놀랄 일이었죠.


ann 아이돌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죠.

j 그렇죠. 게다가 BTS의 연설이 굉장히 감동적이고 멋있었거든요. 유니세프가 새롭게 시작하는 청년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에서 청년들에게 힘을 주는 메시지를 읽은 건데요. BTS의 성장스토리와 엮이면서 굉장히 감동적인 연설이 완성됐죠. 미국 방송인 ABC는 BTS의 연설 장면을 생중계할 정도로 관심도 컸고요.


ann 리더인 RM의 영어 실력도 화제가 됐고요. 확실히 BTS는 한국을 넘어서 세계에서 주목하는 그룹으로 성장한 것 같아요.

j 맞습니다. 사실 제 주변에 보면 BTS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냥 아이돌 그룹의 하나로 생각하는 그런 정도였는데, 이번에 유엔 총회 연설을 계기로 다들 깜짝 놀란 거죠. 어떤 그룹이길래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할 정도야? 하고 주변에 나이 어린 사람들한테 물어보고요. 그래서 오늘은 한 번 BTS와 아이돌 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준비해봤습니다.


ann 아이돌에 관한 책인가요?     

j 주제를 ‘책으로 아이돌하기’ 정도로 정해봤는데요. 먼저 BTS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테니, BTS의 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책을 한 권 준비했습니다.

ann 어떤 책인가요?

j <BTS를 철학하다>라는 책입니다. 대중문화 연구자인 차민주씨가 쓴 책인데요. 주로 BTS의 노랫말을 분석해서 철학적으로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분석한 책이에요. 우리가 아이돌의 노래라고 하면 고민 없고, 사랑얘기, 돈얘기가 그런 게 많다고 치부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차민주씨의 분석을 보면 BTS의 노랫말은 굉장히 철학적이고, 동시대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과감하게 자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겁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철학적인 분석의 깊이가 얕은 건 아쉽지만, 분석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골라봤습니다.     


ann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노래 한 곡 듣고 이야기 자세히 해볼게요.     

j BTS의 봄날입니다.


M1 BTS - 봄날

https://youtu.be/xEeFrLSkMm8


ann 책으로 아이돌하기, 먼저 BTS의 노랫말에 담긴 철학적인 메시지를 분석한 <BTS를 철학하다> 이야기하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한데요.     

j 방금 듣고 온 BTS의 노래가 ‘봄날’인데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오멜라스’라는 간판을 단 술집이 나와요. BTS의 멤버 몇 명이 그 안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었는데 다른 멤버들이 찾아와서 데리고 나와서 허허벌판으로 떠나는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문학적인, 철학적인 장면인 거죠.


ann 어떤 거죠?

j 어슐러 르 귄이라는 유명한 소설가가 있는데요. 이 사람의 작품 중에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내용이냐면, 오멜라스라는 마을이 있어요. 이 마을은 단 한 명의 사람이 지하실에 갇힌 채 평생을 지내게 하면 다른 마을 사람들은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희생양의 존재를 모른 척하면 되는 거죠. 봄날 뮤직비디오에서 BTS 멤버들은 오멜라스를 떠나잖아요. 그런 식으로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행복을 누리지 않겠다는 걸 표현한 거죠.


ann 뮤직비디오 하나에도 굉장히 철학적인 메시지를 녹여낸 거네요.

j <BTS를 철학하다>를 보면 이런 사례들이 여럿 나오는데요. 특히나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부분들이 인상적이죠. BTS를 좋아하는 청년들의 반응을 보면 위로가 됐다는 말이 많거든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요. BTS의 노래를 들으며 힘든 시기를 버텼다는 말이 많아요. 그냥 BTS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이들의 노래에 그런 메시지가 있었다는 거죠.


ann 예를 들면요?     

j BTS의 <리플렉션>이라는 노래를 보면 ‘난 날 쓰다듬어주고 싶어 날 쓰다듬어주고 싶어 근데 말야 가끔 나는 내가 너무너무 미워 사실 꽤나 자주 나는 내가 너무 미워 내가 너무 미울 때 난 뚝섬에 와 그냥 서 있어, 익숙한 어둠과’ 이런 가사가 있거든요. 이 가사를 보면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분명하죠. 그런데 그건 모두가 하는 말이잖아요.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죠. BTS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나도 내가 미워질 때가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BTS의 노래를 듣는 청년들에게 내가 미워지는 건 당연한 거라고,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응원하는거죠.


ann BTS의 노래들은 확실히 청년들을 위한 메시지가 분명하죠.

j 저도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굉장히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도 직설적으로 내는 그룹이었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아이돌 그룹이 그렇게 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BTS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거죠.

‘쩔어’ 가사를 보면 ‘3포 세대 5포 세대 그럼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 이런 가사가 나오고요.

‘N.O’라는 노래의 가사도 ‘우릴 공부하는 기계로 만든 건 누구? 일등이 아니면 낙오로 구분 짓게 만든 건 틀에 가둔 어른이란 걸 쉽게 수긍할 수밖에’ 이런 가사가 나오거든요. 다들 문제 있는 상황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아이돌 그룹 입장에서 큰 소리 내기 쉽지 않을텐데 BTS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한 거죠.


ann 그런 생각도 들죠. 이런 식으로 노랫말을 분석하는 건 비틀즈나 밥 딜런 정도의 뮤지션에게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BTS를 벌써 그 정도로 보는 건 이르지 않나?     

j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하죠. 확실히 아직 BTS는 10대, 20대의 문화니까요. 이 책도 그렇고 BTS의 노랫말을 분석한 책들도 굉장히 표피적인 분석에만 그치고 있어서 시류에 영합하는 느낌이 없지도 않고요. BTS의 노래에 비해 책의 완성도가 아쉬운 거죠. 그럼에도 BTS라는 그룹이나 BTS의 노래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지는 의미가 작지는 않다고 저도 생각하거든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청년들이 너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잖아요. 철학, 문학 이런 것들이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사실 너무 멀리 있죠. 책 읽는 게 습관이 되지 않은 중고등학생한테 가서 니체나 아도르노를 읽으라고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죠. 그런데 이들이 매일 듣는 BTS의 노래가 실은 그런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조금은 우회하는 거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죠.


ann 손에 닿지 않는 철학책보다 매일 듣는 BTS의 노래가 더 의미있다는 말이군요.     

j BTS를 위대한 철학자들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겠죠.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요. BTS의 작업이 실제로 많은 청년들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놓는다면 그 자체로 이 시대에 충분히 의미 있음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는 거겠죠. 그냥 아이돌이잖아? 하고 넘기기에는 BTS의 행보나 작업의 결과물은 꽤나 가치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M2 BTS – Answer : Love Myself

https://youtu.be/o_SYttJm0SE


ann 책으로 아이돌하기. 먼저 <BTS를 철학하다> 이야기했고요. 두 번째로 만날 책은 뭘까요?

j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아이돌의 작업실>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대중음악 전문가인 박희아 아이즈 기자가 쓴 책인데요. 앞서 만나본 BTS를 철학하다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아이돌 문화를 조명할 수 있는 책입니다.


ann 제목을 보면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겠네요.

j 그렇죠. 우리가 아이돌 그룹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편견 중 하나가 이런 거죠. 걔네는 직접 노래를 안 만들잖아. 이런 말을 많이들 하죠. 직접 노래를 안 만드니까 아이돌 그룹은 아티스트가 아니다. 이런 식이죠. 이 책은 그런 편견을 깨는 역할을 해주는 책입니다.


ann 아이돌의 작업실이니까, 실제로 작사, 작곡을 하는 아이돌 가수의 작업실이 나오는 거겠죠?

j 박희아 기자가 모두 다섯 명의 아이돌 그룹 멤버를 인터뷰한 걸 엮은 책인데요. 세븐틴의 우지, EXID의 LE(엘리), 빅스의 라비, B.A.P의 방용국, 블락비의 박경, 이렇게 다섯 명의 아이돌 그룹 멤버를 직접 만나서 그들이 어떻게 노래를 만들고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ann 아이돌이라고 하면 화려한 무대부터 생각하기 쉽잖아요. 작업하는 모습은 어떨지 상상이 안 되는데요.     

j 앞에서 소개해드린 BTS만 해도 굉장히 열심히 작업하는 그룹이거든요. BTS 다큐멘터리를 보면 멤버들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 음악 작업에 몰두하는 걸 볼 수 있어요. 화려한 스타의 삶과는 거리가 멀죠. 이 책에 나오는 아이돌 멤버들도 비슷해요. 노래 한 곡을 만들 때도 굉장히 신중하게 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요. EXID의 LE가 인터뷰에서 ‘위아래’를 만들 때 이야기를 하는데요.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편곡을 하게 되잖아요. 위아래 같은 경우는 편곡을 통해서 수정 버전만 50개가 넘게 나왔다고 해요. 위아래가 EXID의 지금을 있게 해준 노래인데 만드는 과정부터 쉽지가 않았던 거죠.


ann 아이돌 그룹의 노래는 아무래도 만드는 과정이 다른 가수들과는 다르겠죠.     

j 일단 멤버가 많잖아요. 적게는 대여섯명, 많게는 열명도 넘으니까요. 노래라는 게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에 맞게 만들어야 하는데 멤버들이 많으니까 그 과정부터 쉽지가 않겠죠. 그러다보니 아이돌 그룹 멤버 중에 이렇게 직접 작업을 할 수 있는 멤버가 있는게 장점이 되는 거죠. 실제로 인터뷰를 보면 세븐틴의 우지나 블락비의 박경이나 이런 멤버들이 자기 팀 멤버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이야기하거든요. 아이돌 그룹은 단체로 합숙을 하니까 이런 특징을 다른 전문 작곡가들보다 더 잘 잡아낼 수 있겠죠.     


M3  태일(블락비) - 좋아한다 안 한다

https://youtu.be/FBnxOIjExHs


ann 책으로 아이돌하기. 두 번째 책으로 <아이돌의 작업실>이라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 다섯 명의 인터뷰가 실렸다고 했는데요. 그중에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다면요?     

j 사실 박경이나 우지 이런 멤버들이 작곡, 작사를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거였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건 EXID의 엘 리가 EXID의 곡 대부분을 만들었다는 거였는데요. 약간 저의 무지와 편견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죠.


ann 책밤지기의 무지??

j 이 책을 쓴 박희아씨도 인터뷰에 한 말인데요. 우리가 남자 아이돌 그룹에서는 멤버가 직접 작곡, 작사, 프로듀싱에 참여하는 걸 많이 보잖아요. 왜냐면 아이돌 그룹 소속사에서도 그런 걸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홍보하거든요. 아이돌 그룹 데뷔나 컴백 보도자료를 보면 멤버 중에 누구누구가 직접 곡을 썼다, 이런 게 나오고요. 그런데 여성 아이돌 그룹은 홍보의 포인트가 다른 거죠. 곡을 직접 만들고 프로듀싱하고 그런 게 아니라 외모나 다이어트,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다보니까 엘리 같은 실력자들이 부각이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이걸 잘 모르고 지나친 제 잘못인 거죠.


ann 확실히 여자 아이돌 그룹 중에는 작사, 작곡, 프로듀싱 이런 걸 도맡는 멤버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j 그래서 더 엘리의 인터뷰가 흥미로웠던 건데요. 인터뷰를 보면 고등학생 때부터 래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해서 아이돌 그룹에 합류하게 되고 래퍼였으니까 직접 곡을 만들 수 있잖아요. 그 능력을 살려서 EXID의 노래를 만드는 데 직접 참여하고.. 현아, 트러블메이커, 디아 같은 다른 팀에도 곡을 주고. 이런 스토리가 나오는 게 재밌는 거죠. 아이돌 그룹이라고 하면 무대 위의 모습만 생각하기 쉬운데 말이죠.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인터뷰라고 할까요.


ann 남자 아이돌 멤버의 인터뷰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없나요?     

j 비에이피의 리더였던 방용국씨의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이 나와요. 음악을 만드는 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인데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저에게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음악을 들을 때 진짜로 친구가 얘기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더 나아가서는 어떤 음악 안에 있는 메시지를 찾으면 거기에 대답하고 싶을 때가 있고요.”

음악 안의 메시지에 대답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말이 저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우리가 아이돌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이 대답이 보여주는 거죠. 이렇게 진지하게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을 아이돌이라는 틀 안에 가둘 필요가 있을까, 아니 아이돌이라는 틀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M4 EXID- Boy

https://youtu.be/LTdC5Jyoo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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