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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Oct 21. 2018

한글, 그리고 세계의 사라질 것 같은 말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0월 14일 마흔아홉 번째 방송은 한글날을 맞아 한글과 언어에 대한 책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저희 방송에서 매주 두 권씩 책을 소개해드리고 있잖아요.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정말 많은 과정이 필요하고, 또 많은 요소가 필요한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또 가장 필요한 게 하나있죠.


ann 책에서 가장 필요한 것??

바로 문자죠. 문자가 없으면 책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우리가 책을 읽고 쓸 수 있도록 해주는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해봤습니다.


ann 이번주에 한글날이 있었죠한글날을 맞아서 한글에 대한 책을 준비했군요.

그렇죠. 매년 10월 9일이 한글날이잖아요. 올해는 한글이 세상에 나온지 572년째가 되는 해였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올해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즉위한 지 600주년이 되는 해여서 더욱 뜻깊은 것도 같아요. 


ann 한글에 대한 책은 많을 것 같은데요어떤 책을 가져오셨나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한글과 언어를 전공하는 교수님들이 모여서 함께 쓴 책인데요. 한글이 처음 만들어진 조선시대 세종대왕 시절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글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낸 책입니다.

ann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친 이야기들이라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0월 9일이 한글날로 정해진 데에도 나름의 역사가 있는데요. 한글날이 처음 만들어진 게 1928년이었거든요. 그 전에는 가갸날이라는 걸로 한글 창제를 기념했어요. 가갸날 기념식이 처음 열린 건 1926년이고요. 그런데 그때는 11월 4일에 기념식을 했다고 해요. 왜 11월 4일이었냐면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종 28년 9월조에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라는 기록이 있어요. 음력 9월 말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1월 4일이 되거든요. 그래서 11월 4일을 처음에는 한글날처럼 기린 거죠. 

그러다가 1940년에 훈민정음해례가 발견돼요. 한글을 어떻게 왜 만들게 됐는지, 그리고 자음과 모음의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건데요. 여기에 보면 ‘9월 상한’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일시가 나오거든요. 9월 상한을 양력으로 바꾸면 10월 4일이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10월 9일이 한글날이 된 거죠.     


ann 한글날이 10월 9일로 정해지는 데도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던 거네요그러면 노래 한 곡 듣고 한글에 대해 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들 더 해볼게요.               

가리온의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M1 가리온 – 뿌리깊은 나무

https://youtu.be/cbYgZsvElkE


ann 한글날을 맞아 우리가 잘 몰랐던 한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있어요.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이 책은 우리가 한글에 대해 잘 모르는 이야기, 혹은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를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보여주는데요. 책의 제일 앞에 나오는 질문은 이겁니다. ‘한글은 누가 만들었나?’


ann 한글은 누가 만들었나한국 사람 중에 이걸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싶은데요당연히 세종대왕 아닌가요?

그렇죠. 세종대왕이 한글을 직접 창제했다는 건 유치원 때부터 배우는 거니까요. 당연한 이야기인데요. 이 책은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갑니다. 우리가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 창제를 도운 이야기는 많이 알잖아요. 그런데 여기에다 왕실 가족들이 한글 창제를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이야기까지 아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와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세종대왕의 자식들이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있고요.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다룬 ‘석보상절’이라는 책을 한글로 번역해 편찬한 게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거든요. 그리고 세종대왕의 딸이죠. 공주도 한글 창제를 도왔다는 기록도 있어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표음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걸 정의공주가 나서서 해결했고 그 공으로 노비를 하사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ann 왕실 전체가 나서서 세종대왕을 도왔던 거네요

그렇죠. 그리고 한글과 관련해서 우리가 조금 잘못 알고 있는 편견 같은 것들도 책에서 지적을 하는데요. 예컨대 우리가 조선시대에 한글은 평민들이 쓰는 언어라고 생각하잖아요. 양반들은 한문이 있으니까 굳이 한글을 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는 왕실과 사대부 가문에서도 한글을 굉장히 두루두루 많이 썼다고 합니다.

예컨대 당시에 남성 대신들이 중전에게 무언가를 보고할 때는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보고를 하고, 중전은 한글로 답을 하는 게 일상적인 관례였다고 해요. 또 재밌었던 건 조선시대 과거시험 과목에 훈민정음도 있었다고 합니다. 


ann 과거시험 과목에 훈민정음이 있었다면관리들은 모두 한글을 쓸 줄 알았다는 거네요.     

그렇겠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나서 이게 널리 퍼져야 할 테니까요. 과거시험 과목에 이걸 넣도록 한 건데요. 각 관청에서 문서처리, 연락사무 등을 맡는 하급 관원의 시험 과목에 훈민정음을 포함시킨 거죠.

이후에 한글로 글쓰기가 국가시험에서 정식으로 채택된 건 1894년 갑오개혁 이후의 일이라고 합니다. 한글이 국가 공식 언어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와중에 계속해서 이용자는 늘어나고 있었던 거죠.


ann 한글은 우리가 당연히 매일 반복해서 쓰는 건데도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모르는 게 많았구나 싶어요.

저도 글쓰는 게 직업이니까요. 한글에 대해서는 그래도 이것저것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조선시대에 한글이 널리 퍼진 계기가 한글소설이 유행한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그렇고요. 예전에 음란서생이라는 영화가 있었잖아요. 한석규가 나왔던. 그 영화가 조선시대에 음란한 내용의 소설이 유명세를 얻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건데요. 한글소설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거죠.

이 책에도 보면 ‘설공찬전’이라는 한글소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유행하니까 당대의 양반들이 반발하는 그런 이야기가 실려 있거든요. 한글이 퍼지는데 소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좀 재밌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ann 1년에 하루뿐인 한글날에라도 이런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맞습니다. 한글이 정말 과학적이고 편리한 문자라고들 하잖아요. 한글을 자랑스러워하는 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국의 언어학자인 제프리 샘슨이 1985년에 쓴 책에 보면 “한국은 매우 작고 먼 나라지만, 언어학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나라다. 오늘날 한글이라고 불리는 가장 독창적이고도 훌륭한 음성문자를 15세기에 백성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글이 나올 정도죠.

또 유엔 산하의 유네스코에서 1989년에 ‘세종대왕 문해상’이라는 상을 만들었거든요. 어떤 거냐면 전 세계에서 문맹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예요. 그런 상에 세종대왕의 이름을 붙인 건 그만큼 한글의 가치를 우수하게 보고 있다는 말이겠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사랑입니다. 


M2 에피톤 프로젝트 - 첫사랑

https://youtu.be/3w5iMGSHvsE


ann 한글날을 맞아서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어요이번에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한글과 직접 관련이 있는 책은 아닌데요. 대신 우리가 우리의 말과 글을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간접적으로 주는 그런 책을 준비해봤습니다.


ann 어떤 책인가요?

일본의 언어학자인 요시오카 노보루씨가 쓴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이라는 책입니다. 부제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수언어에 대하여, 입니다.


ann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수언어에 대하여우리가 언어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건 한국어영어중국어 이런 건데요사실은 세상에 훨씬 더 많은 언어가 있겠죠.

맞습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언어는 7000여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처럼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언어도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곧 사라질 수밖에 없는 언어도 많거든요. 이 책은 그렇게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언어 중에서 50가지를 선별해서 소개해주는 책이에요.     

ann 언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막막한 느낌일 것 같아요나랑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더는 없다는 느낌은 어떤 걸까요.     

그렇죠. 우리는 한국어를 쓰잖아요. 전 세계 언어 이용에 대한 통계를 보면 한국어를 제1 언어로 쓰는 인구는 전 세계에 7720만명이 있다고 해요.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쓰는 말이 한국어라고 하는데요. 생각보다 꽤나 순위가 높죠. 우리가 흔히 중국어라고 하는 만다린어가 12억8400만명으로 가장 많고, 스페인어, 영어, 아랍어, 힌디어도 이용자가 많은 언어고요.

그에 비하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언어들은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가 90만명이고 어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기도 하고 그래요. 이런 언어들은 특징이 이용자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거잖아요. 같은 말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그 자체만으로 정말 고독한 일이겠죠.     


ann 정말 그럴 것 같아요책 이야기를 좀 해보죠소수언어에 대한 책이면 너무 학술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어렵지는 않나요?     

그렇게 어려운 책은 전혀 아니고요. 오히려 정말 읽기 쉽고 재밌는 책이에요. 소수언어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짧게 나오고요. 그 소수언어의 표현 중에 하나를 삽화와 함께 알려주는 방식이거든요. 예컨대 페루에서 사용하는 아야쿠초 케추아어를 소개할 때는 ‘루루흐’라는 표현이 나와요. 루루흐는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다, 농작물이 많이 자란 모양, 이런 뜻인데요. 옥수수를 수확하는 페루 사람의 모습이 귀여운 삽화로 나오면서 루루흐라는 말을 알려주는 거죠. 소수언어를 공부하자고 읽는 책이 아니라 언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책이니까요. 전혀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M3  이상은 – 비밀의 화원

https://youtu.be/dbKY4fbILp4


ann 한글날을 맞아서 언어에 대한 책을 만나보고 있어요두 번째로 전 세계 소수언어들에 대한 책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만나보고 있는데요또 어떤 표현들이 있나요?     

우리가 잘 모르는 언어나 표현들이 나오는데요. 우리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눈길이 가는, 귀여운 그런 표현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요, ‘샤타 슈 마유’ 라는 말이 있어요. 어떤 뜻일까요? 

이 말은 미얀마, 중국, 인도 일대에서 65만명 정도가 쓰는 징포어에 있는 표현인데요. 직역하면 개구리가 달을 삼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월식이 되는 거죠. 월식을 징포어에서는 ‘샤타 슈 마유’, 개구리가 달을 삼킨다로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월식을 일으키는 동물이 징포어의 세계에서는 개구리인 거죠.          


ann 월식의 범인이 개구리다생각해본 적 없는 재밌는 부분이네요.

이런 소수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문명과 거리를 둔 사람들이 많은데요. 유목민족이나 오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인 거죠. 이런 분들은 자기들의 생활이나 문명에 적합한 말들을 만들어서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표현들로는 ‘푸르두유인’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일대의 고원 지역에 사는 유목민들이 쓰는 말인데요. 유목민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가축이잖아요. 그러니까 가축과 관련된 표현도 훨씬 풍부하죠. ‘푸르두유인’ 이 말은 가축의 젖을 짤 수 있는 상태로 만들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암소의 심기를 맞추지 못하면 우유를 충분히 얻을 수 없잖아요. 그럴 때는 송아지를 데려온다거나 해서 비위를 맞추면서 우유를 짠대요. 이런 상황에서 쓰는 말이 ‘푸르두유인’인 거죠.


ann 굉장히 귀여운 표현들인데요아까 사용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언어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사용 인구가 적은 말들이 나오는데요. 예컨대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언어는 아이누어예요. 훗카이도 지역의 토착민인 아이누족은 10만명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 아이누어를 유창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딱 5명 정도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말은 인도의 안다만 제도에서 썼던 대안다만 혼성어인데요. 이 말을 쓰던 마지막 사람이 2010년에 죽으면서 지금은 이 말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책에는 이 언어의 여러 표현 중에서도 ‘머러미쿠’라는 말이 실려 있는데요. 이 말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언어에도 생명이 있다고 본다면, 그 생명이 끝나는 건 더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순간이 아닐까 싶거든요. 지금은 한글이나 한국어가 사라질리가 있겠어? 싶지만, 우리가 제대로 간직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죠. 이렇게 사라져가는 소수언어들을 돌아보면 한글을 더 아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드는 것 같아요.     


ann 인사말 같은 건 책에 안 나올까요?     

하나 있는데요. ‘망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얀마나 인도 지역에서 쓰는 테딤 친어에 있는 표현인데요. 직역하면 좋은 꿈이라는 뜻이고요. 밤에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말이라고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망파!     


M4 크래커 – 그런 날

https://youtu.be/gUSVenaVy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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