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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Oct 21. 2018

동물을 생각하는 일은 약자를 생각하는 일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0월 21일 쉰 번째 방송은 동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얼마전에 굉장히 큰 관심을 모았던 사건이 있었는데요. 바로 대전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가 사살된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때가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때였는데, 거의 남북 정상회담만큼이나 큰 관심을 모았죠. 아마 젊은 세대에서는 퓨마 탈출 사건이 더 화제가 됐던 것도 같고요.


ann 인간의 잘못으로 안타까운 퓨마의 생명만 잃게 됐죠

그 사건을 계기로 최근에 많이 회자되는 표현이 있죠. 바로 ‘동물권’이라는 표현인데요. 최근에 문학계에서도 이 동물권을 다룬 소설이나 에세이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방송에서는 동물권을 다룬 책을 두 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동물권을 다룬 책어떤 책들이 있을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2006년에 등단한 하재영 작가가 쓴 책인데요. 소설은 아니고 르포의 형식을 가진 에세이입니다.


ann 소설가가 동물에 대해 쓴 르포설명부터 특이한 거 같은데요어떤 내용인가요?

하재영 작가가 2013년부터 동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거든요. 버려진 개들을 돌봐주는 그런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까 궁금해진 거예요. 버려진 개들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도대체 누가 개들을 버리는 걸까. 버려진 개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런 게 궁금해지니까 직접 취재를 하기 시작한 거죠. 버려진 개들이 거쳐온 곳들을 찾아가보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요.

ann 버려진 개들이 거쳐온 곳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거죠?

하재영 작가가 가는 곳이 정말 다양한 데요. 개 번식장에서부터 경매장, 유기견 보호소, 개농장, 도살장까지 취재해요. 한국은 굉장히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죠. 반려동물을 기르는 문화가 굉장히 넓게 퍼져 있는 나라잖아요. 강아지, 고양이 기르는 집이 정말 많죠. 그러면서 동시에 개를 식용으로 쓰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에 하나고요.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문화가 동시에 존재하는 게 한국이잖아요. 어떻게 이런 문화가 가능한 걸까에 대한 르포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ann 번식장개농장도살장.. 말만 들어도 너무 끔찍한 이야기들이 나올 거 같아요          

확실히 마음 편하게 읽기 쉬운 책은 아닌데요. 그래도 책을 쓴 하재영 작가가 굉장히 담담하게 관찰자적인 시각에서 글을 풀어내고 있어서요. 조금은 읽는 부담이 덜하긴 한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이 너무 참혹하니까 억지로 슬픔을 짜낼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나눠 볼게요.     

이승환의 비겁한 애견생활입니다.


M1 이승환 – 비겁한 애견생활

https://youtu.be/EejQENqECFA


ann 동물권을 다룬 책들 이야기하고 있어요먼저 하재영 작가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야기해볼게요어떤 이야기가 나오나요?     

책의 첫 페이지가 남양주의 어느 개농장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해요. 개농장은 보통 인적이 드문 산골에 숨겨져 있거든요. 그런데 이 개농장을 찾는 방법이 몇 가지 있대요. 일단 음악이에요. 개농장은 굉장히 시끄러운 거죠. 개들이 계속 짖으니까요. 그걸 감추려고 음악을 정말 크게 틀어놓는다고 해요. 하재영 작가가 찾아간 개농장은 수전 잭스의 에버그린을 틀어놨다고 하고요.


ann 개농장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또 뭐가 있을까요?

그리고 악취가 있다고 해요. 개농장은 정말 개를 케이지에 넣어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물을 치우지도 않고요. 먹을거리는 음식물쓰레기를 가져와서 주고요. 온갖 벌레와 쥐떼의 소굴이 되는 거죠. 이렇게 심한 악취를 하재영 작가는 죽음의 냄새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책을 보면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죠. 하재영 작가는 개농장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요.

“내 감각 속의 개농장은 후각보다는 청각으로, 냄새보다는 음악으로 남았다. 내게 개농장이란 너무나도 다른 두 배경음악이, 뻥개장에 갇힌 개들의 아우성과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팝송이 기묘하게 뒤섞인 곳이다”


ann 개들의 아우성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팝송개농장을 직접 가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묘사네요.

저는 사실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으니까요. 동물권이나 버려지는 개들이 처하는 현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 문제가 심각하구나, 하는 걸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어요. 개농장, 번식장의 끔찍한 현실도 그렇지만 더 심각한 이야기들도 많은 거죠. 예컨대 저는 경동시장에 있는 개고기 골목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깊었거든요.

제가 어릴 때 경동시장 근처에 살아서 어린 기억에도 시장 안에서 개를 도살하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굉장히 옛날 기억이니까 오래전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는 아직도 그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줘요. 


ann 개를 도살하는 게 서울에서 외진 곳도 아니라 시장 한가운데서도 이뤄진다는 건가요?     

그렇죠. 경동시장 개고기 골목을 가면 사육장 안에 곧 도축될 개들이 전시품처럼 있대요. 그런데 이 사육장 안에 있는 개들이 하루이틀이면 바뀌는 거예요. 그새 팔려나간 거죠. 팔려나간다는 건 말 그대로 죽었다는 얘기고요. 저자랑 인터뷰한 동물보호단체 사람이 열흘 동안 계속 순찰을 했대요. 그런데 누렁이 한 마리가 사흘까지도 죽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 누렁이는 꼭 살려서 데려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가봤더니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옆에 개고기 진열대가 있고 새로 도륙된 개고기가 부위별로 놓여 있고요. 어제까지 눈을 맞췄던 그 누렁이였던 거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ann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개를 식용으로 하는 문화가 이런 문제들의 원인이 아닐까 싶죠.

우리의 전통 문화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여러 주장들이 있는데요. 저는 그런 주장들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없고요.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입장에서 판단을 하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대신에 판단을 내리려면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고 볼 필요가 있는 거죠. 유기견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식용 개가 어떤 유통과정을 거치는지, 반려동물에 대한 우리의 법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이런 객관적인 정보를 접하고 개 식용 문제나 반려동물 보호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판단을 내린다면 훨씬 더 정확한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ann 책밤지기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 책을 쓴 하재영 작가의 생각과 마찬가지인데요. 하재영 작가는 이렇게 적어요. 

“한 사회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와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동물을 생각하는 일은 약자를,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일이다.”

저는 개를 먹어도 되냐, 먹으면 안 되냐, 이런 논쟁은 사실 근본적인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에 비해서 한없이 약한 동물의 생명을 존중한다는 건 동물과 나 자신 사이에 있는 수많은 약자들을 존중한다는 선언이기도 한 셈이죠. 어떤 분은 이 책을 동물권에 대한 책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책이라고도 하더라고요. 그 말에도 전적으로 공감해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j W의 만화가의 사려깊은 고양이입니다.


M2 W – 만화가의 사려깊은 고양이

https://youtu.be/iLMXcev11x8


ann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어떤 건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소설집인데요. 김숨 작가의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라는 제목의 단편집입니다. 


ann 제목이 독특하네요.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는 이 단편집의 표제작인데요. 모두 여섯 권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동물’이 테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주는 단편들인데요. 일단 표제작에 등장하는 염소가 있고요. 다른 단편들을 보면 쥐, 자라, 벌, 노루, 나비 같은 동물이 소설의 주된 소재로 등장해요. 

ann 표제작이 아무래도 대표작이겠죠어떤 내용인가요?

의대생들이 동물 해부실습을 위해 해부실에 모여 있는 내용인데요. 염소를 해부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습을 위해 오기로 한 염소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 거예요. 의대생들은 염소가 오는 걸 기다리면서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잡담도 하고, 과거에 다른 동물을 해부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염소는 오지를 않죠.     


ann 오지 않는 존재를 계속 기다리는 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하겠네요.     

맞습니다. 정확히 고도를 기다리며의 동물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가리켜서 흔히 부조리극이라고 하잖아요. 인간의 고뇌를 다루는 그런 건데요.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는 인간이 아닌 동물을 기다리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걸 한 번 더 튼 거죠. 동물을 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중심주의 같은 것들에 대해서 반성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ann 끝내 오지 않는 염소를 통해서 인간 중심주의를 반성하게 만든다.. 약간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은 있네요.     

아무래도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 건 맞아요. 그래도 소설의 역할이라는 게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건데, 이 책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주거든요. 부조리극 특유의 촌철살인 같은 대화를 통해서요. 예를 들면 이런 대화가 나와요. 누군가가 “염소 해부 실습의 목적을 뭐라고 써야하지?”하고 물어요. 그랬더니 다른 누가 대답을 해요.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는 거라고 쓰면 되지”하고요. 맞는 말 같은데 또 말이 안 되는 말이기도 하죠. 


M3  선우정아 - 고양이

https://youtu.be/AKSpQUPbb74


ann 동물권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김숨 작가의 단편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이야기하고 있는데요염소가 아닌 다른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가요?     

재밌는 건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 염소가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소설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데요. 예컨대 ‘쥐의 탄생’이라는 단편에는 쥐가 거의 등장하지를 않아요. 신혼부부가 사는 집에 쥐가 나타나서 쥐잡이 전문가들을 부르는데요. 정작 전문가들이 집을 샅샅이 뒤져도 쥐는 잘 보이지가 않아요. 그런데 쥐잡이 전문가들이 집을 뒤지는 동안 함께 있던 부인은 쥐보다도 그 사람들을 더 무서워하게 되는 거죠. 처음에는 안락한 신혼부부의 생활을 깨뜨린 게 쥐였는데, 나중에는 그게 쥐잡이 전문가들로 대체되는 거죠.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


ann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들 하잖아요그런데 동물 한 마리를 잡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거기에다 다른 인간 때문에 공포심을 느끼게 되는군요.

어떻게 보면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사라지는 거죠. 우리가 동물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정작 우리가 경멸하던 동물들의 행동을 우리가 똑같이 따라하고 있는 거죠. 생존을 위해서, 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동물을 착취하는 모습에서 과연 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질문하게 되는 거죠.


ann 다른 단편들도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나요?

예컨대 양봉업자가 나오는 단편에서는 양봉업자가 꿀벌들을 착취하는 독재자처럼 그려져요. 자라의 목숨은 아이의 운동화며 책가방이며 학원비로 계산이 되고요. 단편 하나하나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동물들에게 하는 행동이 과연 인간적인지를 따져묻고 있는 셈이죠. 어떻게 보면 앞에서 소개해드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책이기도 해요. 반려동물을 아끼고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내 집 안방에서 쥐를 발견하면 쥐잡이 전문가를 부르게 되지 않겠어요?      


ann 동물권이 요즘 정말 뜨거운 화두인데요오늘 소개해준 책들을 읽어보면 좀 각자의 입장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드네요.     

맞습니다. 월요일이었죠. 15일이 세계동물권선언의 날이었거든요. 이 날을 맞아서 지난 주말에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동물권 행진 행사도 있었다고 하고요. 해방 운동은 끊임없는 도덕적 지평의 확장이라고들 하잖아요. 노예 해방, 여성 해방, 인종 차별 해방... 이렇게 끝없이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왔죠. 이제는 동물, 최소한 우리와 함께 지내는 반려동물에 대해서만큼은 정당한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으니까요. 그냥 단편적으로 나오는 뉴스나 블로그 글만 보지 마시고 이런 책들을 찬찬히 읽어보는 것도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M4 가을방학 – 언젠가 너로 인해

https://youtu.be/Z-BESwjUF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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