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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Nov 11. 2018

잘못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읽은 책에 있다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0월 28일 쉰 한번째 방송은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두 권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저희 방송에서 매주 책을 소개해드리고 있지만 한주에 두권밖에 안 되잖아요. 주변에 보면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막상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분이 많아요. 서점에 있는 소설 코너를 가보면 너무 많으니까 뭘 읽어야 할지 고민되고, 시 코너를 가도 어떤 시인이 내 취향인지 알기가 쉽지가 않죠. 


ann 그렇다고 시집을 열 권스무 권 펼쳐보고 읽고 고르는 것도 어렵죠.

오늘은 이렇게 어떤 소설, 어떤 시를 읽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들 때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어떤 책들이 난제를 해결해주는 도끼인 건 가요?

바로 문학평론가들이 쓴 산문집입니다. 


ann 문학평론가의 산문집문학평론가가 정말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이긴 하죠소설을 읽고 시를 읽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니까요.

그렇죠. 이분들만큼 우리 소설과 시에 대해 자세히 아는 분들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문학평론가라고 하면 뭔가 어려운 느낌이 있잖아요. 사실 이분들이 쓰는 평론집을 읽어보면 정말 어려운 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저도 읽다가 포기하게 되는 그런 거죠. 그래서 제가 추천해드리는 건 문학평론가들이 쓴 산문집입니다. 정식 평론은 아니지만 본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소설이나 시에 대해서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쓴 글들을 모아놓은 책들도 많거든요. 문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읽으면서 참고할 수 있는 거죠.

ann 문학평론가의 산문집에서 어떤 책을 읽을지 참고하라는 거군요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입니다. 이분은 정말 글을 웬만한 작가들보다 잘 쓰는 분인데요. 최근에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제목의 산문집이 새로 나왔습니다.      


ann 신형철 평론가는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으로 유명하죠새로 나온 책은 어떤가요?          

이 책은 신형철 평론가가 2010년 이후에 여러 곳에 쓴 글들을 모아서 낸 책인데요. 제목에도 나오듯이 ‘슬픔’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서 여러 문학작품과 영화 속 이야기를 분석하고요. 2010년대에 나온 소설과 시 중에서 본인의 마음에 드는 작품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도 많이 담고 있어요.      


ann 슬픔을 키워드로 문학작품을 분석한다어떤 내용일지 궁금한데요.     

제목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면요.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적어요.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라고요.

우리가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 공감해주는 척하지만 사실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거든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고요. 이런 말도 나와요.

‘사람들은 자신이 야기하지 않은 고통 앞에서는 울 수 있어도 자신이 야기한 상처 앞에서는 목석같이 굴 것이다.’

이런 게 인간의 본모습이라고 해도, 여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문학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게 신형철 평론가의 생각 같아요. 이 책의 제목도 그렇게 나온 거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나눠 볼게요.     

악동뮤지션의 시간과 낙엽입니다.


M1 악동뮤지션 – 시간과 낙엽

https://youtu.be/7hfLlSg-gsc


ann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이야기 중이에요먼저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만나고 있는데요신형철 평론가가 추천하는 소설시?  뭐가 있나요.     

짧게 짧게 굉장히 많은 작품이 소개되는데요. 그중에서도 소설에서 하나, 시에서 하나 정도를 간략하게 전해드릴게요. 먼저 소설에 대한 글 중에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에 대한 글이 좋았어요. 


ann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가즈오 이시구로저희 방송에서도 녹턴에 대해서 짧게 소개한 적이 있죠.

녹턴은 한물간 가수 토니 가드너가 아내를 위해 선상 공연을 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낭만적인 공연이 아니라 이별을 노래하는 그런 내용이죠. 그런데 이 소설을 그냥 읽기만 하면 감흥이 충분히 전달이 안돼요. 이 소설을 100% 즐기려면 소설에 등장하는 노래의 가사를 찾아 읽어야 돼요. 노랫말이 아름다운 이별,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이야기하는 것들이거든요.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신형철 평론가가 이렇게 적어요.

“소설에서 음악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노래는 거기 그대로 있는데 삶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랑은 식고 재능은 사라지고 희망은 흩어진다. 삶의 그런 균열들 사이로 음악이 흐를 때, 변함없는 음악은 변함 많은 인생을 더욱 아프게 한다.”

이런 게 음악 소설을 우리가 읽는 이유고, 이런 게 잘 표현된 음악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거죠.


ann 변함없는 음악은 변함 많은 인생을 더욱 아프게 한다정말 공감가는 지적이네요시는 어떤 게 있나요.

시도 굉장히 많은 작품과 작가들이 소개되는데요.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건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였어요. 신형철 평론가는 황인찬 시인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는 시’를 쓴다고 표현하는데요. 어떤 거냐면 황인찬 시인의 ‘유독’이라는 시를 보면 이런 내용이에요. 학교 교정에 아카시아 냄새가 가득한데 누가 물어요. 무슨 냄새냐고. 그랬더니 누가 ‘네 무덤 냄새’라고 재치있게 답해요. 이 말에 다들 활짝 웃죠. 다들 웃음을 멈추지 않아요. 그리고 마지막 시구는 이렇게 끝이 나요.

‘예쁘다는 뜻인가 보다 모두가 웃고 있었으니까, 나도 계속 웃었고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안 그러면 슬픈 일이 일어날 거야, 모두 알고 있었지‘


ann 웃음을 멈추면 슬픈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굉장히 의미 심장한 마무리?     

그렇죠. 다들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웃잖아요. 이걸 놓고 신형철 평론가는 이 무지는 특정한 시기의 것이라고 설명하는데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웃기만 하는 건 아니라고 해요. 무지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어떤 예감이 있고, 그게 ‘안 그러면 슬픈 일이 일어날 거야’라는 말에 담겨 있다는 거죠. 웃음을 멈추는 순간 어떤 슬픈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예감하고 있기에 이 아이들은 어찌보면 안간힘을 다해 웃고 있는 거라는 게 신형철 평론가의 해석이에요.

우리는 늘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하잖아요.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신형철 평론가의 설명을 보면, 시란 모르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거죠. 우리가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죠.


ann 신형철 평론가가 아끼는 소설과 시도 좋을 것 같은데요혹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에 대한 팁은 없을까요책에 나오는 소설이나 시 중에서도 고를 수 없겠다 싶은 경우에 말이죠.

그런 것도 있습니다. 예컨대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갑자기 수상 작가의 작품들이 쏟아지잖아요. 해외 작가들 중에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통해 알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요. 그러면 이 작가의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되기 마련이죠. 신형철 평론가는 그럴 때 일단 세 권을 반드시 읽으라고 조언합니다.

어떤 책이냐. 그 작가의 데뷔작, 대표작, 히트작. 이렇게 세 권이에요. 데뷔작에는 한 작가의 문학적 유전자가 고스란히 들어 있고, 대표작에는 작가 역량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히트작에는 그 작가가 독자들과 형성한 공감대의 종류를 알려준다는 겁니다.      


ann 데뷔작대표작히트작을 읽으라또 어떤 팁이 있나요.     

이건 신형철 평론가의 다른 책에 나오는 건데요. 시집을 고르는 법도 나옵니다. 어떻게 시집을 고르냐. 우선 서점의 시 코너에 가서 시집의 제목을 쭉 보라고 합니다. ‘네가 뭐뭐 할 때 나는 뭐뭐한다’는 식의 서술형이나 ‘이별은 어쩌고’ 식의 정의형 제목은 일단 피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싱싱하고 참신한 제목의 시집을 골라잡으라고 해요. 예컨대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 같은 시집이죠.

그다음엔 시집을 펼치고 시식용 시를 한 편 골라 읽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식용 시는 제목이 굉장히 단순하고 해묵은 걸로 고르라고 해요. 사랑, 슬픔 같은 것들이죠. 시인의 진짜 실력은 이런 진부한 소재를 처리하는 솜씨에서 드러난다는 거죠. 그렇게 진부한 소재를 다룬 시가 마음에 든다면 그 시집을 마음 놓고 사도 된다는 게 신형철 평론가의 조언입니다. 정말 이해가 쏙쏙 되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글렌 캠벨의 바이 더 타임 아이 겟 투 피닉스입니다.


M2 Glen Campbell – by the time I get to phoenix

https://youtu.be/7y1hrOpVGKE


ann 문학평론가의 산문집신형철 평론가의 책들을 만나봤는데요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 어떤 건가요?

신형철 평론가가 제 생각에는 지금 활동하는 동시대 문학평론가를 대표한다고 보거든요. 이번에는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20세기의 문학평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분의 책으로 골랐습니다.


ann 어떤 분인가요?

김현 평론가의 <행복한 책읽기>입니다. 김현 선생님은 1971년에 서울대 강사를 시작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울대 불문과 교수를 하셨는데요. 불문과 교수를 하면서 푸코나 바슐라르 같은 해외 주요 문학사상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역할도 했고요. 그리고 김현 선생님이 굉장한 다독가로 알려져 있거든요. 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읽고 좋은 책과 작가를 발굴해서 소개하면서 20세기 한국 문학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그런 분이시죠.

ann 대가의 산문집이군요. <행복한 책읽기>는 어떤 책인가요

이 책은 김현 선생님의 일기인 동시에 산문집이고, 유고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1985년 12월 30일부터 1989년 12월 12일까지 만 4년 동안의 일기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김현 선생님이 1990년 6월에 돌아가셨거든요. 이 책에 1989년 12월까지의 글들이 담겨 있으니까요. 거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기록도 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 거죠.     


ann 평생 문학과 함께 한 대가가 남긴 마지막 글들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궁금한데요.     

일단 눈길이 가는 건 이분이 보아온 당대 문학계의 인물들에 대한 평인데요. 1980년대에 쓰인 글이잖아요. 지금은 대가가 된 사람들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시절에 대한 평가들이 나오니까 재밌어요. 예를 들면 1987년 일기를 보면, 김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때는 아직 김훈 작가가 기자를 하던 때인데요. 김현 선생님이 한국일보 사보에 실린 김훈의 문학기행 유감이라는 글을 읽고 이런 평을 남겨요.

“그의 글은, 기자의 글로서는 거의 파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 드러냄 때문에 그의 글에 대한 찬반이나, 그의 남의 글에 대한 찬반은 매우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의 글을 보니까. 아버지에 대한 그의 애정/증오가 그의 글쓰기의 밑바닥에 있음을 알겠다. 그는 깊게 사랑하거나 짙게 미워한다. 그는 싸우면서 쉬고 쉬면서 싸운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 같으나, 그 생각난 대로 써진 것들은 훌륭하게 이음새 없이 붙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 김훈 작가가 몇 년 전에 낸 산문집을 보면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나오거든요. 김현 선생님은 그걸 30년도 전에 알아봤다는 게 너무 대단하죠.     


M3  토이 스케치북

https://youtu.be/6b8SC4zgdwk


ann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만나보고 있어요두 번째로 김현 선생님의 <행복한 책읽기이야기하고 있는데요기억에 남는 구절들이 있을까요.     

아포리즘이라는 게 있거든요. 굉장히 깊이 있는 진리를 짧은 문장에 압축해서 담아내는 걸 아포리즘이라고 하는데요. 아포리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인생의 체험이 녹아 있는 아포리즘은 사실 나쁘게 볼 이유가 없죠. 김현 선생님의 이 책에는 정말 아포리즘의 절정이라고 할만한 글들이 수두룩합니다.          


ann 몇 개만 소개해주세요.

제가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쳤던 부분들인데요. 이런 문장이 나와요.

‘잘못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읽은 책에 있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반성하게 되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저도 어쨌든 이런 자리에서 책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동안에는 말이죠. 이런 말도 나와요.

‘아름답다의 아름은 알음알음의 알음, 앎의 대상이다. 아는 물건 같다가 아름답다의 어원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아름답다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으로 쓰던 단어, 표현을 새롭게 돌아보게 되죠. 아름답다고 말한다는 건 그 대상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정말 우리가 그렇게 이 말을 쓰고 있나, 되돌아보게 되는 거죠.


ann 정말 짧은데도 여운이 오래가는 문장들이네요.

이렇게 문학평론가가 쓴 산문집을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던 단어나 말에 대해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은 거 같아요. 어떤 소설이나 시집을 읽어야 할까 고민할 때 참고할 만한 이야기들도 많고요. 문학평론가라고 해서 너무 어렵게만 생각마시고 많이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M4 언니네 이발관 – 아름다운 것

https://youtu.be/MYYXLw8jR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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