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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Dec 16. 2018

2018년 우리 곁을 떠나 별이 된 작가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2월 2일 쉰여섯 번째 방송은 올해 우리 곁을 떠난 작가들의 책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벌써 12월이 됐잖아요. 올해도 슬슬 끝이 보이는 시점이니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의 방송을 준비했는데요.


ann 2018년을 마무리하는 방송어떤 내용의 방송인가요?     

올 한 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문학계에도 마찬가지인데요.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너무 안타까운 상실도 적지가 않았거든요. 좋은 책, 좋은 소설, 좋은 시를 쓰는 작가들을 올해는 유난히 많이 잃은 한 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매년 매해가 그렇겠지만 올해는 어쩐지 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그분들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올해 세상을 떠난 작가들의 책을 한 권씩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보통 작가를 등대에 비유하잖아요책과 글로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존재새로운 작가들이 늘 등장하지만 그만큼 좋은 작가들을 매년 잃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죠.     

맞습니다. 모든 작가들이 다 소중한 존재지만, 올해 세상을 등진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유난히 안타깝고 아쉬운 분들이 많거든요. 등대로 치면 잔잔한 바닷가에 있는 등대가 아니라 폭풍우 한가운데 있는 등대 같은 작가들이었죠. 세상의 파도를 누구보다 앞서서 맞이했던 분들이라 더 아쉬운 마음도 큰 것 같아요. 

ann 먼저 만나볼 작가는 어떤 분인가요?     

소설가 최인훈 작가를 제일 앞에 놓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올해 7월 23일에 영면하셨죠. 저희 방송에서도 한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긴 한데요. 최인훈 작가는 사실 큰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죠. 한국 현대 문학의 신화적 존재 중 한 명이고요. 특히 1960년에 나온 ‘광장’이라는 한 편의 소설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황이 끝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지금 현재의 이야기라고 할 만한 걸작이죠.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은 광장을 놓고 ‘어느 시대 어느 정황에서나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의무로서의 지워질 사랑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고요.


ann 최인훈 작가는 정말 두말이 필요 없는 대작가죠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소설에 관심이 많지 않은 분들은 광장 말고는 다른 작품이 잘 생각나지 않기도 해요.     

최인훈 작가의 글이 관념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거든요. 아무래도 소설을 즐기지 않는 분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건 소설도 좋지만 산문집을 한 번 읽어보시는 게 어떨까 싶어요. 최인훈 선생의 산문도 정말 좋은데 막상 잘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ann 어떤 책인가요?     

최인훈 작가의 대표 산문들을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낸 ‘바다의 편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조금 두꺼운 책이긴 한데요. 그래도 최인훈이라는 한국 문학의 대작가가 인간과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 고민들을 자세하게 풀어낸 책이거든요. 틈틈이 읽으시면 참 좋을 책입니다.

특히 이 책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길에 관한 명상’이라는 글을 보면 최인훈 선생이 거의 소설가가 아니라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길에 대한 소설이나 시는 참 많은데, 이 글은 그런 길에 대한 모든 비유나 은유를 집대성해서 설명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예컨대 고대 영웅들을 보면 늘 길을 떠나잖아요. 그게 인류의 집단지성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예언적인 느낌도 있고 정말 적절한 분석이라는 생각도 들죠.


ann 최인훈 선생의 산문집 바다의 편지’ 이야기해봤고요노래 한 곡 듣고 더 이야기해볼게요.     

안녕바다의 담담입니다.     


M1 안녕바다 - 담담

https://youtu.be/Fm9OyQHFy20


ann 올 한 해 우리가 잃은 작가들 이야기하고 있어요먼저 최인훈 선생 만나봤고요이번에 소개해줄 작가는 어떤 분인가요? 

이번에는 허수경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ann 허수경 시인이 올해 10월에 별세하셨죠독일에서.     

너무너무 안타까운 이별이었죠. 허수경 시인에 대해서 짧게 소개해드리면요. 1964년에 진주에서 태어나셔서 경상대 국문과를 졸업하셨고요. 1987년에 시인으로 등단하셨습니다. 첫 시집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인데요. 이십대 중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원숙한 한국어에 독자적인 미학관을 보여줘서 일약 문단의 샛별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십대 후반에 두 번째로 내놓은 시집도 굉장히 큰 사랑을 받았고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독일로 떠나셨죠.


ann 독일로 가신 이후에 현지에서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하고 돌아오지 않으셨죠.     

그렇죠. 시인은 누구보다 모국어에 민감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낯선 이국의 땅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돌아올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허수경 시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죠. 대신 먼 이국 땅에서 한층 더 깊어진 자신만의 시를 써나갔고요. 허수경 시인의 시는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테니까요. 오늘 특별히 소개해드리기보다는 산문집 한 권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ann 허수경 시인이 남긴 산문집어떤 책인가요?     

올해 8월에 나온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는 산문집인데요. 이 책은 2003년에 나온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이라는 제목의 산문집 개정판입니다. 나온 지 15년 만에 개정판을 낸 이유가 있는데요. 허수경 시인이 작년부터 암투병을 했거든요. 올해 2월에 시인이 직접 출판사에 개정판을 내달라고 연락을 해왔다고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특별히 부탁을 한 거죠.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시인이 젊어서 독일로 떠나서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했잖아요. 모국어보다 독일어며 외국어를 쓸 날이 더 많았을 테고요. 이 책은 그런 경험에서 오는 이야기들이라고 할까요. 모국어를 잃은 시인의 외로움과 서러움, 때로는 배고픔 같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는 책입니다. 


ann 모국어를 잃은 시인참 생각만 해도 외롭고 슬퍼지는 말이네요.     

이 책을 낸 출판사의 서평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내가 주춤하게 된 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시인이 쥐고 있는 손수건이 죽음이었구나 하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였습니다. 그러면서 알았지요. 아, 한국을 떠나는 순간 시인은 죽었구나. 그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니까 거죽은 그대로 둔 채 삶과 죽음을 겁도 없이 오갈 수 있었던 거겠구나’

이 설명대로 이 책은 삶과 죽음을 겁도 없이 오간 허수경 시인의 경험들, 그 경험을 시인 특유의 담담하고 든든한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ann 인상 깊은 문장이나 글이 있으면 잠깐 소개해주세요.     

참 좋은 글이 많은데요. 가소로운 욕심이라는 글을 잠깐 소개해드릴게요. 시인이 독일의 대학 기숙사에 살 때 이야기인데요. 기숙사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풀밭에 토끼들이 자주 들렀다고 합니다. 토끼들이 마음에 들어서 당근을 주면서 서로 친해졌다고 하고요. 그러다 시인이 자신도 모르게 욕심을 내서 토끼의 목에다 리본을 달아줬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토끼들은 리본을 단 채로 풀밭을 찾아왔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날 시인이 기숙사 주차장을 지나는데 차에 치인 토끼를 우연히 보게 된 거예요. 그런데 죽어 있는 토끼의 목에 푸른 리본이 매여 있었던 거죠.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시인은 이렇게 적습니다.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우리는 올해 이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나가던 작가를 한 명 잃은 거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계속 얘기해볼게요.     

이상은의 무지개입니다.


M2 이상은 - 스타더스트

https://youtu.be/gW_PWPrGheU


ann 올해 우리 곁을 떠난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있어요소설가 최인훈시인 허수경또 어떤 작가가 있나요?

이번에는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교수인데요. 올해 8월에 돌아가셨죠. 고려대 불문과 교수로 지내면서 번역가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신 분인데요. 이 시대의 선생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 많은 사람에게 문학을 통한 가르침을 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그런 분이죠. 2013년에는 생애 처음으로 산문집을 냈거든요. ‘밤이 선생이다’라는 제목의 산문집이었는데, 문학평론가의 산문집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일은 흔치는 않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7만부가 팔리면서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정말 필독서처럼 돼 있습니다.


ann 밤이 선생이다는 정말 아름다운 글이 많은 책이죠.     

그 책에서 ‘과거도 착취당한다’는 산문이 있는데요. 우리가 시간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런 방식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읽고나면 무릎을 탁 치면서 반성하게 되는 그런 글인데요. 글에서 이렇게 쓰셨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 같다’

어려운 말을 쓰지 않으면서도 정말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죠.

ann 책밤지기가 추천하는 황현산 선생의 책은 뭔가요?     

밤은 선생이다도 많은 분들이 좋아한 책이었고요. 황현산 교수의 마지막 책이 올해 6월에 나왔거든요.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라는 제목의 산문집인데요. 선생이 타계하기 두달 전에 나온 책의 제목에 부탁이라는 말이 들어있으니까 어쩐지 코끝이 찡하게 되죠. 


ann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마지막 부탁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나요?     

밤은 선생이다도 그랬지만, 황현산 선생의 산문은 한국 사회의 여러 이슈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거든요. 문학평론가의 산문이라고 해서 소설이나 시에 대한 이야기들만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요. 민주주의, 대학의 청소노동자, 번역 논쟁, 여성 혐오, 위안부 문제... 정말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계시죠.

다만 전작인 밤은 선생이다보다는 이번 사소한 부탁은 조금 더 문학적인 고민이 많이 담겨 있는데요. 선생 스스로 평생 해온 작업들을 정리하는 느낌도 조금은 받았고요.


ann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도 소개해주세요.     

좋은 구절이 정말 많은 책이지만요. 우리 사회에 남긴 황현산 선생의 조언 같은 구절을 골라봤는데요.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아 대한민국‘과 ’헬조선‘ 사이에서 사라진 건 토론과 그에 따른 희망이다. 지옥에 대한 자각만이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한다. ’헬조선‘은 적어도 그 지옥이 자각된 곳이다’

우리가 사는 곳의 현실에 대한 자각이 우리의 현실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M3  악동뮤지션 – 사소한 것에서

https://youtu.be/kjam8ufamdM


ann 올해 우리 곁을 떠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최인훈허수경황현산쟁쟁한 작가들이 정말 올 한 해 우리 곁을 떠났네요혹시 외국 작가 중에 올해 세상을 떠난 분은 없나요?     

한국에서 사랑받은 작가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이는 미국의 소설가인 필립 로스가 있었습니다. 올해 5월에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에브리맨, 미국의 목가, 휴먼스테인 같은 쟁쟁한 작품들로 유명한 작가죠.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에 나오는 글 중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글이 있거든요.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라는 문장인데, 어쩐지 미국스러운 문장이면서도 여러 가지 인생에 고민이 많아질 때 이 문장을 곱씹으면 왠지 힘이 나는 그런 게 있죠.


ann 필립 로스의 책 중에서도 추천해주실 게 있나요?     

워낙에 유명한 소설들이 많으니까요. 그보다는 에세이를 한 권 추천해드리고 싶은데요. ‘사실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필립 로스의 자전적 에세이인 동시에 사실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인데요. 작가가 5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책입니다. 말 그대로 거장의 속살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인데요. 어떤 사실들이 작가라는 필터를 거쳐서 어떻게 소설로 탄생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ann 필립 로스.. 또 다른 작가도 있을까요?     

소설가나 시인 같은 문학계의 작가는 아니지만요. 지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마블 코믹스의 세계를 만든 만화가 스탠 리도 빼놓을 수가 없겠죠. 지난달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국내에서는 마블 히어로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하시면서 많이 알려졌죠. 1941년에 캡틴 아메리카 각본 작업에 참여한 걸 시작으로 스파이더맨,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 아이언맨, 토르 같이 수많은 수퍼 히어로의 탄생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고요. 마블 코믹스 편집장, 마블엔터테인먼트 사장을 지내면서 지금의 마블 세계관의 주춧돌이 된 인물이죠.


ann 마블 좋아하는 분들 많으시잖아요스탠 리의 사망 소식에 다들 안타까워했을 것 같아요.     

영화가 나오는데 차질은 없지만요. 정신적인 지주가 사라졌으니까요. 스탠 리에 대해서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은데요. 국내에서는 그래픽 노블로 스탠 리의 일대기를 그린 회고록이 한 권 나와있습니다. 스탠 리 본인이 제작에 참여한 거라니까 과장은 있을지언정 비교적 사실에 충실하게 그려냈을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스탠 리가 마블 영화에 나와서 한 명대사를 하나 인용하고 싶은데요. 2007년에 나온 스파이더맨 영화에서 스탠 리가 고민에 빠진 주인공에게 이런 대사를 해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네.”

스탠 리도 그렇고 오늘 소개해드린 여러 작가들이 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또 힘이 닿는 한에서 성공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들 편안히 쉬시기를 기도할게요.          


M4 E.L.O – Mr. Blue Sky

https://youtu.be/aQUlA8Hcv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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