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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Dec 16. 2018

골목길의 등대 편의점 이야기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2월 9일 쉰일곱 번째 방송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책들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우리가 집, 회사 말고 매일 하루에 두 번 이상 가는 곳이 있다면, 어디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카페도 하루에 두세번은 가는 날이 있긴 한데, 역시 가장 자주 가는 건 편의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ann 편의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 됐죠.     

그냥 음료수, 과자만 파는 곳이 아니라 요즘에 보면 정말 이것저것 안 파는 게 없죠. 또 편의점을 식당처럼 이용하는 사람도 많고, 택배를 보낼 때도 편의점에 가고요. 좀 외진 지역에 사는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골목에 편의점이 하나 있으면 그렇게 안심이 된다는 말도 있고요. 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을 하니까 늦은 밤에도 붉을 켜놓으니까요.


ann 그만큼 우리 안에 편의점이 깊게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겠죠.     

맞습니다. 통계를 좀 찾아보니까 편의점 수가 2011년에 2만1222개였는데 작년 말에는 3만9807개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전국적으로 편의점을 찾는 사람이 하루에 천만명이 넘는다고도 하고요. 우리 삶에 편의점이 깊이 들어와 있는 만큼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많거든요. 오늘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삼은 책들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ann 먼저 만나볼 책은 어떤 건가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매일 갑니다, 편의점’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인데요. 봉달호라는 필명을 쓰는 실제 편의점 점주 분이 쓴 책입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에 14시간씩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편의점 생활에 대해 짬짬이 기록해뒀다가 한 권의 책으로 낸 거죠. 이 책의 부제가 어쩌다 편의점 인간이 된 남자의 생활 밀착 에세이인데요. 한 번 읽어보시면 생활 밀착 에세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정말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많아요.

ann 어떤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나요?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책을 읽으면 괜히 읽기도 전에 피곤해지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다뤄요. 피자젤리를 좋아하는 꼬마 손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매일 컵라면을 끓이러 오는 직장인 단골손님 이야기도 나오고요. 어려운 이야기는 없거든요. 그런데 시시콜콜해 보이는 기록들을 읽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드는거죠. 편의점은 우리가 매일 찾아가는 공간이잖아요. 그런 공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고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지 엿보는 기회가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한 번 얼굴을 트고 나면 어색한 사람이 없어지듯이 편의점이라는 공간도 이 책을 읽고 나면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거죠.


ann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소개해주세요.     

저도 직장인이니까요. 직장인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데요. 직장인으로 보이는 어떤 손님이 컵라면을 8개나 사고는 그걸 편의점 안에서 뜯어서 뜨거운 물을 일일이 다 붓더래요. 그러더니 카운터로 와서는 컵라면 8개를 어떻게 하면 들고 갈 수 있겠냐. 방법이 있겠냐고 묻더래요. 한두 개도 아니고 8개는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회사 상사가 컵라면을 끓여오라고 시켰다는 겁니다. 당연히 사무실에도 정수기가 있을텐데 편의점에서 물을 직접 부어야 더 맛있다고 물을 부어오라고 시킨 거죠. 사실 정수기 온수보다 편의점 온수기가 물이 더 뜨거워서 맛의 차이가 조금 생기기는 하겠죠. 그런데도 말이 안 되는 직장 갑질을 한 거죠. 그렇게 둘이 얼굴을 튼 뒤로는 직장인이 편의점에 들를 때마다 이야기를 하게 되고, 회사를 그만두는 문제에 대해서도 상의를 해주고,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편의점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참 많은 일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더 이야기해볼게요.          

블루파프리카 겨울 탓입니다.


M1 블루파프리카 – 겨울 탓

https://youtu.be/LFbykOXhCbY


ann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먼저 편의점 사장님이 직접 쓴 매일 갑니다편의점’ 이야기하고 있어요또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었나요? 

재밌는 이야기도 많지만 책을 보면 은근히 편의점에 대해 몰랐던 여러 정보들도 많이 얻을 수가 있거든요. 예컨대 편의점에서 많이 파는 물건들의 마진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리해놨어요. 요즘 편의점 도시락 많이 먹잖아요. 이런 도시락 하나를 팔면 편의점은 30% 정도 마진을 남긴다고 합니다. 2000원짜리 캔맥주는 마진이 30~40%, 900원짜리 캔커피는 50% 정도 마진이 남는다고 하고요. 마진이 제일 낮은 건 뭘까요? 바로 담배인데요. 편의점 판매 건수의 상당부분을 담배가 차지하는데도 마진은 9% 정도로 제일 낮은 편이라고 합니다.


ann 편의점을 하는 분들이 아니면 정말 알 수 없을 정보들이네요.     

그런 유머들도 있어요. 편의점 점주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고 하는데요. 크리스마스나 명절 때만 오면 이런 글이 올라온대요. “왜 우리 편의점 알바들은 크리스마스만 되면 친척 중에 누가 돌아가시는 걸까요?” 이런 글이 올라오면 우리 편의점도 그렇다고 공감의 댓글이 줄줄 달린다고 하고요.

그리고 편의점 점주들이 제일 싫어하는 손님은 어떤 손님일까요? 이 책을 쓴 저자에 따르면 진열대 안쪽의 제품을 꺼내는 손님이라고 합니다. 편의점 상품은 보통 일렬로 진열해 놓잖아요. 앞쪽일수록 유통기한에 가깝고 뒤쪽에 있을수록 유통기한에서 멀어지는 거죠. 먼저 들어온 제품이 먼저 팔릴 수 있게 진열을 하는 건데요. 이게 편의점 직원들이 손으로 일일이 해놓는 거잖아요. 그런데 억지로 앞쪽이 아니라 뒤쪽에 있는 제품을 꺼내다보면 다시 정리를 해야되는 거죠.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건 아무 차이도 없는데 굳이 일을 두 번 하게 만드는 손님을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제일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ann 편의점에서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거죠그런 걸 배우는 느낌이겠어요.     

그렇죠. 편의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들르는 공간이다 보니까 조금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식당 갈 때랑 다르게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나 점주랑은 인사도 데면데면하고요. 음식을 먹고 난 뒤에도 제대로 안 치우고 일어날 때도 있고요. 이 책을 읽고나면 편의점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이 일하는 일터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어요.


ann 다음에 편의점을 갈 때는 계산을 하고 꼭 인사를 하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냥 재밌게 훑어보고 말 책만도 아닌게, 최저임금이 올해 내내 이슈였잖아요. 이 책도 편의점을 하는 입장에서 최저임금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요. 편의점 본사와 제조사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요. 편의점이 전국에 4만여개나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면 4만명이 편의점 사업을 하는거고, 거기에서 일하는 알바생이며 딸린 가족들이며... 편의점 산업에 얽혀 있는 국민이 한 둘이 아닌거죠. 편의점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도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도 같습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계속 얘기해볼게요.     

이한철 편의점의 시에스타입니다.


M2 이한철 – 편의점의 시에스타

https://youtu.be/rA5nTSJNys4


ann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책들 만나보고 있는데요이번에는 어떤 책을 볼까요?     

이번에는 소설인데요. 박영란 작가의 청소년 장편소설인 ‘편의점 가는 기분’을 가져와봤습니다.


ann 청소년 장편소설이라고 하면 일반 소설과는 조금 다를 것도 같네요.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짧게 소개를 해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간단히 말하면 청소년을 독자로 쓴 소설을 말합니다. 청소년은 뭔가 애매한 단계처럼 보이잖아요. 아동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 커버렸고 그렇다고 성인으로 볼 수도 없고요. 몸은 다 자랐지만 아직 성장이 멈추지 않은 상태인 거죠. 청소년 문학은 그런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혹은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장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른이 되고서도 청소년 문학을 종종 읽게 되는 건 마음이 덜 자란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청소년 문학을 찾아 읽으면 뭔가 위로를 받는 느낌이 있습니다. 

ann 편의점 가는 기분은 어떤 책인가요?     

이 책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년이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는 여러 손님들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겨울이 배경인데요. 소년과 함께 사는 할아버지가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에서 마트 일을 하다가 새로 생긴 원룸촌에 편의점을 열어요. 그러면서 소년도 할아버지를 도와서 늦은 밤에 편의점을 지키게 된 거죠.


ann 늦은밤 편의점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올까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요. 주인공 소년과 소통하게 되는 사람들은 이런 손님들이에요. 아픈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꼬마아이가 있고요. 동네 사람들 몰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다니는 캣맘도 있고요. 정체를 알 수 없이 갑자기 편의점을 들렀다가 사라지는 청년도 있고요. 그런 다양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사연을 알아가면서 주인공 소년도 함께 성장해가는 이야기인 거죠.


ann 어쩐지 따뜻한 느낌의 책일 것 같네요.     

그런 부분이 큰데요. 그렇다고 동화 같은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현실이 어떨 때는 적나라하게 그려지기도 해요. 캣맘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잖아요. 책에 보면 고양이가 불에 타는 장면도 나오거든요. 그때 주인공 소년이 깜짝 놀라는데, 그걸 보면서 같이 일하던 알바생 누나가 이렇게 말해요.

“세상엔 그보다 훨씬 두려운 일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하고요. 편의점은 그런 잔인한 세상에서 등대 같은 공간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일종의 중립지대 같은.     


M3  damien rice – the blower’s daughter

https://youtu.be/5YXVMCHG-Nk


ann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책들 만나보고 있어요박영란 작가의 청소년 문학 편의점 가는 기분’ 이야기 중인데요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가슴이 먹먹한 이야기도 많은데요. 아픈 엄마랑 살고 있는 꼬마 수지라는 아이가 나오거든요. 한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나서 추운 원룸에 있다가 아픈 엄마를 데리고 편의점에 밤을 새러 온 거예요. 주인공 소년은 그런 모녀를 내쫓지 않고 지켜보다가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말없이 건네고요. 원래는 폐기하거나 알바들이 먹는 도시락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말없이 힘을 주는 거죠.

캣맘이 하는 일이 그런 일이잖아요. 집 없이 떠도는 고양이들에게 배고픔을 달랠 음식을 챙겨주는 일. 주인공 소년이 한 일도 마찬가지인 거죠. 고양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렇게 도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이야기죠.


ann 소년의 마음 씀씀이가 남다르네요.     

밑줄 쳐가면서 읽을 만한 대목이 꽤나 많은데요. 책에 보면 혼자 사는 여고생이 나와요. 그런 여고생이 술을 사갈 때 주인공 소년은 묻지 않고 술을 팔아요. 당연히 불법이긴 한데 주인공 소년의 독백이 뭐랄까 여운이 있죠.

“미성년자한테 주류를 파는 건 불법이다. 하지만 미나는 혼자 산다. 사람이 혼자 산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어른인 셈이다.”

우리가 미성년자, 청소년이라고 나이를 기준으로 딱 선을 그어서 볼 때가 많은데, 사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숫자로 그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닌거죠. 이런 이야기를 에세이에 썼다면 불법이라고 논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소설이니까요. 이런 걸 계기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게 소설의 역할인 거죠. 


ann 또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나요?     

소설의 말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이 방식의 삶이 망한다는 건, 다른 방식의 삶이 시작된다는 뜻일지도”라고요.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망했다고 끝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돼요.

박영란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저 대사는 순전히 철저하게 자신의 삶에서 나온 거라고 하셨더라고요. 정말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하고 소설에 대해서도 마음을 접고 털어버리고 나니까 오히려 지금의 소설이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하면서요. 망하지 않을 거야 하고 억지로 버티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때로는 그래, 망했네, 망했으니까 다시 시작하지 뭐, 하고 털어버리는 순간도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ann 편의점에 대한 책 오늘 쭉 만나봤는데요사실 편의점에 대한 책이라고 해서 작년에 굉장히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죠. ‘편의점 인간이라는 책을 가져오실 줄 알았어요.     

편의점 인간도 재밌는 책인데요. 그 소설은 일본이 배경이잖아요. 일본의 편의점과 한국의 편의점은 서로 닮아 있긴 한데 뭔가 조금 다르거든요.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한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들이 썰물 때처럼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일본 사회와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들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거죠. 편의점을 통해서 이런 고민들을 해보자고 한다면, 우리의 편의점이 배경인 책들로 고민을 시작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한국 작가들이 쓴 책으로 골라봤어요.

물론 편의점 인간도 정말 재밌고 고민할 거리가 많은 책입니다. 일본 청년들의 모습이 지금 한국 청년들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기도 하고요.


M4 coldplay - yellow

https://youtu.be/yKNxeF4KM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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