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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Dec 25. 2018

2018년 올해의 책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2월 23일 쉰아홉 번째 방송은 올해 주목받은 책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어느새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끝을 보이고 있잖아요. 이맘때가 시상식 시즌인데요. 출판계도 다르지는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올해의 책들을 선정하고 있거든요. 오늘은 2018년을 정리할 겸 올해의 책에 선정된 책들을 살펴보고, 제가 선정한 올해의 책도 같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ann 어떤 책들이 과연 올해의 책에 선정됐을지 궁금하네요.

여러 언론사가 연말이면 올해의 책을 선정하거든요. 여기에 선정된 책들을 살펴보면 일정한 패턴 같은 게 보이거든요. 제가 보기에 제일 두드러진 패턴은 전문 작가가 아닌 현장 전문가들의 책이 굉장히 많은 인기를 얻었다는 겁니다.


ann 소설가나 시인 같은 작가가 아니라 전문가가 자기 분야에 대해 쓴 책이 인기였다는 거죠?

맞습니다. 일단 여러 언론사 선정 올해의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골든아워’거든요. 이 책은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 교수가 올해 낸 에세이죠. 2002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자신이 진료하고 수술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치료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인데요. 이국종 교수는 두말이 필요없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잖아요. 그런 이국종 교수의 에세이로 출간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실제로 나온 책도 이국종 교수답다는 평가를 들었죠.

ann 확실히 이국종 교수는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이국종 교수의 책은 많은 독자들이 기다렸을 것 같아요.

이 책을 보면 참 이 분이 글도 잘 쓰는 구나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국종 교수가 소설가 김훈을 좋아한다고 하거든요. 책을 보면 문체도 어느정도 닮아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여러 언론사에서 주목받은 책은 ‘검사 내전’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저희 방송에서도 소개해드린 적이 있죠. 18년차 현직 검사가 검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과 감상을 기록해둔 에세이인데요. 우리 사회의 온갖 나쁜 일들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게 검사라는 직업이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인간 사회에 대한 굉장히 깊은 성찰이나 고민 같은 게 느껴지는 책이죠.


ann 사기꾼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기억에 남는 책이었어요.

그렇죠. 굉장히 읽는 재미도 있는 책이었거든요. 검사내전은 아직 안 읽어본 분들이나 평소에 책을 싫어하는 분들도 한 번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현직 검사가 직접 법에 대한 상식을 알려주는 기회가 흔치는 않잖아요. 또 현장 전문가의 책 중에 눈에 띄는 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도 있습니다.


ann 이 책은 저희 방송에서 다루지 않았던 책이죠?

한 번 기회가 되면 꼭 소개하고 싶었던 책인데요. 이 책은 1급 지체장애인이자 변호사인 김원영씨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제도, 철학, 일상의 차별 이런 것들을 굉장히 밀도 있게 분석한 책입니다. 저자 본인이 1급 지체장애인인 동시에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관으로 일하기도 했거든요. 이런 류의 책이 이론에만 빠지거나 감성에만 치우치기 쉬운데, 김원영씨의 책은 딱 그 중간에서 흔들리지 않고 가거든요. 사회학자 노명우씨가 이 책에 대해 ‘이 책은 삶으로 쓴 텍스트’라고 했는데 한 번 읽어보시면 무슨 말인지 단박에 공감하실 겁니다.


M1 장기하와 얼굴들  나란히 나란히

https://youtu.be/wEYUGEFMoxU


ann 연말을 맞아 올해의 책들을 만나보고 있습니다또 어떤 책들이 올해의 책에 선정됐나요?

이번에는 문학 작품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언론사가 선정하는 올해의 책에는 보통 소설이나 시집은 많지가 않거든요. 올해도 비슷했는데 그 와중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책들이 몇 권 있습니다.


ann 어떤 책인가요?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에 꼽은 소설이 한 권 있는데요. 바로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입니다.

ann 김금희 작가는 저희 방송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죠.

2016년에 낸 ‘너무 한낮의 연애’라는 단편집을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김금희 작가는 정말 놀랍죠.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문단에 정말 주목받는 작가가 여럿 등장했거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늘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별로고, 세 번째는 두 번째보다 더 별로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김금희 작가는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늘 기대를 경신하는 그런 작가예요. 올해 나온 첫 장편소설인 ‘경애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ann 굉장한 극찬이군요.

이 책은 올해가 너무 힘들었다, 외롭다,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소설이 줄 수 있는 위로라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는 책이거든요.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해드리면 경애와 상수라는 두 인물이 한 회사에서 만나면서 진행되는 연애서사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배경에 자리한 두 인물의 과거 이야기, 그리고 두 인물이 함께 일하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함께 엮이면서 결코 평범한 연애서사로 끝나지 않아요.


ann 어떤 이야기가 숨어져 있나요?

경애와 상수를 이어주는 하나의 사건이 있거든요. 두 사람이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인천의 한 호프집에서 불이 나서 학생들이 수십명이 죽어요. 불이 나니까 학생들이 대피하려고 하는데 호프집 사장이 돈을 내고 나가라면서 문을 잠겄다가 참사로 이어진 거죠.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가져온 건데요. 경애는 그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 상수는 그 사건에서 친한 친구를 잃은 생존자로 나와요. 재난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인 거죠.

이 책에서 아마 많은 분들이 밑줄을 그었을 문장이 있는데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ann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이야기해봤고요또 올해의 책에 오른 다른 문학 작품은 없나요?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 김봉곤 작가의 ‘여름, 스피드’ 같은 소설이 있고요. 시집 중에서는 정한아 시인의 ‘울프 노트’가 눈에 띕니다.


M2 H.E.R. - FOCUS

https://youtu.be/Z5ze4CUAkE8


ann 올해의 책에 선정된 책들 이야기해보고 있습니다현장의 전문가들이 쓴 에세이문학 작품들 쭉 이야기해봤어요여기에 책밤지기가 나름대로 선정한 올해의 책들도 많이 포함돼 있나요?

저도 올해 읽은 책들을 쭉 정리해봤는데요. 앞에서 소개해드린 책 중에 제가 고른 올해의 책이랑 겹치는 것도 몇 권 있습니다. ‘검사내전’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같은 책들이 있는데요. 다들 꼭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들이고요.


ann 그럼 앞에서 소개하지 않은 책 중에 책밤지기의 올해의 책은 어떤 게 있나요?

j 일단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이 책은 언론사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요. 신형철 평론가는 정말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글쟁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을 꼭 많은 분들이 봤으면 싶은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책은 권여선 작가의 음식에세이 ‘오늘 뭐 먹지’가 있습니다.

ann 권여선 작가는 굉장히 유명한 소설가죠그런데 에세이는 처음 듣는 것 같은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제목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제목 때문에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책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정말 푹 빠져듭니다. 권여선 작가가 워낙 애주가이기도 한데, 동시에 음식에도 조예가 있거든요. 글솜씨야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한테 더 물을 것도 없는 거고요. 이 조합이 정말 대단합니다.


ann 음식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는 거군요.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집밥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입속에 고인 침을 조용히 삼키는데, 이건 순전히 집밥을 하지는 않고 먹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의 환상이 아닐까 싶다. “오늘 뭐 먹지?”라는 잔잔한 기대가 “오늘 뭐 해먹지?”로 바뀌는 순간 무거운 의무가 된다. 집밥이 무조건 맛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이 분명하지만, 옳지는 않다.’

참, 우리가 집밥에 대해 가지고 있던 순진한 환상이 왜 잘못됐는지 너무 간단명료하게 보여주죠. 그뿐 아니라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 어떤 술에 어떤 음식이 어울리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그런 책입니다.


ann 또 어떤 책이 책밤지기가 고른 올해의 책인가요?

그림책 중에서는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이 있습니다. 전 세계 소수언어를 삽화와 함께 보여주는 책인데 아이가 있는 분이라면 꼭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소설 중에서는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한강의 ‘작별’을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강 작가의 눈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요. 때마침 계절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고요. 앞에서 소개해드린 책까지 하면 정말 읽을 책들이 한가득인 겨울이 아닐까 싶네요.


M3 자이언티  멋지게 인사하는 법

https://youtu.be/nqMYG2Riq54


ann 올해의 책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여러 언론사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들 만나봤고책밤지기가 고른 올해의 책도 이야기를 해봤네요.

올해는 출판계 트렌드를 쭉 돌아보면 눈에 띄는 게 전문 작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정리한 책이 인기를 끈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컨대 올해 출판계에서 굉장히 핫했던 작품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거든요. 이 책은 출판사에서 일했던 평범한 직장인이 불안장애를 겪으면서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건데요. 정말 솔직한 고민들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책인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ann 평범한 사람들도 작가가 될 수 있는 한 해였죠.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같은 책들도 평범한 사람들이 에세이의 작가로 나서서 주목을 받은 경우였고요. 얼마 전에 저희 방송에서 소개한 편의점 점주의 에세이도 이런 경우겠죠. 예전에 비해서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일반인들이 작가로 나서는 경우도 늘었고, 그렇게 나온 책이 인기를 끄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아요. 사람들이 거창한 이야기보다 평범하고 공감할 수 있는 위로의 메시지에 더 귀를 기울이는 한 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죠. 내년에는 우리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한 번 책 한 권 낼 수 있게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M4 바버렛츠 겨울나기

https://youtu.be/UULrG1rgQ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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