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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01. 2019

긴긴 겨울밤엔 스릴러 두 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월 20일 예순세 번째 방송은 겨울밤의 지루함을 날려줄 스릴러를 소개했습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겨울에는 집밖에 나가기 싫죠. 특히나 요즘은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도 안 좋다보니까 더욱 집 밖에 나가기 싫은 날이 많은 것 같아요. 이런저런 이유로 겨울밤을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는데 이럴 때 지루함을 한 번에 날려줄 수 있는 책들이 있어서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ann 겨울밤의 지루함을 날려줄 수 있는 책들이군요. 

이런 겨울밤에는 스릴러만 한 책이 없거든요. 재미있는 스릴러 한 권이면 하룻밤이 순삭되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최고의 스릴러 작가 두 명의 작품들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ann 스릴러 작가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정유정, 해외에서는 스티븐 킹 같은 작가가 생각나네요. 예전에 저희 방송에서 소개한 트루먼 카포티도 있고요. 

그분들도 굉장히 유명한 분들이고요. 오늘 소개해드릴 분들도 그분들 못지않게 스릴러 문학에서는 입지전적인 분들인데요. 먼저 소개해드릴 작가는 미국의 스릴러 작가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입니다.


ann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어떤 분인가요? 

이분은 1921년에 태어나서 1995년 세상을 떠난 분인데요. 1950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199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셨고요. 여자 소설가로는 당시에 굉장히 드물게 큰 인기와 성공을 거머쥔 분이기도 하고요.

이분의 첫 작품이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이라는 스릴러 소설인데요. 소설이 나온 이듬해에 히치콕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서 소설과 영화가 함께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데뷔작부터 말 그대로 스타덤에 오른 스타 작가인 셈이죠. 전에 소개해드린 카포티처럼 처음에 큰 성공을 거두면 이후에 주춤하는 경우가 많은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꾸준히 고른 작품을 냈고요.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작품이죠. 리플리 시리즈로도 유명한 분입니다. 최근에는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가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캐롤’이라는 영화의 원작자로도 관심을 받았고요.

ann 스릴러 작가와 캐롤이라는 영화는 느낌이 전혀 다른데 같은 사람이군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을 아는 분들은 그 점에 놀라기도 하는데요. 사실 캐롤도 주인공들의 내면 묘사가 굉장히 치밀하고 뛰어나잖아요. 바로 그 부분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장기거든요. 이른바 심리스릴러라고 하는 분야의 창시자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리플리 시리즈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같은 작품을 보면 인물의 심리 묘사가 정말 뛰어납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타임스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50인 중 1위를 차지한 분이거든요. 스릴러나 범죄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ann 거의 40년에 걸쳐 활동한 분이니까 많은 작품이 있을 텐데요. 어떤 작품을 읽어보는 게 좋을까요? 

일단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데뷔작인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꼭 읽어보실 필요가 있고요. 이 소설은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가 교환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거든요.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의 범죄자와 지극히 평범한 남자가 서로의 골칫거리를 대신 해결해주게 되면서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파헤치는 작품입니다. 


M1 검정치마 - Antifreeze

https://youtu.be/PGxcvForjuY


ann 겨울밤의 지루함을 날려줄 스릴러의 대가들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데뷔작 말고 또 추천해줄 책이 있나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은 최근 들어서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는 분위기인데요. 2017년에도 ‘이토록 달콤한 고통’이라는 제목의 책이 한국에 번역 출간됐습니다. 이 책은 1960년에 처음 나온 책인데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대표작인 리플리 시리즈를 쓰던 중에 나온 책입니다. 작가적인 역량이나 야심이 최고조에 올라 있을 때 쓴 책이니까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날카로운 심리 묘사를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ann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주세요. 

데이비드라는 과학자가 주인공인데요. 애나벨이라는 이름의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요. 그런데 일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애나벨이 다른 남자랑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게 된 거죠. 보통의 사람이라면 포기하고 말텐데 데이비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스릴러가 되는 거기도 하지만요. 데이비드는 포기하는 대신에 언젠가 애나벨과 함께 살게 되리라는 욕망을 가지고 가명으로 집을 하나 더 구해요. 그 집에는 애나벨과 함께 사는 걸 생각해서 가구나 장식품 하나하나를 꾸미고요.


ann 굉장한 집념이네요. 스토킹 아닌가요. 

그렇죠. 그냥 혼자 그러고 마는 게 아니라 애나벨의 집에 계속 전화를 하고 편지를 해요. 내가 꾸며놓은 집을 보러 와라. 언제까지 사랑하지 않는 남자랑 같이 살 거냐. 이런 말들을 계속 보내는 거죠. 그러니까 애나벨의 남편도 데이비드의 존재를 알게 되고요. 어느 날 술을 마시고 데이비드가 따로 차려놓은 집에 갑자기 방문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두 남자가 다투게 되는데 데이비드한테 떠밀린 애나벨의 남편이 머리를 찧으면서 죽게 돼요. 살인을 저지르게 된 건데 데이비드는 태연하게 시체를 싣고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합니다. 이상한 사람이 총을 들고 와서 위협을 하다 넘어지면서 죽었다고요. 그런데 신고를 자기 본명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집을 얻을 때 썼던 가짜 이름으로 한 거죠. 그리고는 그대로 잠적하고요.


ann 애나벨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일 테고요. 

그런데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애나벨이 데이비드한테 마음을 주는 건 아니거든요. 거기에 좌절하면서 데이비드가 폭발하게 되고 결국 파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데이비드가 애나벨의 남편을 죽이고 숨고 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추리소설처럼 범인을 숨기거나 단서를 소설에 몰래 숨겨놓거나 하는 게 없어요. 그런데도 이 소설에 빠져들게 되는 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이스미스 특유의 탁월한 심리 묘사의 힘인 거죠. 이 소설만 해도 따지고 보면 등장인물이 네 명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그런데 네 명의 등장인물이 치고받으면서 긴장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대단해서 한번 보기 시작하면 책이 끝날 때까지 좀처럼 책장을 덮기가 어렵죠.


ann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 중에 또 추천해주시면요? 

하이스미스의 장기가 심리 묘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또 하나가 있다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차분하고 냉담하게 서술하는 데 있거든요. 우리가 흔히 살인자는 엄청 잔인하고 끔찍하고 괴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실제 수많은 살인사건의 가해자들은 우리처럼 지극히 평범한 속에서 나온 경우가 많거든요. 범죄소설 전문 편집가인 오토 펜즐러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진정으로 좋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누가 착한 사람이고 누가 악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이 바로 심연입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한 남자가 어떻게 범죄자가 되는지, 그리고 그런 범죄자를 왜 우리가 악한 사람이라고 단정해서 이야기할 수가 없는지 너무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거든요. 이 소설도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M2 오슬로 – 좋을 때다

https://youtu.be/TZs5HqcOp30


ann 겨울밤의 지루함을 날려줄 스릴러의 대가들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이야기를 해봤고요. 두 번째로 만나볼 스릴러의 대가는 누구인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작가는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요 네스뵈입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서 지금껏 오슬로에서 살고 있는 작가인데요.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죠. 1960년생으로 아직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분입니다.


ann 그러고보면 북유럽이 범죄소설, 스릴러 장르의 본고장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노르딕 누아르라는 이름까지 있을 정도로 북유럽 스릴러가 유명하죠.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이 쓴 ‘밀레니엄’ 시리즈가 아무래도 가장 유명할 테고요. 오늘 소개해드릴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가 그 뒤를 잇고 있죠. 여성 수사관 레오나 시리즈도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데요. 이 작품은 스웨덴 소설가인 제니 롱느뷔의 작품이죠. 제니 롱느뷔 같은 경우는 10대 때 스웨덴의 인기 걸그룹 멤버로 활동한 경력이 있고요. 요 네스뵈도 밴드 활동도 열심히 하거든요. 굉장히 다재다능한 작가들이 쉴 새 없이 나오는 곳이 북유럽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있어요.


ann 왜 북유럽에서 이렇게 스릴러와 범죄소설이 유명한 걸까요? 

일단 지리적인 특성이 있는 것 같고요. 북유럽을 가보면 일조량이 굉장히 적고 밤 시간이 길거든요. 해 질 무렵이 되면 거리가 굉장히 고요해져요. 대도시만 해도 그런데 나머지 스칸디나이바 반도의 작은 도시, 작은 마을들은 어떻겠어요. 지역 자체가 범죄소설을 구상하기에 제격이 곳이 아닐까 싶고요. 사람들도 범죄소설을 굉장히 즐겨 읽어요. 핀란드에 갔을 때 보면 서점의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범죄소설이나 스릴러가 7,8권은 있는 곳이거든요.

ann 오늘 소개해줄 요 네스뵈는 어떤 작가인가요? 

일단 말씀드린 대로 노르웨이의 국민작가로 유명하고요. 해리 홀레라는 형사 캐릭터를 만들어서 계속해서 시리즈를 내고 있거든요. 형사라고 하면 선한 이미지, 정의의 사도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해리 홀레는 정반대로 악과 싸우다가 악보다 더 악랄해진 형사라고 보시면 되고요. 19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깡마른 체격, 천재적인 수사 능력 이런 이미지도 어쩐지 북유럽풍이죠. 최근에 루터나 나쁜형사 같이 반영웅적인 형사 캐릭터가 인기를 끄는데 그 원조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ann 악당보다 더 악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가 열 권이 나왔잖아요. 그중에서 오늘 소개해주실 책은요? 

일곱 번째 시리즈인데요. ‘스노우맨’이라는 작품을 추천해드릴까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북유럽 스릴러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눈이거든요. 북유럽하면 하얀 눈이 끝없이 깔려 있는 순백의 땅이 생각나잖아요. 거기에 스릴러라는 장르를 더하면 그 순백의 평원에 새빨간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있는 거죠. 이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북유럽 스릴러의 이미지인데요. 바로 ‘스노우맨’이라는 소설이 딱 이런 이미지입니다. 해리 홀레 시리즈에 여러 배경이 나오지만 눈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서 골라봤습니다. 


M3 kent - socker

https://youtu.be/xBup4VmPm_Q


ann 겨울밤의 지루함을 날려줄 스릴러의 대가들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야기 중이에요. 어떤 책인가요? 

이 책은 추리소설의 구조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고 하는 걸 미리 말씀드릴 수가 없는데요. 소설의 첫 장면을 말씀드리면 대략의 분위기를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노르웨이 오슬로에 첫눈이 오는 내리는 날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정원에 굉장히 큰 눈사람이 있는 거예요. 퇴근하던 엄마가 그걸 보고 아이를 칭찬해요. 잘 만들었다고. 그런데 아이는 자기가 만든 게 아니라고 대답해요. 그러면서 왜 눈사람이 우리 집을 보고 서 있냐고 물어요. 보통 눈사람은 길을 바라보게 만들잖아요. 그런데 정원의 눈사람은 집을 향해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사라지고. 이후 첫눈이 오는 날마다 여자가 죽는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게 되죠. 해리 홀레 형사가 사건 수사에 투입되고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벌어진 사건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소설의 주된 줄거리입니다.


ann 만들지고 않은 눈사람이 집을 바라보고 서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았는데 굉장히 섬뜩한 이미지 같기도 해요. 

그렇죠. 낯선 존재가 우리 집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건 섬뜩한 일이잖아요. 그 누군가의 정체를 모를 때 더욱 그렇겠죠. 그리고 눈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특성이 있잖아요. 예전에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라는 책을 소개해드릴 때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눈은 굉장히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죠. 차갑고 새하얗고 무엇보다 녹아서 사라져버리는. 눈사람이라는 게 그래서 더 섬뜩한 거죠. 겨울이 지나면 사라졌다가 첫눈이 내릴 때 다시 나타나고. 마치 우리 안의 어떤 나쁜 본성 같은 게 순백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도 같고요.


ann 그런데 이 소설이 해리 홀레 시리즈이 일곱 번째 편이라고 했잖아요. 시리즈물을 중간부터 읽어도 괜찮을지 걱정도 되는데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책을 추천드리는 건데요. 다른 해리 홀레 시리즈에 비해서 이 책은 해리 홀레의 역할이나 존재감이 크지 않습니다. 시리즈의 중간 정도이긴 하지만 부담 없이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이 책을 보시고 마음이 들면 그때부터 시리즈를 처음부터 정독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M4 kings of convenience – Mrs Cold

https://youtu.be/UBtjik6uY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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