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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01. 2019

마음까지 번역한 에세이 두 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월 27일 예순네 번째 방송은 번역가의 에세이 두 권을 소개했습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조금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에세이를 두 권 가져와봤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게 되는 그런 책들입니다.


ann 특별한 직업이라면 어떤 분들인가요?     

세상에 수많은 책들이 있잖아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정말 많은 작가들이 많은 책을 내고 있죠.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에 한글로 된 책만 읽기 마련이죠. 특별히 영어나 일본어에 능통한 분들이 아니고서는 말이죠. 외국어로 된 책 중에도 좋은 책들이 많은데 그런 책을 우리가 읽으려면 바로 이 분들의 도움과 재능이 필요한 거죠.


ann 번역가가 필요하죠     

맞습니다. 두 명의 베테랑 번역가가 쓴 에세이를 가져왔는데요. 먼저 소개해드릴 분은 노지양 번역가입니다. 이분은 라디오 방송작가를 하시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계신대요.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를 비롯해 ‘하버드 마지막 강의’ ‘그런책은 없는데요’ 등 80여 권의 외서를 우리말로 번역한 베테랑이죠. 이분이 작년 말에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라는 에세이를 쓰셨는데요. 오늘은 그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80권의 책을 번역해서 소개했는데 본인이 직접 쓴 책은 이번이 처음인 거네요.     

그렇죠. 제가 정말 답답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직업이 두 개 있는데요. 하나는 평론가가 있어요. 문학 평론가들은 정말 많은 책을 읽잖아요. 그중에 좋은 책도 있겠지만 아닌 책도 많겠죠. 그러면 차라리 내가 직접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가 번역가인데요. 노지양 작가만 해도 14년 동안 80권의 책을 번역했다고 하니까요. 얼마나 책을 많이 읽고 또 읽어야겠어요. 그런데 정작 자기의 이름은 작가가 아닌 번역가로만 남게 되니까 아쉬운 마음이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자기의 이름을 건 에세이를 쓰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ann 번역가가 쓴 에세이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기도 한데요.     

에세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일상의 기록이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다른 에세이와 다를 게 없는데 이 책은 일상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점이 달라요. 바로 특이한 영어 단어에서 시작하는 거죠. 번역가를 하다보면 당연히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영어 단어나 표현을 많이 접하게 되겠죠. 이 책은 그런 단어들을 매 장의 첫머리에 놓고 그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노지양 작가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40대 중반에 14년 동안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중학생 딸을 두고 있는 노지양이라는 사람의 인생이 때로는 덤덤하게 때로는 울컥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책 안에서 펼쳐집니다. 유명인들의 삶처럼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없지만, 읽다보면 나도 그렇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 하면서 피식피식 읽게 되는 그런 에세이예요.     


M1 Boys Like Girls – The Great Escape

https://youtu.be/JGPgxoIPY6Q


ann 베테랑 번역가들이 쓴 자신들의 삶과 일상에 대한 에세이 이야기해보고 있어요먼저 노지양 작가의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만나보고 있습니다특이한 영어 단어와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이 나온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보면요?     

제가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단어가 있는데요. 바로 fair weather fan 이라는 표현이 있더라고요. 우리말로 옮기면 팀이 승승장구하고 잘 나갈 때만 팬이라는 걸 자청하는 팬들을 이렇게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노지양 작가가 바로 이 페어 웨더 팬인 거죠. 노지양 작가가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2015년에 한화 이글스가 멋진 경기를 많이 만들어낼 때는 한화의 팬을 자처하다가 성적이 주춤하니까 관심을 거뒀다고 하고요. 나중에 두산과 기아 중에 누굴 응원할까 하다가는 기아가 한국 시리즈에서 선전하는 걸 보고 ‘우리 부모님 고향이 광주 쪽이니까 기아를 응원하는 게 맞지’ 이렇게 마음을 정했다고 합니다. 집은 수원에서 가까운데도 KT를 응원하지는 않고요. 성적 따라서 좋아하는 팀이 수시로 바뀌고 하는 거죠.


ann 꼭 스포츠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그냥 사람들 인간관계가 다 비슷하게 돌아가는 것도 같죠     

그렇죠. 노지양 작가도 같은 말을 하는데요. 그런데 노지양 작가에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는 거죠. 바로 번역을 하는 일만큼은 바꾸거나 버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깨달은 게 있다고 하는데 바로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사랑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얻은 거죠. 야구팀이야 바꾸면 그만이지만, 돈을 버는 직업이나 가족은 바꾸기가 어렵죠. 그럴 바에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걸 지켜나가는 게 낫다는 결론도 얻는다는 이야기입니다.


ann 재미있는 영어 표현 속에서 삶의 교훈을 끌어내는군요.     

그렇죠. 이런 표현도 나와요. FAKE IT TIL YOU MAKE IT. 이라는 말인데요. 주로 외국의 자기계발서에 많이 나오는 표현이라고 해요. 대충 이런 뜻이죠. 자신감 있는 척하면 사람들도 그렇게 여긴다. 그러다보면 진짜 자신감이 생긴다. 우리도 이런 말을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노지양 작가는 이런 말에 물음표를 붙입니다. 그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자신있는 척, 행복한 척 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요.


ann 번역가의 에세이니까 우리가 잘 모르는 번역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오겠죠?     

저도 번역가들은 어떻게 작업을 하고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는지 잘 몰랐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 대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는데요. 노지양 작가가 번역가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일단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지 않냐는 생각인데요. 절대 그렇지가 않다고 해요. 벽돌 두께의 원서를 들고 다니면서 펼쳐놓고 작업을 하는 게 필수라는 거죠. 그리고 마우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수시로 검색을 하고 노트북 화면을 바꿔가면서 작업해야 하는데 마우스 없이는 스프 없이 수프 먹기 같이 힘들다는 거죠. 그냥 외국에 나가서 여행하면서 번역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노트북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랑 마찬가지인 거죠. 번역을 하는데 여행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노지양 작가의 대답이고요. 결국 번역이라는 게 창조적인 활동보다는 노동이라는 설명입니다.


ann 번역가의 삶도 그렇고 독특한 영어 표현도 그렇고 잘 모르던 이야기들을 새로 접할 수 있는 책이네요.     

이 책에 굉장히 다양한 영어 표현들이 나오는데요. 그 표현들을 이 책에서는 마음을 번역해주는 단어들이라고 얘기하거든요. 마음을 번역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읽는 내내 우리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밖으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책입니다. 누군가한테 상처를 입었거나 자신감이 뚝 떨어진 분들이라면 노지양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M2 Keane – Everybody’s Changing

https://youtu.be/Zx4Hjq6KwO0


ann 베테랑 번역가들이 쓴 자신들의 일과 삶에 대한 에세이 만나보고 있습니다두 번째로 만나볼 작가와 책은 뭔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번역가는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익숙한 이름이죠. 김남주 번역가의 ‘나의 프랑스식 서재’라는 책입니다.


ann 김남주 작가는 정말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이면 모를 수가 없는 번역가죠.     

저도 그중 한 명인 데요. 김남주 번역가를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분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만나지 못했거나 만나는데 시간이 꽤 걸렸을 수밖에 없는 작가들이 많았을 거라는 겁니다. 보통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나 고전을 위주로 많이 번역되는 게 현실이잖아요. 소설은 한국 출판계에서 잘 팔리는 분야가 아닌데다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라면 더더욱 출간이 잘 안 되기 마련이죠. 그런데 김남주 번역가는 잘 팔릴 만한 책보다도 자신이 잘 번역할 수 있는 책들을 고르는 거죠.


ann 예를 들면요?     

김남주 번역가의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소설가가 일단 가즈오 이시구로가 있습니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소설가죠. 이 분을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한 첫 번역가가 김남주 번역가이기도 했고요. ‘나를 보내지마’라는 작품이었죠. 그리고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소설가죠. 아멜리 노통브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아멜리 노통브를 국내에 처음 번역한 것도 바로 김남주 번역가입니다.

ann 가즈오 이시구로아멜리 노통브 정말 대단한 소설가들이잖아요그런 소설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해서 소개한 분이 김남주 번역가였군요.     

맞습니다. 이 책은 2013년에 나온 책인데요. 그때까지 김남주 번역가가 국내에 번역한 소설들에 쓴 옮긴이의 말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번역에 대한 김남주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2016년에 나온 ‘사라지는 번역자들’이라는 책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 책은 그보다 김남주 번역가가 번역을 택할 정도로 사랑한 소설가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책인 거죠. 가즈오 이시구로나 아멜리 노통브 말고도 제가 좋아하는 소설과 소설가들도 많이 나오고, 번역의 입문서 같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ann 김남주 작가가 자신이 직접 번역한 책들에 남긴 옮김이의 말을 모아놓은 책이군요.     

앞에 소개해드린 노지양 작가의 책에도 옮김이의 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출판사에서 번역한 책에 옮김이의 말을 안 싣기로 한 것 때문에 노지양 작가가 출판사 대표와 싸운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김남주 작가도 이렇게 따로 책을 내는 걸 보면 번역가들에게 옮김이의 말이라는 짧은 몇 페이지가 정말 소중하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M3  스텔라장 환승입니다

https://youtu.be/I4g1_R1ucuw


ann 번역가들이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쓴 책들 만나보고 있어요두 번째로 김남주 작가의 나의 프랑스식 서재’ 이야기 중인데요어떤 내용이 나오나요?     

이 책은 김남주 작가가 번역한 책에 실린 옮김이의 말들을 모아놓은 거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렇다고 모든 책이 등장하는 건 아니고 김남주 작가 본인이 직접 고르고 고른 소설과 옮김이의 말만 책에 실려 있는 거죠.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시작해 아멜리 노통브와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 가즈오 이시구로, 장루이 푸르니에를 거쳐 마샤 스크리푸치의 ‘그러나 삶은 지속된다’까지 이어지는데요.

일련의 옮김이의 말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옮김이의 말은 한 소설에 대한 가장 처음이자 가장 좋은 리뷰구나.


ann 번역가가 쓴 옮김이의 말은 그 소설에 대한 최초이자 가장 좋은 리뷰다말 그대로 맞는 말이네요.     

특히나 김남주 번역가의 옮김이의 말이 그런데요. 앞에서 김남주 작가는 번역할 책을 애정을 가지고 고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자신이 원서와 공감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만 번역을 시작한다고 하거든요. 옮김이의 말이 단순히 작업 일지나 자신의 수고에 대한 기록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소설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이어지는 거죠. 우리가 종종 소설을 읽고도 난감할 때가 있잖아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너무 난해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요. 그럴 때 문학평론가나 번역가가 책에 남긴 글을 읽으면서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김남주 작가는 최고의 번역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ann 책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옮김이의 말이 있을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로 주저하지 않고 꼽는 로맹 가리의 책을 김남주 작가가 여럿 번역했는데요. 그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소설집이 있습니다. 로맹 가리는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 중에 한 명이지만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외로운 사람이기도 했죠. 그의 단편 대표작들이 실린 책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인데요. 이 책에 대해 김남주 작가는 옮김이의 말에서 이렇게 적어요.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이 고독한 유태계 프랑스인이 줄곧 천착했던 것은 어머니와 함께 남프랑스로 이주해 외롭게 성장했던 자신의 개별적 정체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정체성이었다. 따라서 그의 상처는 인류의 상처와 맞닿아 있다. 읽는 이를 풍경 밖으로 나서게 하는, 풍경의 이면을 보게 하는 이런 단편들로 해서 상처는 치유되고 인류는 진화한다.”


ann 좋은 번역가는 그 자신이 이미 작가인 것 같아요.     

책에 보면 김남주 번역가가 프랑스의 아를에서 다른 나라에서 온 번역가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번역에 대해서 이런 말이 나와요. ‘번역이란 말을 무게를 다는 것, 저울의 한쪽에 원문을, 다른 한쪽에 옮겨놓은 말을 올려놓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이요. 좋은 번역가를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죠. 두 번역가의 책들, 그리고 이분들이 앞으로 번역할 책들도 많이 기대가 됩니다.     


M4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361 타고 집에 간다

https://youtu.be/ygXmPujyr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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