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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n 09. 2019

실리콘밸리의 그림자를 다룬 책 두 권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5월 19일 여든 번째 방송은 실리콘밸리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책 두 권을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경제와 관련된 책을 가져왔는데요. 바로 실리콘밸리에 대한 책을 두 권 가져왔습니다.     


ann 실리콘밸리는 미국 첨단 it 기업들이 몰려 있는 지역을 말하는 거죠?     

맞습니다. 실리콘밸리는 실제 행정 구역은 아닌데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반도 산타클라라 지역에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모여들면서 실리콘밸리라고 부르게 됐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지역이 됐습니다. 휴렛팩커드에서 시작해서 애플, 인텔, 페이스북, 구글, 우버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본사가 다 이 지역에 있습니다.


ann 실리콘밸리 자체는 정말 유명하잖아요. 실리콘밸리를 다룬 책도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실리콘밸리를 다룬 책들은 정말 많은데요. 오늘은 우리가 잘 몰랐던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주제로 책을 골라봤습니다. 실리콘밸리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성공 스토리만 흔히 생각하기 쉽죠. 페이스북을 만든 저커버그나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의 신화가 시작된 곳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성공만큼이나 실패도 많은 곳이고, 또 많은 돈이 오가는 곳이다보니 그런 것들이 얽혀서 추한 스토리가 많이 생기는 지역이기도 해요.

ann 먼저 소개해줄 책은 어떤 책인가요?     

먼저 가져온 책은 ‘배드 블러드’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미국의 유명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의 탐사 전문 기자인 존 캐리루가 쓴 책인데요. 테라노스라는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스타트업이 저지른 사기 행각을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 취재기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보니까 어지간한 범죄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재밌거든요. 책을 읽다보면 실리콘밸리의 신화에 가려져 있는 허술하고 추한 모습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기도 하고요.


ann 테라노스라는 회사에 대한 실화를 다룬 책인 거네요. 테라노스가 어떤 회사였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부터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테라노스는 몇 년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대규모 사기 사건의 주인공인데요.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엘리자베스 홈즈가 만든 의료분야 스타트업입니다. 피 한 방울만으로 250여가지 질병을 간단하게 검진할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벤처투자자들이 테라노스에 투자하면서 기업가치가 90억달러까지 치솟아요. 90억달러면 우리 돈으로 10조원이죠. 국내의 어지간한 중견 제약회사의 시가총액보다 많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거예요. 그런데 알고보니 이 회사가 주장한 기술은 실체가 없었던 거죠. 있지도 않은 기술로 투자를 받고 언론플레이를 하다가 월스트리트저널의 존 캐리루 기자의 기사로 그 사실이 탄로나고, 결국 회사는 파산을 하게 됩니다. 창업자인 홈즈도 사기 혐의로 기소됐고요. 세계적인 벤처투자의 천국이라는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진 21세기 최대 규모의 사기 스캔들이었죠.     


M1 Bob Dylan – Things Have Changed

https://youtu.be/L9EKqQWPjyo


ann 오늘은 우리가 몰랐던 실리콘밸리의 이면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책을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테라노스의 사기 행각을 폭로한 배드 블러드 만나고 있어요. 그런데 10조원에 달하는 기업을 키울 때까지 어떻게 실리콘밸리의 쟁쟁한 투자자들이 사기라는 걸 몰랐던 걸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일단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 창업자의 존재감이 컸다고 책에서는 분석을 합니다. 홈즈는 스탠퍼드대를 중퇴하고 의료분야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는데요. 스탠퍼드대 중퇴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죠.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애플을 만든 잡스도 스탠퍼드대 중퇴를 하고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는데, 비슷한 경력 때문에 홈즈의 별명도 여자 잡스였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에게 있는 후광을 자신에게 그대로 가져온 거죠. 그리고 홈즈 본인도 최대한 잡스처럼 보이려고 노력을 했다고 해요. 홈즈를 표지모델로 한 잡지 표지 사진을 보면 홈즈가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바로 잡스를 그대로 따라한 거죠. 그리고 홈즈는 원래 머리색이 붉었는데 금발로 염색을 하고 다녔다고 하고요. 잡스 사후에 그의 평전이 나오자 빨리 읽고 거기에 나오는 대로 테라노스의 문화를 이것저것 바꿨다고 하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영리한 거고, 어떻게 보면 기술이나 제품에 자신이 없으니까 겉치레에 신경을 쓴 거죠. 


ann 잡스 따라하기가 실리콘밸리에서 통한 거네요.     

그리고 실리콘밸리만의 문화도 이런 거대 사기 사건이 성공하는데 영향을 미쳤는데요. 홈즈가 유치한 초기 투자자와 사외이사진에는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미 해병대 4성 장군 같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부모와 스탠퍼드대 인맥을 총동원해서 화려한 이사진을 꾸린 거죠.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다들 의료 분야에 문외한이다 보니 홈즈가 이야기하는 테라노스의 기술에 의심을 품지도 않았고요.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이상에 다들 공감하면서 별생각 없이 이사진에 합류한 거죠. 그걸 보고 다른 투자자들은 저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이사로 있는데 문제가 있을 리 없다면서 하나둘 참여한 거고요.


ann 홈즈도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고 한 건 아니었겠죠?     

그렇죠. 홈즈도 처음에는 의료분야의 기술로 사람들을 돕겠다는 이상이 있었는데요. 실리콘밸리의 분위기가 정말 삭막하다고 하거든요. 투자를 받았으면 거기에 맞는 성과를 약속한 시점까지 내놔야 하는 거죠. 그게 멈추는 순간 투자가 끊기고 그럼 스타트업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요. 이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홈즈와 테라노스는 투자자를 속이는 방법을 택한 겁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사업이 아니잖아요. 의료분야니까 안정성이 정말 중요한데 그런 분야에서 사기를 친 거죠. 책을 읽어보면 나중에는 아예 도덕성을 모두 버리고 오로지 회사를 유지하고 돈을 버는데만 집중하는 걸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ann 실리콘밸리의 기업이라고 해서 모두 믿을 만한 것도 아니네요.     

우리가 실리콘밸리라고 하면 보통 어마어마한 성공 신화를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그 이면에서는 이런 추악한 일도 계속 벌어지고 있는 거죠. 또 기업 문화에 대한 부분도 읽어볼 만한데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하면 굉장히 개방적이고 열려 있는 문화를 생각하기 쉽잖아요. 사장이 직원들이랑 같은 테이블에서 일하고 사무실은 칸막이 하나 없고 그런 것들. 그런데 테라노스는 굉장히 폐쇄적인 기업 문화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ann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인데 폐쇄적인 문화를 갖고 있고.     

부서마다 칸막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로 만날 수도 없게 해놨다고 해요. 보통 부서 간에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게 좋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홈즈 개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바로바로 사람을 해고하는 문화도 있었다고 하고요. 사람들이 워낙 많이 해고를 당하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다 보니 동료라고 할만한 사람이 주변에 거의 없었던 거죠. 이런 문화 덕분에 어떻게 보면 그런 사기 행각이 오랫동안 적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같고요. 여러 가지로 우리 기업인들도 읽으면서 반면교사 삼을 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M2 U2 - Stay

https://youtu.be/gNS1jTQOnCs


ann 우리가 몰랐던 실리콘밸리 이야기하고 있어요. 두 번째로 만날 책은 어떤 책인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실리콘밸리 견문록’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한국인인데요. 2007년에 구글코리아에 입사해서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로 이동해 검색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이동휘씨가 쓴 책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직접 일하고 있는 한국인 엔지니어가 바라본 실리콘밸리 이야기이다 보니까 더 흥미로운 게 있는 것 같아요.


ann 앞에서 소개해준 책은 기자가 쓴 책이니까 어쨌든 외부인이 바라본 실리콘밸리 이야기잖아요. 이 책은 내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거네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실리콘밸리에서 살고 생활하다 보니까 실생활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예컨대 실리콘밸리의 심각한 소득불평등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실리콘밸리라고 하면 세계적인 기업이 모여 있으니까 모두가 잘 살고 부유하게 지낼 것 같잖아요. 실제로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20대의 나이에도 연소득이 수억원에 이를 정도로 고소득자가 많다고 해요. 그런데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모두가 엔지니어는 아니잖아요. 식당 종업원도 있고 청소를 하는 사람도 살고 그런 게 도시니까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소득은 다른 지역과 별 차이가 없는 거죠. 그러다보니 실리콘밸리는 미국 전체를 통틀어서 소득 격차가 가장 큰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런 소득 불평등을 실리콘밸리에서 사는 사람들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다고 하고요.

ann 어떤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예컨대 구글 직원들이 통근하는 버스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통근 버스가 공공 버스정류장을 이용하는데 하루는 동네 주민들이 몰려들어서 구글 직원들이 타는 통근 버스에 벽돌을 던지고 한 거예요. 버스는 창문이 깨지고요. 그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 겁니다. it 기업에 다니지 않는 평범한 실리콘밸리 인근 지역 주민들이 공공버스 정류장을 이용하지 말라면서 시위를 벌인 거죠. 표면적인 이유는 버스정류장 이용 문제였지만, 소득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거죠.


ann 겉으로 보기에는 살기 좋은 부자 동네일 것만 같은데 그런 문제를 안고 지내는 도시였네요.     

최근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이 새로운 기술 기업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거든요. 실리콘밸리를 본따서 실리콘비치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런데 이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는 우리는 실리콘밸리처럼 타락하지 말자면서 소득불평등을 줄이고 기업들이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사람들을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자기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주민들의 삶은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 거죠. 아이러니한 일이죠.     


M3 페퍼톤스 – 카우보이의 바다

https://youtu.be/VXivb595geg


ann 우리가 몰랐던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인 엔지니어가 쓴 ‘실리콘밸리 견문록’ 이야기 중인데요. 실리콘밸리 기업과 한국 기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신뢰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는데요. 한국에서 실리콘밸리의 구글 같은 기업을 방문한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로비에서 휴대전화 카메라에 테이프를 붙이도록 요구하거나 노트북 같은 전자장비 휴대를 금지하지 않는 걸 신기하게 생각하는 거죠. 한국의 it 대기업을 가면 휴대폰이나 노트북 같은 전자장비에 대한 보안이 굉장히 엄격하거든요. 외부 기기를 반입하는 걸 철저하게 통제하죠.


ann 그런데 세계 it 기술의 최첨단에 서있는 실리콘밸리 기업은 오히려 그런 보안에 신경을 덜 쓰는 거네요.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실리콘밸리에서는 직원은 가려 뽑고 한번 뽑으면 신뢰한다고요. 저자가 일하는 구글의 인사 원칙이 있는데요. 채용의 핵심은 좋은 사람을 떨어뜨리는 한이 있어도 나중에 후회할 사람은 뽑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절대 뽑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신에 한번 뽑은 사람은 반드시 신뢰한다고 하고요. 어떻게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테라노스와는 정반대인 거죠. 그만큼 테라노스의 기업 문화가 실리콘밸리와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기도 하고요.


ann 또 재밌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개척한 몇몇의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중 한 명이 바로 프레더릭 터먼 스탠퍼드대 교수라고 합니다. 터먼 교수는 스탠퍼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때 가르친 많은 학생들이 나중에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을 만드는 창업자로 성장하게 된 거죠. 특히 터먼 교수는 스탠퍼드대의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산업단지를 만들어서 실제 실리콘밸리의 물리적인 터전을 쌓는데도 큰 도움을 줬고요. 재밌는 건 터먼 교수가 한국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는 건데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고 방법을 찾다가 데려온 사람이 바로 터먼 교수였다고 해요. 터먼 교수가 스탠퍼드 산업단지의 아이디어를 한국에 접목해서 만든 곳이 바로 한국과학기술원, 카이스트고요. 지금의 카이스트 근처에는 대덕연구단지가 있잖아요. 이런 모델이 바로 터먼 교수가 스탠퍼드에서 했던 방식을 따온 거죠.


ann 실리콘밸리를 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런 문화를 배우지 않고 겉모습만 가져오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죠. 실리콘밸리의 핵심은 개방과 협력, 그리고 자유로움인데요. 우리 기업 문화는 그와는 정반대죠. 본질적인 문화를 배우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M4 Rolling Stones – Miss You

https://youtu.be/KuRxXRuA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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