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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n 09. 2019

을의 싸움- 현수동 빵집 삼국지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5월 26일 여든한 번째 방송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  권을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소설을 가져왔는데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굉장히 흥미진진한 소설들인데요. 조금 나쁘게 말하면 킬링타임용으로 제격이고, 조금 좋게 말하면 아주 흥미진진한 페이지 터너라고 할 수 있겠네요.


ann 어떤 소설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할 책은 주원규 작가의 '메이드 인 강남'이라는 소설입니다. 주원규 작가는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드라마 작가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는데요. 2017년에 방영된 TVN 드라마 '아르곤'을 주원규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아르곤도 기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였죠.

ann 메이드 인 강남, 최근에 여기저기서 이름을 들어본 것 같은데 어떤 소설인가요?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해드리면요. 강남 중심에 있는 한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남녀 10명이 죽은 채로 발견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대한민국 상위 0.1퍼센트의 상류층 사람들이 속한 멤버십의 회원들인데요. 유명한 아이돌 가수도 포함돼 있고요. 그런데 끔찍한 사건 현장에 경찰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류층이 얽힌 복잡한 사건의 뒤처리를 전담해주는 변호사들인데요. 이런 사건에서 상류층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사건을 조작한다고 해서 설계자로 불리는 사람들인 거죠. 이 소설은 이 설계자 중 한 명인 김민규 변호사와 돈 냄새를 맡고 사건에 달려드는 형사, 그리고 다른 주변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사건의 내막을 쫓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ann 소설의 시작부터 살인사건이 나오고, 굉장히 흡입력이 뛰어날 것 같네요.     

특히 이 소설 같은 경우는 강남 일대의 클럽 문화, 특히 그 클럽에서 VIP나 VVIP로 불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법망을 피해나가고 자기들만의 왕국을 만드는 지를 보여주거든요. 이런 부분이 최근에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버닝썬 사건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죠. 때마침 이 책이 출간된 것도 올해 초거든요. 시기적으로 타이밍이 맞아들어가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합니다.


ann 버닝썬 사건을 보면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했을까 싶은데, 이 책을 읽으면 약간이나마 단서를 얻을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사실 이 소설에 클럽 장면이 아주 많이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소설로서 봐도 인물 묘사나 사건 전개 같은 부분이 매끄럽다고 볼 수 없는 구석도 있고요. 그렇지만 이 책이 가지는 진짜 재미는 문을 살짝 열고 그 틈으로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난다는데 있어요. 저도 기자이다 보니까 강남의 부자들의 생활, 속칭 VIP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클럽의 밤문화 같은 것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 없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들, 특히 용어나 인물 간의 관계 같은 것들이 정말 실제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소설이라기보다도 한 편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 든다고 할 수도 있고요.     


M1 슈가볼 - 오늘밤

https://youtu.be/yvV6dCnYc1Y


ann 오늘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들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강남 클럽의 뒷이야기를 다룬 ‘메이드 인 강남’ 이야기 중이에요. 작가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요?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실제로 6개월 동안 강남 클럽에 잠입해서 일을 했다고 해요. 6개월 동안 강남의 클럽가에서 주류배달원, 수리기사, 콜카 같은 일을 하면서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슬쩍 들여다본 거죠. 그리고 그때 겪고 본 일들, 만난 사람들을 소설에 녹여낸 거고요. 콜카는 클럽에서 호텔이나 모텔 같은 2차 장소로 손님을 데려다주는 차량 기사를 말한다고 합니다.


ann 소설을 쓰기 위해 6개월 동안 직접 클럽에서 일을 한 거면 실제와 같은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죠.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실제로 작가가 일하는 6개월 동안 만난 사람들을 모델로 하거나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하고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민규라는 설계자도 실제로 클럽에서 일을 하다보면 비슷한 변호사를 종종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클럽에서는 워낙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지다보니 그런 사건을 처리해주는 변호사도 주위에 많은 거죠.


ann 마치 거대한 생태계를 보는 것 같네요.     

책을 보면 실제로 그런 인상을 받는데요. 주원규 작가는 강남의 클럽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해요. 술 마시고 노는 클럽만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니라 거기에 여성을 공급하는 포주가 있고, 고객을 모아주는 MD가 있고, 그들의 연락책이나 공급책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여기에 성매매 같은 불법과 탈법도 얽혀 있고. 이런 거대한 생태계를 아예 없애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한 두명을 처벌해서는 사건이 계속 재발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ann 메이드 인 강남은 물론 허구의 사건을 기반으로 한 소설에 불과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거군요.     

그리고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이미 소설 속 살인사건도 실제로 일어난 게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들고요.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죽고 사라지고 하는 일에 무감각한 걸로 묘사가 되는데요. 사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도 클럽의 화려함보다 이런 대중의 무덤덤한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끔찍한 일이 계속되는데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냥 넘어가는 게 괜찮을 걸까, 하고 묻는 거죠. 지나치게 등장인물이나 사람들을 평면화하고 단순화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 자체는 다들 곰곰이 고민할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제2의 버닝썬 같은 일이 없으려면 말이죠.


M2 쏜애플 – 행복한 나를

https://youtu.be/tlERiiyCntc


ann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날 책은 어떤 책인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제목이 재밌는데요. 장강명 작가의 '현수동 빵집 삼국지'라는 단편 소설입니다.


ann 장강명 작가는 기자 출신 작가죠. 굉장히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는걸로 유명하죠.     

르포 형식의 소설을 많이 쓰죠. 기자 출신이다보니 취재가 굉장히 꼼꼼한 편이에요. 머릿속에서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직접 만나고 보고 듣고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만드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장강명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한국이 싫어서'가 그랬고,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은 댓글부대도 굉장히 사실적인 소설이었죠.

ann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어떤 소설인가요?     

제목과 달리 이 소설은 읽다보면 우리의 웃픈 현실에 눈을 딱 감아버리고 싶은 그런 소설입니다. 현수동이라는 가상의 동네가 있어요. 원래는 홍수 피해가 잦은 곳이라 낙후된 지역이었는데 2000년대에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고층 아파트들이 다닥다닥 들어선 곳이죠. 그 현수동의 아파트 단지와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100m 남짓한 구간에 원래는 작은 프랜차이즈 빵집이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작은 지역에 빵집이 하나 새로 생겨요. 그리고 또 다른 프랜차이즈 빵집이 얼마 안 있어서 들어서요. 100m 거리에 빵집이 세 곳이나 생기게 된 거죠. 이 짧은 소설은 100m 남짓한 거리에 들어선 세 곳의 빵집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ann 설명만 듣고 보면 소설 같지가 않아요. 우리 주위에 이런 이야기는 정말 많잖아요.     

너무나 사실적인 풍경을 소설 안으로 가져오는 게 장강명 작가의 힘인 것 같아요. 이런 소재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고는 저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죠. 이런 블랙코미디가 정말 따로 없다. 그리고 이렇게 슬픈 이야기도 없구나 하고요. 비단 빵집만 이런 게 아니라 편의점도 정말 건물 하나 걸러서 있는 게 우리네 풍경이잖아요. 제가 사는 동네에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100m 남짓한 작은 길이 있는데 거기에 칼국수 가게만 네 곳이 있어요. 무슨 큰 상권도 아닌데요. 그걸 보면서 어떻게 장사를 하려나 싶은데, 그 속살을 이 소설이 조금은 보여주고 있는 거죠.


M3 세정 - 꽃길

https://youtu.be/RKLKDJ1QsLs


ann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들 만나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장강명 작가의 ‘현수동 빵집 삼국지’ 이야기 중입니다. 한 골목에서 벌어지는 빵집들의 무한 경쟁. 결국 누구에게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겠죠.     

그렇죠. 이 소설도 세 곳의 빵집 중 하나가 문을 닫으면서 끝나는데요. 남은 두 곳의 빵집이 그렇다고 승자가 된 것도 아니에요. 상처만 남은 채로 서로를 씁쓸하게 바라보면서 끝이 나죠. 을끼리의 싸움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프랜차이즈 빵집 본사는 쏠쏠하게 돈만 벌어가는데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끝나지 않을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을끼리의 싸움이라는 말이 괜히 생각이 납니다.


ann 소설 속에 나오는 세 빵집은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요?     

세 가게가 저마다 사연이 있어요. P 프랜차이즈 빵집은 모녀가 억척스럽게 일구고 있는 가게예요. 하은이라는 딸과 그 엄마가 있는데 남편이자 아버지가 암으로 일찍 죽은 뒤로 모녀가 어떻게든 빵집 하나에 의지해서 살고 있는 거죠. 또다른 B프랜차이즈 빵집은 가족이 다 달라붙어서 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빚을 내서 시작한 사업이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딸 주영이까지 불러서 일을 시키면서 버텨요. 가게가 문을 닫으면 빚더미에 올라앉아야 하니 다른 방법이 없는 거죠. 마지막으로 노부부가 새로 문을 연 작은 빵집이 있어요. 50년 동안 빵을 구운 노인과 그의 부인이 함께 장사를 하죠. 여기는 공간이 너무 작아서 저렴한 가격으로 박리다매를 하는 전략을 세운 곳이에요. 역시나 먹고살 길이 이것밖에 없는 사람들이죠.


ann 모두가 빚도 있고 저마다 살아남아야 할 사연이 가득해요.     

그러니까 다들 악을 쓰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가격 경쟁은 물론이고 서로 문 닫는 시간을 더 늦춰서라도 손님을 받으려고 하죠. B프랜차이즈 빵집의 딸인 주영이는 늦은 밤이면 길거리로 나가서 다른 빵집이 문을 닫았는지 확인하는 일을 하는데요. 아직까지 간판이 불을 밝히고 있는 걸 보면서 돌을 던져서라도 다른 빵집의 간판 조명을 끄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요. P프랜차이즈 빵집의 하은이 엄마는 대상포진에 걸리고요. 끝이 없는 경쟁 속에 일하는 사람들만 지쳐가는 거죠.


ann 인상적인 표현이나 문구도 소개해주세요.     

노부부 중에 아내인 순임이 이런 표현을 해요. 자신들의 경쟁에 대해서요.

'그녀는 자신들이 마분지로 만든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강기슭에 이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마분지로 만든 배가 조금씩 젖어들고 있었다.'

B프랜차이즈 빵집의 주영은 이런 식으로 경쟁을 묘사하고요.

'주영은 동굴에서 사는 물고기들을 상상했다. 빛이 없고 먹을 모자란 좁은 공간에서 오래 살면서 눈이 퇴화하고 피부도 투명해진 작고 불쾌한 생물들, 불필요한 기관은 모두 버리고 오직 생존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들. 주영은 하중동 사거리와 구수동사거리가 그런 동굴이라고 생각했다.'


ann 마분지로 만든 배. 언젠가는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군요.     

자본주의가 어떻다느니 시장경제가 어떻다느니 하는 말들은 사실 의미가 없죠. 대부분의 서민은 그런 건 상관없이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고 도리어 어려워지기만 하는 건 왜일까. 장강명 작가의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해답을 주는 책은 아니에요. 우리가 외면하던 문제의 속살을 보여주는 소설이죠. 이런 문제는 우리가 다같이 고민하면 끝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면서요.     


M4 지윤해 - 괜히

https://youtu.be/VO5f0kU6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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