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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ug 06. 2019

일의 기쁨과 슬픔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7월 28일 아흔 번째 방송은 회사생활의 현실과 판타지를 다룬 소설 두 권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직장인들에게 강추하는 소설을 두 권 준비했습니다. 회사생활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 동시에 약간의 판타지를 함께 제공하는 그런 소설들인데요. 직장인들은 읽으면서 누구보다 감정이입해서 볼 수 있는 그런 소설들입니다.


ann 회사생활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 먼저 만나볼 책은 뭔가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한자와 나오키’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일본의 대형 은행을 배경으로 은행원인 한자와의 활약을 그린 소설인데요. 일본에서만 600만부 가깝게 판매됐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모은 소설입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는데, 드라마 같은 경우는 마지막회 시청률이 50%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ann 시청률 50%면 국민 드라마 수준이네요. 엄청난 인기를 끈 작품이군요.     

j 맞습니다. 국내에서는 얼마 전에 1권과 2권이 번역 출간됐는데요. 일본에서는 4권으로 완결이 됐습니다. 도대체 은행원의 생활이 뭐가 재밌다고 이렇게 큰 인기를 끄나 싶을 텐데요. 저 같은 경우는 드라마를 먼저 보고 번역 출간된 책을 읽었거든요. 그런데 드라마만큼이나 소설도 흥미진진합니다.

ann 어떤 부분이 그렇게 재밌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은행원의 모습은 흥미진진한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잖아요.

은행원은 약간 보수적이고 지루한 일을 한다는 이미지가 있죠. 돈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까 실수가 있으면 안 되고 그렇다 보니까 아무래도 보수적인 게 당연한데요. 소설 속의 한자와라고 해서 하는 일 자체가 다르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 소설은 한자와를 괴롭히는 적이 나와요. 은행원으로서의 한자와의 면모만 나오는 게 아니라 한자와를 괴롭히는 적과 싸우는 탐정의 한자와도 함께 나오는 거죠. 단순한 은행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내정치, 추리소설의 면모를 함께 가지고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ann 주인공 한자와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군가요?     

소설의 1권은 한자와가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는 이야기를 그리는데요. 은행원이 되고 사내정치에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당당하게 승부를 해요. 그러다 한자와가 오사카 서부 지점에서 대출담당과장으로 일을 하던 중에 사고가 생기는데요. 은행 지점장이 무리하게 5억엔의 대출을 해준 회사가 파산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점장은 그걸 대출담당인 한자와의 잘못으로 돌리고 발을 빼려고 하고요. 일본이 원래 조직 논리에 순응하는 사회잖아요. 윗사람의 명령이 잘못됐어도 무조건 따라야 하고요. 그런데 한자와는 그렇게 하지를 않아요. 지점장의 잘못을 밝혀내고 자신은 당당하게 잘못이 없다는 걸 밝혀내고 빠져나가는 거죠. 1권은 바로 지점장과 싸우면서 살아남는 한자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M1 폴킴 - 휴가

https://youtu.be/3hdEosRCiK0


ann 직장인이 읽으면 좋을 만한 회사생활의 현실과 판타지를 그린 소설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평범한 은행원이 회사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그린 ‘한자와 나오키’ 이야기 중입니다.      

이 소설이 인기를 끈 이유를 생각해보니까요. 일단은 은행원으로서의 생활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생생해요. 은행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는 거죠. 직장생활을 다루는 소설인데 그 회사나 주인공이 하는 업무를 단순한 배경으로만 처리하면 사실 디테일이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 같은 경우는 단순히 주인공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은행이 어떤 일을 하고,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보여주는 거죠.


ann 작가의 취재와 고민이 대단했겠네요.     

알아보니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주인공 한자와처럼 대형 은행에서 직접 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은행원으로 일하다 나중에 은행을 그만두고 소설가의 길을 택한 건데,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은행원으로 일을 했으니까 주인공의 심리묘사나 직장생활에 대한 디테일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겠죠.


ann 그런데 이 소설이 직장생활에 대한 묘사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판타지도 자극한다는 설명이 많던데요. 어떤 부분이 그런가요?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크게 부딪히는 문제 중 하나가 사람이죠. 그것도 직장상사와의 갈등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될 텐데요. 주인공 한자와는 특히나 그런 문제를 심하게 겪은 거고요. 그런데 이런 갈등이 생기면 십중팔구는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넘어가기 마련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한자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자와 나오키의 최고 명대사로 불리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상사가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자 한자와는 이렇게 다짐합니다.

“당한만큼 갚아준다. 100배로 갚아준다.”


ann 당한만큼 갚아준다. 상사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걸 생각만 해도 통쾌해지네요. 결국 한자와는 당한만큼 갚아주는데 성공하기도 한 거고요.     

그렇죠. 소설을 보면 이런 사이다 대사가 많이 나와요. 예컨대 상사가 한자와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계속 사과하라고 요구해요. 그러자 한자와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제 책임이 아닌 것까지 사죄하는 건 오히려 부끄럽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사들이 어떻게 보면 직장인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거죠. 나는 실제로는 못 하는 말인데 소설 속의 한자와는 이런 말을 툭툭 던지고는 보란 듯이 위기를 탈출하고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자와를 응원하게 되는 게 있습니다.


ann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자와라는 캐릭터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주인공의 캐릭터가 정말 생생하고요. 주인공의 악역이나 조력자 같은 캐릭터도 굉장히 입체적이어서 쉽게 소설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소설의 작가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부한 말이 있는데요. 소설은 소설로만 읽으라는 겁니다. 한자와를 따라하면 안 된다는 거죠. 한자와 같은 캐릭터는 현실이 아닌 소설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같아서 조금 슬프기도 한 당부인데요. 아무튼 이런 소설이 한 권쯤은 우리 곁에서 직장인들을 위로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ann 한창 멋진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따라하면 안 된다고 하니 조금 슬프기는 하네요.     

이 소설에서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그걸 위해 노력하며 살자는 건데요. 소설에 나오는 은행의 임원들은 어느 순간 은행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망각하고 오로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만 일삼거든요. 그런 임원들을 보면서 한자와 같은 평범한 사원들은 저들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복수는 “끝까지 버텨내면서 진정한 은행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설을 읽는 직장인들도 같은 마음가짐으로 다가올 월요일을 준비하는 건 어떨까 싶네요.     


M2 스텔라장 - YOLO

https://youtu.be/FETBW9E6TeE


ann 직장인이 읽으면 좋을 만한 회사생활의 현실과 판타지를 그린 소설 만나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뭔가요?     

이번에는 하이퍼리얼리즘의 진수라고 불리며 지난해 직장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편소설인데요. 바로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지난해 창작과비평사가 주관하는 창비신인문학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ann 그런데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익숙한 제목인데요? 알랭 드 보통이 쓴 동명의 에세이가 있지 않나요?     

맞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도 그 에세이에서 가져온 건데요.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도 직장인들은 한번 꼭 읽어보면 좋을 내용이죠. 일과 직장생활은 우리가 우리 인생의 절반을 바치는 건데도 왜 불안하고 짜증나기만 할까. 일을 조금 더 즐겁게 하기 위한 방법은 없는 걸까. 이런 고민에 대한 알랭 드 보통만의 해답을 제시하는 책인데요. 이 소설은 알랭 드 보통의 책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달해 줍니다.

ann 어떤 소설인지 궁금한데요.     

이 소설은 장류진이라는 30대의 젊은 작가가 쓴 작품인데요. 이 작품으로 등단을 한 젊은 작가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판교의 IT 기업이거든요. 앞에서 이 소설이 하이퍼리얼리즘, 그러니까 극사실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실제로 장류진 작가 본인도 2011년부터 7년 동안 판교의 IT 회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내부자의 시선에서 관찰한 것들을 소설로 옮기다보니까 굉장히 디테일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ann 앞에서 소개한 ‘한자와 나오키’도 작가가 은행을 다닌 경험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역시 직장생활을 경험한 작가가 쓴 소설이 훨씬 공감이 가는 구석이 많은 것 같네요.     

정말 그렇죠. 직장생활이라는 게 많은 사람이 하니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우리는 이게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인지 알잖아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장소로 가서 주어진 일을 정해진 시간에 딱딱 맞춰서 끝내는 것. 그런 일상을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반복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지 우리는 잘 알죠. 아무래도 소설가들,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경험하지 않은 작가들의 글에서는 이런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지 잘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오늘 소개해드린 작가들처럼 몇 년씩 직장생활을 해보고 나서 펜을 드는 작가들은 그런 문제가 덜하죠.     


M3 팔로알토 – 이 밤이 지나고 나면

https://youtu.be/1tKjoYSRA5M


ann 직장인이 읽으면 좋을 만한 회사생활의 현실과 판타지를 그린 소설 만나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이야기 중입니다. 이 소설이 판교의 IT 기업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만 이야기했는데요. 어떤 줄거리인지 조금만 더 설명해주세요.     

안나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요. 이 주인공은 판교에 있는 스타트업 ‘우동마켓’에 다닙니다. 우동마켓은 온라인으로 중고거래를 할 수 있게 이어주는 플랫폼인데요. ‘거북이알’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용자가 우동마켓에서 엄청 많은 중고물건을 거래하는 거예요. 그래서 회사에서 안나를 시켜서 거북이알이 누구인지 어디서 그렇게 물건을 가져오는지 알아보라고 해요. 혹시라도 어디서 훔친 장물이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안나가 중고거래를 한다고 하면서 거북이알을 만나는데요. 거북이알이 왜 그렇게 많은 물건을 중고거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사연을 듣고 그리고 자신의 회사 생활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는데까지 이야기가 이어지게 됩니다.


ann 안나와 거북이알의 만남이 이 소설에서 가장 큰 하이라이트겠네요. 그런데 이 소설이 작년에 공개되고 직장인들에게 엄청 화제였다고 했잖아요. 스토리만 보면 평범해 보이는데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나요?     

이 소설의 백미는 IT 스타트업에 다니는 직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현실 묘사에 있는데요. 예컨대 소설의 도입부에는 스크럼이라는 문화가 나와요. 이건 미국의 스타트업에서 시작된 회의 문화인데요. 아침에 직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선 채로 빠르게 각자가 하고 있는 업무의 진행상황을 한 마디씩 하면서 공유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스타트업식 아침 조회 시간으로 변질돼버린 거죠. 직원들이 서로의 업무 상황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회사 대표가 직원들이 일 잘하나 점검하고 한마디 훈계하고 끝나는. 이런 잘못된 문화가 소설 속에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돼 있거든요. 이런 디테일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거죠.


ann 그러면서도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는 거죠?     

그렇죠. 주인공인 안나가 만나는 거북이알이 중고거래를 엄청나게 많이 한다고 했잖아요. 새 상품을 뜯지도 않고 중고로 파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안나가 궁금해서 물어봐요. 여기서 거북이알의 사연이 나오는데요. 사실은 회사 갑질의 피해자였던 거죠. 거북이알은 신용카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회사에서 거북이알한테 월급을 현금이 아니라 신용카드 포인트로 준 거예요. 어쩔 수 없이 포인트로 이런저런 물건을 구입한 다음에 중고거래로 다시 팔아서 돈을 마련한 거죠. 스타트업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일하는 안나나, 회사에서 월급을 돈이 아닌 포인트로 받은 거북이알이나 모두 직장생활에서 갑질을 당한 을의 입장이었던 거죠.


ann 극사실주의로 가다가 마지막에는 짠한 이야기로 끝이 나는군요.     

이 소설이 나오고 판교에서 일하는 IT 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서 굉장한 화제가 됐거든요. 다들 자기 회사 이야기 아니냐면서 공감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직장인들이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여러 가지로 읽으면서 마음이 아픈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M4 옥상달빛 – 수고했어, 오늘도

https://youtu.be/lcbkCcCwd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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