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Aug 06. 2019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7월 21일 여든아홉 번째 방송은 걸크러시 매력이 넘치는 여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두 권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여자 주인공의 매력이 대단한 소설을 두 편 준비했습니다. 걸 크러시라는 말을 많이 쓰죠. 여자도 반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강한 여자의 캐릭터를 뜻하는 건데요. 걸 크러시 매력이 대단한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두 편입니다. 요즘 같은 긴긴 여름밤에 읽기 제격인 소설들이죠.


ann 걸 크러시 터지는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어떤 소설인지 기대되는데요. 먼저 소개해줄 작품은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제목부터 뭔가 새롭죠. 1984년생인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인데요. 정세랑 작가는 2010년에 장르문학을 통해 등단한 작가입니다. 보통 장르문학으로 등단한 작가는 장르 문학계에서만 활동하기 마련인데 정세랑 작가는 주류 문단에서도 활동하면서 한국 소설계에 다양성을 더해주고 있죠.


ann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 그런데 이름이 익숙한 게 최근에 뉴스에 여러 번 이름이 올라왔던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드라마 시리즈를 만들기로 해서요. 배우 정유미와 남주혁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콘텐츠 플랫폼에서 드라마 제작을 결정했을 정도로 재밌는 이야기라는 말이기도 하죠.

ann 드라마 제작까지 결정된 소설이라고 하니 어떤 내용일지 너무 궁금한데요. 어떤 책인지 설명부터 해주세요.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제목 때문에 의료 드라마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요. 이 책은 귀신을 퇴치하는 퇴마사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주인공인 보건교사 안은영이 퇴마사인 건데요. 보건교사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악령 같은 것들을 퇴치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안은영이 자신이 일하는 어느 사립고등학교에서 그 학교의 설립자의 후손인 홍인표와 함께 학생들을 위협하는 악령들을 퇴치하는 이야기가 보건교사 안은영의 스토리입니다.


ann 보건교사가 퇴마사라는 설정부터가 뭔가 평범하지 않아요.     

악령과 싸운다고 해서 뭔가 끔찍한 귀신이 나오고 무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이 소설의 매력은 악령과 싸우는 이야기지만 무섭고 기괴한 게 아니라 귀엽다는 데 있습니다. 일단 주인공인 안은영이 악령들과 싸우는 무기부터가 귀여운데요. 안은영은 장난감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 총을 들고 악령들과 싸웁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학교에 매일 출근하는 선생님이 거창한 무기를 들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핸드백에 들어갈 수 있고, 남들이 봤을 때 위험하지 않은 무기를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기운을 입혀서 싸우는 거죠.


ann 보건교사가 장난감 칼을 휘두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과 싸우는 장면은 뭔가 상상만 해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데요.     

그렇죠. 소설 속에서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안은영이 악령과 싸우는 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럴 때면 주인공은 새로 나온 요가 동작이라고 대충 둘러대면서 악령이랑 싸워요. 분명 퇴마 이야기인데 무섭지는 않고, 그런데 읽다 보면 뭔가 서글프기도 하고, 그런 독특한 이야기입니다.     


M1 마마무 – Wind Flower

https://youtu.be/H8NCOA2bK6k


ann 걸 크러시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 이야기 중인데요. 그런데 퇴마사인 주인공이 왜 보건교사가 된 건가요?     

주인공에 대한 설명이 애달픈데요. 전문 퇴마사가 되는 게 아닌 한은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거죠. 다행히도 간호대에 합격해서 원래는 병원에서 간호사를 일을 한 거예요. 그런데 병원에 나타나는 악령들은 얼마나 무섭겠어요. 매일 사람이 죽고 원통하게 죽은 사람도 많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병원에서 악령을 퇴치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간호대 다닐 때 따놓은 보건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학교에 취업을 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도 설명이 빵 터지는데요. 호러와 에로 중에 고르라면, 단연 에로다. 이렇게 주인공이 말을 합니다.


ann 호러와 에로 중에 고르라면 에로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주인공이 악령을 볼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악령만 보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정념이 만들어낸 환영도 볼 수가 있는 거예요. 뭔가에 집착하면 그 사람의 주변에 환영 같은 것들이 생기는 거죠. 병원에서는 아프고 다친 사람이 많으니까 호러 영화 같은 환영이 많은 거죠. 그런데 학교는 10대 청소년들이 가득한 공간이잖아요. 사춘기 시절에 얼마나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혈기왕성해요. 그러니까 병원이 호러의 공간이라면 학교 에로의 공간이라는 거죠.


ann 설정부터가 흥미로운데요. 도대체 학교에는 어떤 악령들이 나타나는 건가요?     

학교가 있던 터에 원래는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해요.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연못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젊은이들이 몸을 던지는 연못이었던 거죠. 그리고 시신을 먹고 살이 오른 동물들 때문에도 문제가 커졌고요. 결국 조선시대에 그 연못을 메우고 그 위에 시간이 흘러 지금의 학교가 세워진 건데요. 그때 죽은 사람과 동물들의 악령이 여전히 남아서 학교 주위를 떠돌고 있었던 거죠. 거대한 민물고기의 악령이 학생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요. 나중에 악령을 퇴치하고 보니까 악령의 공격을 받은 학생들은 모두 최근에 이별을 하거나 짝사랑을 심하게 앓고 있던 거죠.


ann 학교라는 공간이라고 하면 뭔가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나올 것도 같아요.     

그렇죠. 주인공인 보건교사가 악령과 싸우는 장면만 나오는 건 아니고요. 중간중간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또 학교 곳곳에 있는 귀신들이죠. 악령은 아니고 다만 갑자기 죽음을 겪으면서 미처 이승을 떠나지 못한 귀신들을 다정하게 위로하기도 하고요. 또 학교가 배경인 소설이다 보니까 이 소설도 한국 교육의 현실에 대한 풍자나 비판으로도 읽을 수가 있기도 합니다.


ann 어떤 부분이 그런가요?     

책의 말미에 보면 동성애를 하는 여학생 커플이 나와요. 그런데 이 여학생 커플이 다른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거든요. 가해자 아이가 왜 그랬냐는 질문에 ‘더러워서’ 때렸다고 답해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주인공인 안은영이 “더러운 게 뭔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게 교사로서 참담했다”고 말해요.

선생님은 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정말 가르쳐야 하는 게 뭘까에 대한 고민을 요즘은 사회 전체가 잃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정세랑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선생님들에게 자주 감탄한다고 말해요. 선생님들은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직업이라는 거죠.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이 그 역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 전체가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ann 악령을 퇴치하는 보건교사의 유쾌한 이야기에서 시작하는데 마지막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지는군요.     

그렇죠. 그렇다고 이 소설이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심각한 류의 책은 전혀 아니고요. 작가 스스로가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할 정도로 신나고 통통 튀는 느낌의 책이거든요.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휘두르며 악령과 싸우는 조금 특이한 걸 크러시 여자 주인공의 활약을 지켜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한 소설입니다.


M2 선미 - 누아르

https://youtu.be/CNeNwplE_aw


ann 오늘은 걸 크러시 매력을 뽐내는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보건교사 안은영 이야기를 해봤고요. 이번에는 어떤 소설 만나볼까요?     

이번에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소설 시리즈 하나를 소개해드릴 건데요. 제목부터 걸 크러시 터지는 소설입니다. 바로 에이미 스튜어트가 쓴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ann 정말 제목부터 만만치 않은 주인공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인데요. 작가부터 소개해주세요.     

에이미 스튜어트는 전문 소설가는 아닌데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매체에 원예에 대한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인 동시에 출판 평론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책을 보면 ‘술 취한 식물학자’ ‘위험한 벌레들’ ‘꽃의 비밀’ 같은 책들이 있는데요. 소설과는 좀 거리가 멀죠. 이 중에 술 취한 식물학자는 애주가라면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인데요.


ann 원예 칼럼니스트가 걸 크러시 넘치는 소설을 썼다? 어떤 소설인 거죠?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는 한 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바로 ‘콥 자매 시리즈’라는 건데요. 소설의 주인공인 콘스턴스 콥과 그의 두 자매의 활약상을 그린 책입니다. 콘스턴스 콥은 실존 인물인데요. 20세기 초에 미국 뉴저지 주에서 최초로 여성 보안관이 된 인물입니다. 최초의 여성 보안관이라고 하면 굉장히 유명했을 것 같은데 미국에서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대요. 에이미 스튜어트가 자료조사를 하다 우연히 콥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고 결심해서 책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ann 20세기 초면 미국에서도 아직 남녀평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시절인데요. 그런 시절에 최초의 여성 보안관이 된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겠네요.     

정말 그렇죠. 앞에 소개해드린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가 이 책의 추천사를 썼는데요. 추천사가 꽤 인상적이에요.

“여성 살인자들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여성 보안관의 이름은 지금껏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부덕한 표본만을 남겨 진취적인 여성들의 이름을 지워왔다. 우리는 그 지워진 이름들에서 먼지를 털어낼 것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멋진 여성 주인공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잠들어 있던 실존인물을 찾아내서 우리에게 보여줬다는 면에서 더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ann 이 책이 시리즈라고 했는데 오늘 소개해주시는 책은 첫 번째로 나온 거죠? 그럼 콥 자매가 어떻게 보안관이 되는지의 이야기를 다루겠네요.     

맞습니다. 콥 자매는 작은 농장을 운영하면서 평범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다 함께 마차를 몰고 시내에 가서 장을 보고 오다가 돌아오는 길에 지역의 큰 지주인 비단염색 회사의 소유주인 헨리 코프먼의 자동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코프먼은 사고를 내고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려요. 여기에 분노한 콘스턴스 콥이 코프먼의 회사를 찾아가고 여기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M3 Amy Winehouse – Stronger Than Me

https://youtu.be/7CYE0DYIbaw


ann 걸 크러시 터지는 매력의 소유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들 만나보고 있어요. 이번에는 에이미 스튜어트의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 이야기 중입니다. 미국 뉴저지주 최초의 여성 보안관인 콘스턴스 콥. 어떤 캐릭터인가요?     

콥이 코프먼의 회사를 찾아간 장면을 설명해드리면 어떤 캐릭터인지 이해가 될 텐데요. 코프먼이 교통사고를 내고도 사과도 하지 않고 오히려 안하무인으로 나와요. 더군다나 콥의 여동생 이름을 언급하면서 오히려 이죽거리는 거예요. 그러자 콥이 일어나더니 코프먼을 들어올려서 벽에 찍어눌러요. 콥은 실제로 키가 180센티미터에 완력도 웬만한 남성들보다 셌다고 하거든요.


ann 180센티미터의 키에 남자를 벽에 찍어 누를 수 있는 완력의 소유자. 정말 걸 크러시의 표본이네요.     

그렇죠. 그래도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까 코프먼 일당과 싸우는 게 쉽지는 않아요. 워낙에 지역의 재력가이다보니까 경찰도 슬금슬금 사건에서 발을 빼고요. 코프먼의 사주를 받은 무리들이 콥 자매의 집에 돌을 던지고 총을 쏘고 도망치기도 하고요. 콥 자매의 친오빠마저도 등을 돌리거든요. 이때 콥 자매를 도와주는 사람이 나오는데 바로 그 지역의 보안관인 로버트 히스입니다. 히스 보안관은 콥 자매에게 리볼버를 나눠줘요.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리고 히스 보안관과 콘스턴스 콥은 함께 코프먼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에 나서는데요. 여기에서 콘스턴스가 대활약을 하면서 자신들의 사건을 해결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정식으로 보안관이 되게 되는 거죠.


ann 20세기 초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리볼버를 가지고 보안관이 악당에 맞서는 이야기인 게 서부극이랑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렇죠. 보통의 서부극과 다른 점이라면 말을 타고 카우보이모자를 쓴 채로 악당을 쫓는 주인공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점이죠. 서부극하면 존 웨인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은 그렇게 말을 타고 악당을 쫓은 보안관 중에 존 웨인 같은 인물이 아니라 여성도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것 같아요. 소설을 보면 콥 자매를 괴롭히는 게 꼭 코프먼 일당만은 아니거든요. 당대의 사회 분위기도 한몫을 해요. 자매 셋이서 농장을 운영하는 걸 보면서 다른 가족들이나 주위에서 위험하다고, 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설득하기도 하거든요. 이런 사회적인 편견에 맞서 싸우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거죠.


M4 Billie Eilish – bad guy

https://youtu.be/DyDfgMOUjCI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계획 책으로 세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