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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ug 22. 2019

완벽한 여행을 위한 안내서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8월 4일 아흔한 번째 방송은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에세이 두 권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에세이를 두 권 준비해봤습니다. 여름휴가철이라서 여행 가는 분도 많을 테고, 바쁜 일이나 다른 사정으로 여행을 가지는 못 하더라도 조만간 나만의 여행을 떠날 계획을 짜는 분도 있을 텐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두 권의 책은 유명한 작가가 쓴 건 아니지만, 여행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여행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작가들의 책입니다.


ann 요즘 서점에 가면 여행 에세이가 정말 많죠. 그런데 너무 많다 보니까 막상 어떤 책을 골라야 할 지도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 이유 때문에 여행 코너나 에세이 코너에 가도 결국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여행 에세이는 한정돼 있거든요. 뷔페에 가더라도 결국 먹던 것만 먹게 되는 것처럼 여행 에세이도 읽던 작가의 것, 잘 알려진 사람의 것만 보게 되는 거죠. 김영하나 알랭 드 보통 같은 작가들의 여행 에세이에 먼저 손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조금만 더 찾아보면 유명 작가가 아니더라도 여행에 대해 깊이 생각할 만한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는 얼마든지 있거든요. 오늘 소개해드릴 두 권의 책이 그런 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ann 먼저 소개해주실 책은 어떤 책인가요?     

처음 소개해드릴 책은 한량 작가의 ‘원서동 자기만의 방’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의 슈퍼 호스트인 한량 작가가 자신이 직접 여행을 다니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 그리고 자신의 숙소를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이야기를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건데요. 원서동이 어디지, 하고 궁금해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원서동은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붙어 있는 동네인데요. 바로 옆에 창덕궁이 있죠. 서울 시내와 가깝지만 북촌과 창덕궁 덕분에 오래된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그런 동네입니다.

ann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객을 위한 숙소를 운영하는 사람이 쓴 여행 에세이군요. 뭔가 관점이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여행 에세이라고 하면 우리가 보통 낯선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의 관점을 먼저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익숙한 공간에서 여행자를 맞이하는 호스트의 관점도 함께 실려 있는 거죠. 다른 여행 에세이에서는 접하기 힘든 감성이나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은 원래 독립출판으로 나온 책인데요. 독립서점인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는 이 책을 ‘2018년 올해의 에세이’로 꼽기도 했습니다. 워낙에 좋은 반응을 얻다 보니 올해 2월에는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요. 독립출판 서적이 정식으로 출판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죠.     


M1 백예린 - Blue

https://youtu.be/GAwPzCqvAZw


ann 여행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여행 에세이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한량 작가의 ‘원서동 자기만의 방’ 이야기 중입니다. 이 책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좋았던 걸까요?      

이 책은 여행자가 아닌 숙박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는 호스트의 관점에서 쓴 책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와요. 작가가 왜 원서동에 자리를 잡고 거기에서 숙박 공유 서비스를 시작했는지, 매일 같이 오고 가는 서울의 동네들, 서울에서의 일상들, 이런 이야기가 쭉 나오는 거죠. 그런데 작가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여행자들이잖아요. 서울이 낯선 사람들을 매일 만나면서 작가는 자신이 익숙하게 여기던 공간과 시간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 거죠.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했던 생각과 시간을 나눌 수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저도 그저 편하게만 여겼던 서울이라는 도시의 매력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깨달을 수 있게 돼서 더 좋았던 것도 같아요.


ann 사실 서울에 살면서도 내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자는 일은 많지가 않죠. 에세이의 무대인 원서동이나 북촌 같은 동네도 어쩌다 데이트를 갈 일은 있어도 거기에서 잘 일은 없으니까요.     

우리가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게 더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요. 자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해진 공간들 말고 다른 곳으로 갈 일이 없는 거죠.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을 때도 서울보다는 다른 도시, 다른 나라를 먼저 떠올리게 되고요. 이 책을 읽다 보면 같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도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게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ann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 표현 같은 게 있을까요?     

이런 말이 나와요.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디서 살 것인가가 은근하고 촘촘하게 연결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살다라는 단어가 가지는 폭이 얼마나 넓은지 새삼 놀라곤 한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 탐색하는 일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다는 단어를 살면서 참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살다라는 단어가 정말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결국 낯선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살다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ann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살다’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다는 거네요.     

그렇죠. 책에 보면 서울에서의 삶에 대해 작가가 이렇게 말해요. 하루의 대부분을 출근에서 퇴근까지로 소모하고, 잘게 토막 나 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고. 조용히 책 읽을 시간이나 홀로 생각할 시간도 없는 게 서울의 시간이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여행 중에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 같다는 거죠.

그런데 이 말은 바꿔서 말하면,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을 여행의 그것처럼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가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마치 서울을 일상의 공간이 아닌 비일상의 공간, 여행지처럼 느껴보자는 거죠. 그런 게 가능할까 싶은데 이 책을 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ann 일상의 공간인 서울을 여행지처럼 낯설게 느껴보자.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방식인 것 같아요.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잖아요.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여행을 준비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써야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여행을 떠나도 결국 여행지에서의 시간이라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돌아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죠. 이 책을 쓴 한량 작가도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했거든요. 마드리드, 파리, 소렌토 같은 이국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많은 경험을 했죠. 그리고 그 끝에서 서울, 원서동이라는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거죠.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비행기를 타고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이 바로 그 공간이 가장 완벽한 여행지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입니다.     


M2 윤딴딴 – 니가 보고싶은 밤

https://youtu.be/-acZegLS4H4


ann 여행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뭔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몽골, 안단테’ 라는 제목의 여행 에세이입니다. 저희 방송에서도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여행작가 윤정욱씨의 책인데요.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몽골을 여행하고 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15박 16일이라는 짧지 않은 일정 동안 몽골의 사막과 호수, 그리고 도시를 경험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몽골이라는 여행지만큼이나 여행 그 자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ann 그러고 보면 최근에 몽골에 여행 가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주위에도 몽골 다녀온 사람이 적지 않은데요. 실제로 몽골로 떠난 여행객 숫자를 보면 2016년에 32만명 정도였는데 작년에는 42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2년 만에 30% 정도 늘어난 거죠. 올해도 마찬가지인데요. 지난 3월 한 달 동안 몽골로 가는 항공권을 검색한 검색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3%나 늘었다고 합니다.

ann 몽골 여행의 백미는 사막에서 보는 별이 아닐까요.     

몽골이 세계 3대 별 여행지라고 하더라고요. 서울은 밤이어도 밤이 아니잖아요.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니까요. 그런데 몽골, 특히나 사막으로 나가면 밤이 되면 완전히 적막한 어둠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 책을 보면 몽골의 밤, 그리고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 풍경이 책에 펼쳐지거든요. 글로도 나오고, 윤정욱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도 나오고요. 그런 밤하늘의 별 풍경을 이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해요.

“그건 슬프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해서 기쁠 때는 슬픔을 자아내고 슬플 때는 슬픔을 잊게 하는 풍경이었다. 태양은 날마다 선으로 떨어졌다.”

“달빛이 너무 밝아 별들이 숨어 버린 밤이었다”


ann 태양은 날마다 선으로 떨어졌다... 정말 멋진 표현이네요.     

여행 작가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행지를 경험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여행지의 풍경, 여행지에서의 경험, 이런 것들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 단어를 찾아내는 게 여행작가의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윤정욱 작가의 책을 우리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행지의 풍경을 묘사하거든요.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책의 제목에 나오는 안단테라는 표현도 윤정욱 작가가 몽골의 풍경을 표현할 땐 쓴 건데요. 안단테는 음악의 빠르기를 지시하는 표현인데 그 뜻이 걸음걸이 정도의 빠르기로, 거든요. 이 표현을 쓴 것도 작가가 몽골의 완벽한 풍경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걷는 정도의 속도로, 안단테의 빠르기로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M3 적재 – 별 보러 가자

https://youtu.be/JLT8qOdpDPM


ann 여행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윤정욱 작가의 ‘몽골, 안단테’ 이야기 중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여행의 이유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나요?     

이 책에서는 몽골의 풍경이나 몽골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주거든요. 책에 실린 사진도 몽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정말 잘 전달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건 마지막 에필로그예요. 에필로그의 제목이 ‘당신이 여행에서 완벽한 동행을 만날 확률’이거든요. 


ann 당신이 여행에서 완벽한 동행을 만날 확률, 작가는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몽골에서의 이주일은 내게 기적과 같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몽골 여행을 돌이켜보니 가장 기적 같았던 건 밤하늘의 은하수도, 사막을 배경으로 낮게 깔리던 석양도 아니었다. 그건 낯선 이들이 만나 함께 이뤄낸 시간과 마음들이었다.”

여행지에서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답고 좋아도, 함께 하는 사람, 동행이 좋지 않다면 그 여행이 좋을 수가 없겠죠. 이런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거죠. 몽골은 혼자서 떠나기 쉽지 않은 여행지거든요. 사막이든 호수든 투어를 하려면 6명 정도의 멤버를 모아야 하는데 6명이 모두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일 가능성은 크지 않죠. 그러니까 몽골은 새로운 사람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인 거죠. 그래서 몽골 여행에서 좋은 동행을 만난다면 더 기쁘고 반가울 수밖에 없는 거고요.


ann 그래서 완벽한 동행에 대한 이야기로 책이 마무리를 짓는 거군요.     

그렇죠. 작가가 이런 말도 해요.

세상에 끝나지 않는 여행이란 없다. 끝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길 잃은 방랑일 뿐이다. 끝이 있어야 여행이 아쉬운 법이고, 아쉬움이 남아야 지난 여행을 떠올리며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이 우리를 다시 여행이라는 길 위로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안다.


ann 앞의 책에서는 일상을 여행으로 만들어서 여행의 끝이 없게 하는 법을, 이번 책에서는 여행의 끝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군요.     

여행은 우리의 일상을 더 견디기 쉽게 해주는 원동력이죠. 그렇지만 우리가 이 원동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는 건 우리의 소중한 이 힘을 100%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 소개해드린 두 권의 에세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M4 검정치마 – 한시 오분

https://youtu.be/g0DDihJF0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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