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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Oct 13. 2019

소설은 아픈 인생의 약이 되어준다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0월 13일 백한 번째 방송은 소설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세상에는 정말 많은 소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정작 소설을 읽어야지 하고 서점에 가면 공황장애나 선택장애가 온 것처럼 책 한 권 고르기가 쉽지 않죠. 서점에 가득한 게 소설인데 지금 내가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결정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오늘은 이렇게 소설 고르는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한 이야기를 준비해봤습니다.


ann 소설 고르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 어떤 책인지 궁금하네요.     

오늘 소개할 책은 '소설이 필요할 때'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이른바 소설치료사들이 쓴 책입니다.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이라는 분들이 쓴 책입니다. 소설치료사라는 건 생소하죠.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빠진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소설을 추천해주는 사람이라고 하는데요.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죠. 이 책을 쓴 두 분은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런던에 설립한 인문학 아카데미 '인생학교'에서 문학치료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ann 인생학교는 한국에도 문을 열어서 활동하고 있죠.     

j 아나운서 출신 여행작가인 손미나씨가 중심이 돼서 인생학교를 운영 중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에는 문학치료 교실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대신 이렇게 책으로 정리된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ann 그런데 뭔가 병이 있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딱 맞는 소설을 추천한다는 게 말은 쉬운데 막상 해보려고 하면 정말 어려울 것 같은데요?     

저도 매주 2권씩 이 방송에서 책을 추천하고 있으니까 그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쓴 소설치료사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보이더라고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소설에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세계 문학까지 모두 751권의 소설을 다루고 있거든요. 책의 분량이 5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두꺼운 걸 감안해도 751권의 소설을 소개한다는 게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죠.


ann 어떤 방식으로 책이 구성돼 있을지 궁금한데요.     

문학치료라고 해서 어렵거나 고루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질 정도로 재밌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책을 '의학 편람'으로 정의하더라고요. 일반적인 편람이나 사전을 보면 알파벳 순서대로 단어들이 쭉 나오잖아요. 이 책도 마찬가지로 알파벳 순서대로 병의 증상이 쭉 나오고 그 증상에 도움이 될 만한 소설 두세편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증상 하나에 대한 책 추천이 한두 페이지 정도니까요. 길게 늘어지지 않고, 짧게짧게 필요한 이야기 위주로 나온다고 보시면 돼요. 여기에다 책을 쓴 작가들의 재치있는 문체가 더해지다보니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M1 임헌일 – 힘든 하루

https://youtu.be/fAXmcRaJxZs


ann 오늘은 소설로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소설 치료를 해볼까요. 재밌는 치료법은 어떤 게 있는지 소개 좀 해주세요.     

일단 조금 황당하지만 재밌는 치료법들부터 볼까요. 먼저 '대머리일 때' 읽으면 좋은 소설이 있습니다. 머리숱이 적거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 주위에 풍성한 머리숱이 있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하기 마련이죠. 이럴때 부러운 마음을 싹 사라지게 해 줄 소설을 저자들이 추천하는데요. 일단 퍼트리샤 콘웰의 '데드맨 플라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장 밥티스트 샹도니는 특이체질인데요. 온몸이 검은색 체모로 뒤덮이는 거죠.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존재가 되고, 살인 사건에도 연루가 되고요. 소설치료사들은 '이 책을 읽을수록 털이 혐오스러워질 것이다. 급기야 혼자만의 안도감을 느끼며 매끈한 두피를 어루만질 것이다'라고 추천합니다.


ann 문학치료라고 해서 엄청 진지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군요.     

진지한 고민이든 진지하지 않은 고민이든 이 소설치료사들에게는 모두 중요한 거죠.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문제나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게 느껴지는데요. 예컨대 변비나 딸꾹질을 할 때 읽으면 좋은 소설도 추천을 합니다. 변비에 걸렸을 때는 뭔가 뻥 뚫리는 게 필요하잖아요. 이때 읽으면 좋은 소설은 그레고리 데이비드 로버츠의 '샨타람'입니다. 이 소설은 뭄바이의 가난한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뭄바이의 빈민가라고 하면 목이 막힐 듯한 열기와 지저분함이 먼저 떠오르지만 소설의 이야기는 정반대로 술술 진행이 되고 2000만명이 살아가는 도시는 모든 게 정해진 대로 착착 진행되거든요.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의 몸속도 비로소 착착 움직이게 될 거라는 설명이고요.

딸꾹질을 할 때는 필립 헨셔의 '핏'이라는 소설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꼬박 한 달이나 딸꾹질을 하는데요. 온갖 방법을 써가며 딸꾹질을 멈추려고 하는 모습에서 독자도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책에 나오는 다양한 딸꾹질 대처법은 보너스로 얻을 수 있고요.

ann 대머리나 딸꾹질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뭔가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소설 추천도 있을까요?     

그런 추천도 많은데요. 예를 들면 비만일 때, 다이어트를 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소설도 나와요. 일단 안토니오 타부키의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라는 소설이 있는데요. 이 소설의 주인공인 페레이라는 아내가 죽은 뒤 매일 오믈렛을 먹으면서 아내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는데 그게 체중에는 안 좋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살을 빼는 방법을 고민하는데 결국 깨닫는 건 삶의 목표를 다시 찾는 게 최선이라는 겁니다. 냉장고에 자물쇠를 채우는 식으로는 살을 뺄 수 없는 거죠. 삶의 목표를 찾는 게 최선이라는 메시지가 거기에 나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을 사랑하라는 조언도 나오는데요.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의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라는 유명한 탐정소설 시리즈가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사람의 매력은 체형과는 무관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죠.


ann 문학치료라고 했을 때 처음 생각했던 거랑은 약간 느낌이 다르지만 재밌는 추천들이네요.     

문학치료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을 좀 없애려고 재밌는 사례 위주로 소개를 해드린 건데요. 물론 진지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사랑이나 이별, 외로움 같은 감정 들일 텐데요. 이런 상황이나 감정에 대처하는 법에 대한 조언은 뒤에서 자세하게 소개해드릴게요.


M2 이적 – 같이 걸을까

https://youtu.be/cJCAEq51z9c


ann 오늘은 소설로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나 이별 같은 상황으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위한 소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 이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저자들은 이별로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를 강력 추천합니다. 이 소설은 음악에 일가견이 있지만 인간관계는 서툰 30대 중반의 남자 롭이 겪는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인데요. 롭은 동거하던 여자친구랑 헤어진 뒤에 자신의 평생 겪은 가장 기억에 남는 다섯 가지 이별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이별을 아무리 많이 겪어도 매번 아프고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요. 이별을 겪은 뒤에 아프고 당혹스럽고 하는 감정이 너무나 당연한 거라는 걸 일깨워주죠.


ann 다른 사람의 이별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뭔가가 있을 것 같네요.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 읽으면 좋은 소설도 나옵니다. 인생의 고난 중에 아마 가장 힘든 일일 텐데요. 보통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다섯 단계의 감정 상태를 거친다고 해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단계인데요. 이 책에서는 각 단계별로 한 권씩을 추천합니다. 특히나 저는 이 다섯 단계 중에서도 네 번째인 우울의 단계가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때 읽으면 좋은 소설은 시린 허스트베트의 '내가 사랑했던 것'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평생 동안 우정을 쌓은 두 남자가 가족을 잃으면서 느끼는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우울증이나 고통의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돌파하는 소설로 유명합니다. 우울증은 우리가 회피하려고 할수록 더 커지기 마련인데요. 이 소설은 그걸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죠.

ann 다른 사람의 경험담이 힘든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니까요. 친구나 가족에게도 듣기 힘든 이야기를 소설이 해줄 때가 있죠.     

이혼을 고려할 때 읽어야 할 소설도 나오는데요. 하니프 쿠레이시의 '친밀감'이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6년을 함께한 부인을 떠나기로 결심한 남자의 이야기인데요. 결혼을 한 이후 매순간 어긋나면서도 서로에게 불만을 털어놓지 않은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대화를 했더라면 이혼이라는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텐데, 이 소설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ann 이렇게 보면 소설이 정말 좋은 약이 될 것 같아요.     

최근에는 에세이를 통해 사람들이 힐링을 받는 것 같아요. 물론 에세이도 좋은 역할을 하지만, 소설이 주는 효용은 절대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쓴 저자들은 "소설을 읽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위안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에세이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죠. 자신의 감정에 더 솔직할 수도 있고요.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소설치료를 적극 추천합니다.


M3 브로콜리너마저 - 울지마

https://youtu.be/PBE3eXH0iCg


ann 오늘은 소설로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소설로 치료하는 문학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또 소개할 책이 있나요?     

오늘 이야기한 문학치료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있어서 간단히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프랑스 소설가인 미카엘 위라스의 '이 책 두 챕터 읽고 내일 다시 오세요'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책을 쓴 저자들처럼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책을 추천해서 치료하는 문학치료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거든요. 도대체 소설을 추천하는 치료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정말 효과가 있는건지 이런 부분이 궁금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


ann 이 소설에서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소설을 추천해주는 거죠?     

주인공에게 치료를 받으러 여러 손님이 찾아오는데요. 사고를 당한 뒤로 집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 소년에게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추천해주고요. 성공한 축구 선수이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고민하는 손님에게는 '오디세이아'를 추천해줍니다. 동시에 문학치료사인 주인공 자신도 자신을 치료해줄 수 있는 소설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데요. 자신도 가족과 아내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책을 읽는 독자들도 소설치료를 받는 손님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책은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ann 책밤지기는 소설을 많이 읽잖아요? 힘들고 아플 때 힘이 되거나 도움이 된 소설이 있나요?     

소설을 읽으면 감정이 투명해진다고 할까, 솔직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요. 그럴때 저는 굉장히 힐링이 되는 마음을 가집니다. 최근에 제일 좋았던 소설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이라는 소설인데요.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네 명의 사람이 인도로 여행을 가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는 내용의 소설이거든요. 저는 이 소설을 개인적인 일로 고민이 많을 때 읽었는데, 읽는 내내 펑펑 울고나서 고통이나 고민에서 초연해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마음속에 근심이나 걱정이 많은 분들께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ann 책밤지기는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죠? 김연수 작가의 글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뭔가요?     

‘스무살’이라는 소설이 있는데요. 김연수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거든요. 이 소설을 대학생이 돼서 갈피를 못 잡을 때 읽었는데 마음을 붙잡아는 동아줄 같은 소설이었어요. 그런 말이 나와요.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때는 이 문장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이게 소설의 매력인 것도 같습니다.


M4 Adam Levine – Lost Stars

https://youtu.be/cL4uhaQ58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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