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0월 20일 백두 번째 방송은 2018년과 2019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매년 이맘때면 문학계 최고의 이벤트가 열리죠. 바로 노벨문학상인데요. 올해는 평소의 두배로 큰 규모로 진행이 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올해 노벨문학상 결과를 비롯해서 노벨문학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ann 평소의 두배라는 건 무슨 뜻이죠?
j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한 해 건너뛰었잖아요. 노벨문학상을 주는 스웨덴 한림원이 미투 문제에 얽히면서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고 넘어간 건데요. 그래서 올해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동시에 발표했습니다. 수상자 두 명이 동시에 나온 건 45년 만에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ann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출판계나 서점이 들썩들썩하잖아요. 한 명도 아닌 두 명이 수상자가 됐으니 정말 두배로 떠들썩하겠네요.
j 그렇죠.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두 명의 작가를 소개해드리면요. 일단 2018년 수상자는 폴란드 작가인 올가 토가르축입니다. 15번째 여성 수상자이기도 한데요. 신화나 전설, 비망록 같은 장르를 활용해서 인간의 실존적인 고독과 욕망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걸로 유명합니다. 작년에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받기도 했는데요. 우리나라에선 소설가 한강이 받은 상이죠. 한강도 노벨문학상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2019년 수상자는 페터 한트케인데요. 이분의 이름은 익숙한 분이 좀 있을 것 같아요. ‘관객모독’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데요. 이 작품을 연극으로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정말 파격적이거든요. 관객들에게 쉴 새 없이 비속어를 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놀랍죠. 이렇게 파격적인 작품으로 유명하고요.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의 각본가로도 유명합니다.
ann 그런데 확실히 두 명의 수상자 모두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분들은 아니었네요.
j 확실히 그렇죠. 노벨문학상 결과가 나오면 서점이며 인터넷 서점이며 다양한 판촉행사를 하거든요. 그런데 이 두 작가의 대표작이 원래는 일주일에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많이 낮은 작가였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에 수백 권씩 팔리고 있다고 하니까요. 노벨문학상이 우리가 잘 몰랐던 작가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된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ann 노벨문학상은 발표 전에 수상 가능성이 큰 작가들을 베팅업체가 뽑잖아요. 두 작가는 그 순위에 있었나요?
j 그 순위가 참 신빙성이 갈수록 떨어지는데요. 두 작가는 모두 예상외의 인물들이었던 것 같아요. 유력 후보로 거론된 작가들이 알바니아의 이스마일 카다레,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욘 포세, 미국의 조이스 캐럴 오츠 같은 이들이었거든요. 예상을 깬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M1 이기찬 - 감기
ann 오늘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있습니다. 이제 수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볼까요? 먼저 어떤 작가부터 만나볼까요?
j 먼저 페터 한트케부터 이야기해볼게요. 한트케는 그나마 한국에서 아는 분이 좀 있는 작가이기도 하고, 수상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화제의 인물이거든요.
ann 노벨문학상 수상작가한테 무슨 논란이 있는 거죠?
j 한트케는 약간 비주류의 영웅 같은 느낌이 있어요. 처음 데뷔할 때부터 귄터 그라스 같은 당시의 중진 작가들을 맹비난하면서 등장했거든요. 약간 남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다르게 노는 느낌이 있는데요. 비난이 나오는 이유는 1990년대 유고 내전 때 한트케가 취한 입장 때문입니다. 당시 유고 대통령인 밀로셰비치는 내전을 일으키고 알바니아계 국민들을 학살한 전범으로 일컫어지는데요. 한트케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은 적이 있거든요. 한트케는 인종학살을 저지른 전범을 옹호한다는 비판에 자신은 작가일 뿐 재판관이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어찌됐든 논란이 되는 건 피할 수 없죠.
ann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그럼에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건 문학적인 면에서는 두말이 필요없다는 뜻이겠죠?
j 작품만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오로지 문학적, 미학적인 기준으로만 수상자를 뽑는다며 이런 기준에서는 한트케의 수상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문학계에서도 문학이라는 이유만으로 보면 한트케의 수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죠.
ann 한트케의 작품 중에 어떤 걸 읽어봐야 할까요? 관객모독이 가장 유명한 작품인 거 같은데요.
j 관객모독이 제일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냥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작품입니다. 희극이다 보니 소설처럼 쉽게쉽게 읽히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추천하는 건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라는 소설인데요. 한트케의 자전적인 이야기도 담겨 있고 문체나 내용 모두 어렵지 않게 구성돼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젊은 작가가 사라져버린 아내를 찾아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부부가 서로에게서 멀어지기 위한 이별 여행을 하는 셈이기도 하면서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며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해요. 그러면서 잔잔한 이야기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약간 추리소설, 범죄소설처럼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책이 쓰여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ann 소설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을까요?
j 이 소설은 결국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모임에서 맨 마지막으로 자리를 뜨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것은 남아 있는 누군가가 나를 험담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다른 누군가가 비난받는 것도 막아주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 허수경 시인은 한트케의 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다. 대신에 가방에 오랫동안 넣고 다니며 긴 이별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반자가 되어줄 책이다.
M2 임주연 - 환생
ann 오늘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있습니다. 먼저 페터 한트케에 대해 살펴봤고요. 이번에는 올가 토카르축이라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j 토카르축은 아무래도 한국에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닌데요. 국내에 번역된 책도 세 권밖에 없더라고요. 저도 사실은 이번에 노벨문학상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 토카르축의 책을 찾아 읽어봤거든요. 그런데 왜 이런 작가의 작품을 여태껏 읽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좋았습니다. 다소 무겁고 진지한 구석이 많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나가다 보면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ann 토카르축의 작품 중에는 어떤 걸 읽어보는 게 좋을까요?
j 토카르축의 작품 중에 국내에 번역된 장편소설인 ‘태고의 시간들’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토카르축은 폴란드 작가거든요. 작품에도 폴란드의 정체성이 참 많이 담겨 있고요. 폴란드라고 하면 역사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 나라라고 이야기하죠. 외세의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2차세계대전 때 잔혹한 점령 통치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끔찍한 악몽은 아직도 폴란드에 뿌리깊게 내려 있기도 하고요. ‘태고의 시간들’은 그런 폴란드의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인데요. 읽어나가다보면 비슷한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부분들이 많죠.
ann 폴란드의 역사를 다루는 내용인 거네요.
j 이 소설은 폴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역사적인 사실도 다루지만 동시에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도 조금씩 섞여 있는데요. 일단 배경은 폴란드의 태고라는 가상의 마을을 다룹니다. 폴란드는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렸다고 했잖아요. 소설의 시작도 과거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가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던 시절로 거슬러갑니다. 그리고 1차, 2차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냉전 시대까지. 폴란드의 혼란스럽고 복잡했던 과거사에서부터 현대의 이야기까지 쭉 돌아보면서 그 속에서 힘없는 개인이 겪어야 했던 폭력과 고통의 순간들을 담담하게 기록한 작품입니다.
ann 이렇게만 보면 정말 역사 소설이 아닐까 싶은데 어떤 부분이 신화적이고 환상적이라고 하는 거죠?
j 이 소설은 하나의 긴 이야기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84편의 짧은 글이 이어지는 구성으로 돼 있거든요. 그리고 한 편 한 편의 짧은 이야기의 주체가 매번 다릅니다. 거대한 폭력의 현장을 지켜보고 증언하는 주체가 다양한 거죠. 태고라는 마을의 주민들도 있지만, 동식물들도 이야기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요. 신이나 천사, 단순한 사물들, 이미 죽은 사람까지도 등장해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가 섞이면서 폭력의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거죠.
ann 토카르축의 수상에 대해 주류 문단이 여성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오더라고요.
j 일단 토카르축 본인이 여성 작가이기도 하지만요. 작품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거든요. ‘태고의 시간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전쟁 같은 거대한 폭력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건 아무래도 여성들이잖아요. 이 소설에서도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시선을 보여주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요.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는 아무래도 개인의 존재를 지우기 마련인데 그 안에서 강제로 지워진 여성의 존재를 복원하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M3 태연 – 11:11
ann 오늘은 노벨문학상 수상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페터 한트케, 올가 토카르축 두 명의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j 아무래도 두 작가 모두 한국에서는 인기 있는 작가가 아니다보니 노벨문학상 발표의 열기가 아주 뜨겁지는 않은 것 같기는 해요. 그래도 작품만 놓고 보면 한 번쯤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는 분들이니까요. 이번 기회에 꼭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ann 2017년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경우에는 열풍이었잖아요. 이시구로의 책이 재출간되고 판매량도 급증하고요.
j 그때는 10월초에 황금연휴가 이어졌거든요. 아무래도 황금연휴의 덕도 컸을 것 같고요. 교보문고에서 재미있는 조사를 해서 결과를 가져와봤는데요. 최근 10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소설을 집계했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에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름이 없습니다. 과연 어떤 작가의 작품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요?
ann 누구인가요? 소개해주세요.
j 일단 9위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저희 방송에서도 여러번 소개한 작품이죠. 5위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3위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고요. 2위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대망의 1위는 바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올랐더라고요. 헤르만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서’도 7위에 올라서 유일하게 10위에 두 권의 소설을 올린 작가가 됐는데요.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사랑한다는 증거인 거 같아요.
ann 데미안은 10대, 20대의 필독서니까요. 게다가 BTS가 데미안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잖아요. 그런 것도 판매량에 영향을 줬겠죠?
j 그럴 것도 같습니다. 데미안은 BTS의 팬이 많은 10대, 20대가 읽으면 좋은 소설이니까요. 아쉬운 건 한국인 작가들의 작품도 노벨문학상 수상작품 목록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얼른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건데요. 노벨문학상을 꼭 받아야 하냐는 말도 있지만, 노벨문학상이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세계에 소개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잖아요. 이번에만 해도 토카르축을 통해 폴란드인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 한의 정서를 한국에 있는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노벨문학상이 그런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아무래도 한강 작가의 수상 가능성이 가장 클 것 같은데 10년 안에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M4 AKMU -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