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0월 27일 백세 번째 방송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지난주에는 노벨문학상 결과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도 노벨상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합니다. 노벨상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가장 마지막에 발표되는 게 노벨경제학상이거든요. 지난 14일에 발표된 노벨경제학상 결과, 그리고 상을 받은 수상자가 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ann 어떤 분들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길래 책밤지기가 흥미로워하는 건가요?
j 보통 경제학이라고 하면 어려워하기 마련이잖아요. 실제로 어려운 것도 맞고요. 그런데 이번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분들은 훨씬 손에 잡히고 우리 현실에 맞닿아 있는 연구를 한 분들이거든요. 이런 분들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고 책도 찾아보면 경제학이라는 게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쉽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ann 그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어떤 분인지부터 만나볼까요?
j 이번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분은 모두 세 명인데요. 미국 MIT 교수인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 그리고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크레이머입니다. 뒤플로 교수와 바네르지 교수는 부부 사이인데요. 교수와 제자 사이로 만나 결혼한 뒤 함께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노벨위원회는 이 세명의 경제학자에게 상을 주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인 빈곤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거든요. 경제학이라고 해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빈곤 문제를 연구하고 그걸 해결할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은 거죠.
ann 빈곤을 퇴치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경제학자들이군요.
j 맞습니다. 특히 바네르지와 뒤플로 교수는 2003년에 MIT에 빈곤행동연구소를 설립하고 전 세계 곳곳의 빈곤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만 전 세계 50개국에서 700여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특히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유명한 사례로 꼽히고 있고요. 오늘은 이 교수들이 쓴 책을 중심으로 경제학이 어떻게 가난을 퇴치하는데 도움을 주는지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M1 언니네이발관 - 마음이란
ann 오늘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바네르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떤 책이 있나요?
j 다행히도 이 두 교수의 책이 우리나라에도 한 권 번역이 돼 있더라고요. 유명한 경제학자가 아니면 노벨상을 받아도 한국에 번역서 한 권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분들의 책 제목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입니다. 우리가 보통 가난한 사람은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죠.
ann 예를 들면요?
j 가난한 국가의 출산율이 높은 걸 보면서 하는 말이 대표적인 예죠. 빈곤국에서 아이 한 명 잘 기르기도 어려운데 여러 명의 아이를 낳는 걸 보고 피임에 대한 교육을 못 받아서다, 피임기구를 살 돈도 없어서다, 이런 이야기를 흔히 하거든요. 가난한 사람이 저축을 잘 못하는 걸 가지고 저축에 대한 관념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말 그대로 편견일 뿐이고,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지적해요.
ann 어떤 면에서 그런 걸까요?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더 많은 아이를 낳는 건 확실히 비합리적인 게 아닌가요?
j 그렇지 않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인데요. 왜 빈곤국의 부모들은 아이를 많이 낳는지를 따져봤더니 피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의 가난을 극복하고 부모를 부양할 정도로 성공할 수 있는 자녀가 한 명은 반드시 나와야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러 명의 자녀를 낳는다는 게 책의 설명이에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빈곤국의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투자가 자녀를 낳는 거라는 거죠.
ann 하지만 그렇게 낳아도 결국 제대로 기르지 못하면 가난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j 여기서 이 책의 저자들이 대안을 제시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자녀를 많이 낳는 방식의 투자가 잘못됐다고 훈계하기보다는 그렇게 낳은 자녀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를 진행합니다. 아주 작은 지원만으로도 이런 빈곤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걸 실제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는데요. 예를 들면 이들 경제학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 빈곤가정에 모기장을 설치하기만 해도 모기장을 설치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의 미래 소득이 15% 정도 증가한다고 합니다. 또 구충제를 먹인 빈곤층 가정의 아이는 먹지 않은 아이보다 미래 소득이 20% 정도 많다고 하고요. 모기장이나 구충제 같은 어떻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것 하나하나가 아이의 미래, 그리고 빈곤층의 미래를 결정짓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거죠.
ann 모기장 하나, 구충제 한 알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거로군요.
j 빈곤 문제에 대한 경제학의 기본적인 입장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요. 무조건 원조를 많이 해야 한다는 공급론이 하나 있고요. 원조를 많이 하면 오히려 정상적인 시장을 만드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원조를 적당히 해야 한다는 수요론이 있어요. 그런데 이 두 가지 방법론은 원조를 해주는 선진국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본 거죠. 원조를 받는 빈곤국가, 빈곤가정에서 정말 필요한 게 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연구가 부족했거든요. 바네르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가 수십년에 걸쳐 연구한 건 기존 경제학의 이 빈 부분을 채워주는 연구였던 겁니다.
M2 소란 – 시험기간 책상정리
ann 오늘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네르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의 책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이야기해보고 있어요. 모기장과 구충제 같은 작은 방법만으로도 빈곤층 가정 아이들의 미래 소득을 20%씩 높여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네요.
j 그런 식으로 우리가 가난이나 빈곤층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편견을 여럿 깨 주는데요. 인도에서 무료 예방접종을 진행한 프로젝트 이야기도 인상 깊어요. 인도 라자스탄 지역에서 필수 예방접종을 받는 비율이 2%에 불과했거든요. 무료로 예방접종을 해주는데도 부모들이 예방접종을 받으러 오지 않은 거예요. 구호단체나 국제기구에서는 지역 사회에 뿌리깊은 미신 때문이라고 봤어요. 그 지역에는 아이가 한 살 전에 집 밖에 나가면 악마의 눈길을 받아 죽는다는 미신이 있었거든요. 국제기구나 구호단체는 미신 탓을 하며 손을 놓고 있었죠.
ann 빈곤국가에 미신이 만연해 있고 그런 미신 때문에 제대로 된 결정을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죠.
j 그런데 바네르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겁니다. 미신 때문이 아니라 부모들이 당장의 생계와 예방접종을 위해 지역 보건소까지 왕복하는 경제적 이득을 비교해서 판단을 했다고 본 거죠. 그래서 팀을 꾸려서 3개의 대조군을 만들어서 비교를 해요. 첫 번째 그룹은 그대로 두고 두 번째 그룹은 종전에 하던 것처럼 간호사나 구호단체 직원들이 예방접종을 독려하러 다녀요.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은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시키면 콩 2파운드를 주고 필수 예방접종 다섯 가지를 모두 맞으면 쟁반세트를 주기로 한 거예요. 그랬더니 콩과 쟁반을 나눠준 그룹의 예방접종률이 38%로 올라갑니다. 콩 2파운드면 1kg도 안 되는 적은 양이거든요. 아주 작은 인센티브만으로도 예방접종률이 크게 올라간 거죠.
ann 콩이 미신을 이겼네요.
j 여기에 경제학의 묘미가 있는 거죠. 빈곤층 가정의 부모들은 미신 때문이 아니라 예방접종을 받으러 오고가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 몇 시간 동안 일을 못하면서 생기는 경제적인 손실 때문에 예방접종을 하러 올 수 없었던 거예요. 콩 2파운드가 그 몇 시간의 경제적 손실을 보상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자 예방접종을 선택하는 부모가 크게 늘어난 거죠. 이런 식으로 조금만 발상을 전환하면 기존에 이뤄지던 빈곤 구호활동의 틀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거든요.
ann 정답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도 생각이 나고요.
j 가난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겠죠. 빈곤층을 돕고 가난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누구보다 더 애정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관찰해야 하거든요. 그냥 수만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쌀 얼마 콩 얼마 보내는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져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네르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는 직접 50여개국가의 빈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현장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대안을 고민한 분들이거든요. 그런 노력의 결실이 이렇게 돌아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ann 책에서 밑줄 친 문장이 있으면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j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나와요.
‘빈자가 부자보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기 때문에 뭔가를 선택할 때 훨씬 더 신중하게 행동한다. 꼼꼼한 경제학자처럼 행동해야 생존이 가능한 까닭이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겠죠. 그 시스템이 더 좋아지도록 개선하고 고치는 게 우리가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M3 이상은 – 넌 아름다워
ann 오늘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네르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의 책 만나봤습니다. 빈곤 퇴치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은 거네요.
j 최근에는 노벨경제학상이 소위 비주류라고 불리던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요. 빈곤 퇴치 연구는 사실 주류 경제학의 분야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노벨경제학상을 줬다는 건 이 분야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거고, 주류 경제학계도 자신들의 노선이 잘못됐다고 보고 조금씩 수정을 가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ann 찾아보니 이번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뒤플로 교수는 여성이고 최연소 수상자라면서요.
j 맞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두 번째 여성 수상자이자 최연소 수상자라고 해요. 올해로 마흔여덟살인데요. 스물아홉살에 MIT 종신교수로 임명됐다고 하니 말 그대로 천재인 거죠. 함께 노벨상을 받은 바네르지 교수와는 사제지간이자 부부관계인데요. 바네르지 교수의 말이 재밌더라고요. 일부 언론에서 뒤플로 교수를 바네르지의 아내라는 식으로 표현하니까, 자신을 뒤플로의 남편이라고 쓰는 게 더 정확하다, 그만큼 뒤플로 교수의 노력과 열정이 연구에서 중요했다고 설명하더라고요.
ann 정말 멋진 부부네요.
j 빈곤 문제를 퇴치하기 위해 가장 앞장섰던 경제학자는 아마트리아 센이 있는데요. 인도의 지성으로 불리고 경제학계의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199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고요. 경제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이 어떻게 빈곤 문제와 싸우고 있는지 궁금한 분은 아마르티아 센의 책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ann 경제학계의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면 말 다했네요.
j 오늘 소개해드린 경제학자들의 대선배격이라고 할 수 있죠. 아마르티아 센의 책은 국내에도 여러 권이 번역돼 있는데요. 경제학 서적의 딱딱한 문체가 싫은 분들은 에세이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세상은 여전히 불평등하다’는 제목으로 아마르티아 센의 에세이집이 번역돼 있거든요. 책에 실린 글 중에 하나를 소개해드릴게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불가능하다는 자의적 가정을 내세워, 반드시 직면해야 할 의문과 결정해야 할 선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 삶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사회적 지혜가 아니라 지적 항복을 택하는 격이 된다.’
M4 로만티코 -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