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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Nov 03. 2019

또다른 82년생 김지영을 다룬 소설들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1월 3일 백네 번째 방송은 '82년생 김지영' 이후 출간된 또다른 여성의 삶을 다룬 소설을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얼마 전에 개봉했죠. 3년 전인 2016년 10월에 출간돼서 다양한 토론과 논란을 일으키면서 슈퍼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죠. 한국뿐만 아니라 비슷한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일본,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82년생 김지영 이후로 조명받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을 가져와봤습니다.


ann 82년생 김지영은 소설뿐 아니라 영화로 제작된다고 했을 때도 큰 화제가 됐죠. 영화 개봉을 앞두고도 여전했고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저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 보고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소설의 역할 중 하나가 토론이 필요한 주제에 대한 토론장 역할을 하는 것도 있거든요.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위치, 목소리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가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거죠.


ann 오늘은 어떤 소설들을 만나볼까요?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방송에서도 몇번 이야기를 나눠봤으니까요. 오늘은 다른 소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82년생 김지영 못지않게 좋은 소설들,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그런 소설들을 몇 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이 주제에 대해 더 고민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은 소설들입니다.

ann 먼저 만나볼 책은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최진영 작가는 80년대생으로 젊은 작가 중 한 명인데요. 자신의 온몸을 던져서 소설을 쓰는 느낌의 작가예요. 그래서 소설을 읽어 나가는게 참 힘들 때도 있지만 동시에 읽고 나면 고행을 끝낸 것처럼 마음이 후련해지는 느낌도 있죠.


ann 이제야 언니에게. 제목만으로는 짐작이 안 가는데요. 어떤 소설인가요?     

이 소설은 제야라는 여성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요. 제야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학생 시절에 평소 다정하고 친절하게 굴던 당숙에게 성폭력을 당하게 돼요. 이 소설은 그 날의 사건 이후에 제야가 주변의 어른들, 친구들에게 버림받지만, 동시에 제야를 소중히 여기는 인물들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걸 보여주는 데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는 제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하는 그런 소설입니다.


M1 백예린 - 지켜줄게

https://youtu.be/IDD5_z3kKCU


ann 오늘은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들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 이야기해보고 있어요. 줄거리만 들으면 정말 끔찍한 아픔이나 슬픔이 담겨 있는 소설인 것 같은데요.     

소설의 기능 중 하나가 삶의 재현이라고 하잖아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제야는 지금의 2030 여성들의 나이 또래거든요. 82년생 김지영보다는 10년 정도 어린 나이대라고 해야 할까요. 82년생 김지영 열풍을 시작으로 페미니즘이나 여성의 목소리라는 말이 매일 같이 뉴스에 등장할 정도가 됐지만, 여전히 젊은 여성의 삶을 소설 안에 고스란히 재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요. 이제야 언니에게는 성폭력이라는 거대한 폭력에서 살아남은 여성 생존자의 삶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ann 2030 여성들의 세대적인 감수성, 아픔을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겠네요.     

2030 여성들이 가진 불안이나 분노의 원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야 언니에게 이야기를 더 하면요.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나뉘어서 진행돼요. 1부는 주인공인 제야가 동생인 제니, 그리고 사촌동생인 승호와 함께 보내는 유년 시절이 나오고요. 2부에서는 고향 마을을 떠난 제야가 먼 곳에 사는 이모와 함께 지내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마지막 3부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과거의 고통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제야의 모습이 나와요. 소설의 구성도 조금 다른데요.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제야의 일기가 불쑥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전개 방식 덕분에 소설을 읽는 독자가 제야에게 조금이라도 더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ann 줄거리나 설명만 들어도 제야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지 안타까운데요.     

소설에서는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보다도 그 이후 피해자인 제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에 더 초점을 맞춰요. 제야는 정말 놀랍게도 침착하게 대응을 해요. 산부인과와 경찰서를 혼자 찾아가면서요. 그런데 제야의 가족들, 부모, 친척들은 소극적인 반응으로 일관해요. 논란이 커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거죠. 제야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예요. 친구들은 제야를 전염병 걸린 사람처럼 냉대하거든요. 제야는 피해자인데 마치 모든 잘못이 제야에게 있는 것처럼 구는 거죠.


ann 제야에게는 믿었던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도 충격이었겠네요.     

피해자를 피해자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폭력적인 말을 내뱉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어른들이 참 우리 주위에 많은데요. 이 소설을 읽다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야가 끝내 이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건 제야를 믿고 힘을 빌려주는 동생, 그리고 이모 같은 사람들 덕분인데요. 소설을 읽다보면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되죠.


ann 피해자의 경험을 가지고 있든 없든 꼭 읽어야 할 소설이군요.     

작가의 말에 이런 글이 나와요. 

'현실의 어떤 제야에게는 제니와 승호 같은 존재가, 이모와 같은 어른이 없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홀로 애쓰는 사람, 방관과 의심 속에서 홀로 버티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제야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를 장면을 쓸 때는 제야의 고통을 묘사할 때만큼 주저했다. 제야는 우리를 안다. 우리는 제야를 모를 수 없다.'

우리는 제야를 모를 수 없다는 말이 머리를 때리죠. 우리 주위의 제야를 찾는 일, 그리고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되는 게 우리의 역할일 것 같습니다.


M2 피터팬 컴플렉스 – 바람이 불어오는 곳

https://youtu.be/C6nRKeod4Wo


ann 오늘은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소설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어떤 소설인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밀크맨'이라는 소설입니다. 애나 번스라는 비교적 무명의 작가가 쓴 장편 소설인데요. 작년에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애나 번스와 밀크맨 모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ann 어떤 작품이길래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은 건가요?     

이 소설은 1970년대 북아일랜드의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북아일랜드는 1960년대말부터 1990년대까지 치열한 독립 투쟁이 벌어지던 지역이었거든요. 북아일랜드 공화국군과 영국의 갈등이 치열하게 이어지던 곳이죠.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시도 그런 갈등의 한가운데 있는 곳입니다.

주인공은 이 도시에 사는 열여덟살의 어느 소녀인데요. 평범한 소녀예요.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책 읽는 걸 좋아해서 길을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런데 어느 날 밀크맨으로 불리는 사람이 이 소녀의 곁을 맴돌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ann 밀크맨이라면 우유배달부 같은 건가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 북아일랜드의 독립 투쟁이 벌어지던 지역이라고 했잖아요. 밀크맨은 일종의 암호명 같은 건데요.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이끄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겁니다. 독립 투쟁이 벌어지던 지역이었으니 밀크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겠죠. 지역 사회에서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독립운동 지도자와 사람들이 이름도 잘 모르던 평범한 10대 소녀의 싸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뻔하죠.


ann 사람들이 소녀가 아닌 밀크맨의 편을 드는군요.     

정치적인 일이 더 중요한 상황에서 10대 소녀의 목소리를 묻히는 거죠. 모두가 10대 소녀에게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게 왜 길을 걸으면서 책을 읽느냐. 그런 습관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거라고 오히려 비난하기만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오히려 주인공 소녀가 밀크맨을 유혹하려고 벌인 일이다. 순진한 밀크맨이 당했다는 소문까지 돌게 되고요. 소녀의 친한 친구들조차도 등을 돌립니다. 


ann 앞에서 읽어본 '이제야 언니에게'도 비슷한 이야기였죠.     

폭력의 목소리에 저항하는 여성의 목소리라는 면에서 그렇죠. 또 하나 비슷한 건 두 소설 모두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건데요. 이제야 언니에게는 주인공 제야의 일기 부분이 일인칭이죠. 왜 일인칭 시점이 쓰이는 걸까 생각해봤는데요. 소설은 삶의 재현이라고 말했잖아요. 거대한 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의 삶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그 여성의 입장에서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일인칭 시점을 택한 게 아닐까 싶은 거죠. 밀크맨의 경우는 이런 일인칭의 힘이 극대화되는 소설인데요. 주인공이 자신의 입장을 계속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한 문장이 몇 페이지씩 이어질 때도 있어요. 불안과 공포, 분노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입말로 이야기하는 건데 담담하지만 정말 폭발적인 힘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M3 이바다 – 그녀의 밤

https://youtu.be/87bH3laeTSM


ann 오늘은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 만나보고 있습니다. 작년에 맨부커상을 받은 애나 번스의 ‘밀크맨’ 이야기하고 있어요. 밀크맨의 주인공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참 인상적이네요. 사실 성범죄의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밀크맨의 주인공은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요. 주인공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이름이 아닌 특정한 관계나 가명으로 등장합니다. 예컨대 가장 오래된 친구, 가운데딸, 이런 식의 이름으로만 등장해요. 그러다보니까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 많은 독자들이 자신이 겪은 일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ann 많은 여성이 비슷한 경험이 있을 테니까요.     

김영란 전 대법관이 이 소설에 대한 추천사를 썼는데요. 이렇게 말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아득해지는 것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시대가 반복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은 분명 1970년대 북아일랜드지만,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2019년의 한국일수도 있고, 미국일수도 있고 일본일수도 있는 거죠.


ann 미투 운동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해외에서 이렇게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소설이 많은 것 같아요.     

확실히 그런 분위기입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에도 여성이 있었죠. 그리고 올해 맨부커상도 페미니즘과 관련된 소설들에게 돌아갔어요. 마거릿 애트우드와 버나딘 에바리스토가 공동 수상했는데요. 원래 1명의 작가에게만 주는 게 원칙인데 이 원칙을 깨고 2명에게 상을 준 거죠. 특히 에바리스토는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수상자가 됐고요.

마거릿 애트우드는 '시녀 이야기'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죠. 페미니즘 운동에도 많은 영감을 준 소설인데요. 이번에 상을 받은 '증거들'은 시녀 이야기의 속편이라고 합니다. 에바리스토의 소설도 흑인 영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ann 앞으로도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이 많이 나오겠죠?     

그럴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젊은 작가들이 여성 서사에 주목하고 있고요. 그러다보니 좋은 작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거든요. 앞으로도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좋은 작품을 꾸준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4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제 연인의 이름은(디깅클럽서울 ver.)

https://youtu.be/RT35-r5sT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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