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2월 9일 백열일곱 번째 방송은 알을 깨고 나온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오늘은 소설과 에세이를 한 권씩 준비했는데요. 알을 깨고 나온 여성이라는 주제를 붙여봤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건 소설 '데미안'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비유죠. 누군가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깨고 나와야 한다는 거죠. 알 속에서는 그 안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알을 깨고 나오면 비교할 수 없이 더 넓은 진짜 세상이 펼쳐진다는 거죠.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그런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해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ann 알을 깨고 나온 여성들의 이야기. 먼저 소설부터 만나볼까요?
j 먼저 소개할 책은 제니퍼 이건의 '맨해튼 비치'라는 소설입니다. 이 책은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인 제니퍼 이건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인데요. 제니퍼 이건은 국내에는 아직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소설가 중 한 명입니다. 2011년에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고요. 뉴욕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ann 그리고 여성 작가이기도 하죠?
j 맞습니다.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가 본인도 세상에 맞서는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오로지 여성 캐릭터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미국의 시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얽히고설키는 인물들의 욕망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고요. 역사소설인 동시에 조직범죄의 뒷모습을 다룬 누아르의 모습도 보여주는데 재미라는 가치에 있어서도 전혀 떨어지는 면이 없는 소설입니다.
ann 2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미국이 배경이라고 했는데요. 줄거리를 조금 더 소개해주세요.
j 이 소설의 주인공은 크게 3명인데요. 1930년대와 194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합니다. 2차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고 전쟁 상황이 된 뉴욕이 모두 배경이죠.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애너 캐리건이라는 여성입니다. 그리고 애너의 아버지인 에디가 있고, 이 부녀와 모두 엮이는 범죄조직의 중간 보스인 덱스터라는 인물이 나오고요. 에디와 덱스터 모두 중요한 역할이지만, 역시나 가장 중요한 건 애너라는 여자 주인공인데요. 애너는 어릴 때 아버지가 실종되면서 엄마와 장애를 가진 여동생과 함께 커요. 그렇지만 늘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나중에 전쟁이 발발하자 뒷전에 물러나는 게 아니라 해군 공장에 취직해 일하다 여성 다이버까지 되죠.
ann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성장스토리를 다룬 거군요.
j 맞습니다. 애너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요. 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도 여성이 배에 타면 불행해진다는 말이 흔할 정도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고 하거든요. 그런 시대에 주인공인 애너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간 거죠. 그리고 그 해방구가 되는 게 바다라는 공간이고요. 해양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예전에는 있었거든요. 모비딕이나 노인과 바다 같은 소설이 있죠. 지금은 거의 명맥이 끊겼다고도 할 수 있는데, '맨해튼 비치'가 그 명맥을 되살렸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M1 이효리 - 미스코리아
ann 오늘은 알을 깨고 나온 여성의 이야기라는 주제의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전쟁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성장 소설인 ‘맨해튼 비치’ 이야기중입니다. 전쟁과 바다라는 키워드만 봐도 가슴뛰게 하는 뭔가가 있네요.
j 그렇죠. 이 소설은 분명 페미니즘 문학의 범주에 넣어도 될 텐데요. 동시에 전쟁소설이자 누아르 문학으로서의 가치도 확실합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인데도 읽는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제니퍼 이건의 강점 중 하나인데 내러티브를 짜는 솜씨가 장인의 수준에 올랐어요. 줄거리 전개가 조금 루즈하고 지루해진다 싶을 때 갑자기 폭탄이 터지듯 큰 사건을 하나씩 터뜨려요. 그러면 다시 소설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고요.
ann 애너라는 여자주인공이 해군 공장에서 일하다 다이버까지 된다고 했잖아요. 다이버라는 일이 소설의 전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j 물론입니다. 애너의 아버지인 에디가 범죄조직의 중간 보스인 덱스터의 밑에서 심부름일을 했거든요. 가족 중에서는 딸인 애너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날 에디가 갑자기 사라져요. 두 딸과 아내를 남기고 사라진 거죠. 애너는 그 뒤로 자신의 아버지가 범죄조직에 의해 바다 어딘가에 수장된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의심을 품고 매일 같이 바다를 바라보다 전쟁이 터지고, 남자들이 전쟁터로 가면서 그전까지 여자들에게 허락되지 않던 여러 일자리가 오픈된 거죠. 그리고 애너가 거기에 도전해서 온갖 어려움을 뚫고 결국 다이버가 됐고요.
ann 바다 밑에 있을지 모를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였군요.
j 그리고 실제로 어느날 아버지의 시계를 바다 안에서 찾기도 합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그 이후로도 쭉 이어지지만 너무 스포일러가 될테니 여기까지만 말해야 될 것 같네요. 확실한 건 이 소설이 제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손에 꼽게 흥미진진하고 재밌다는 거죠. 소설의 중간중간 2차 세계대전의 이야기가 전해지거든요. 스탈린그라드전투, 로스토프 해방전, 무르만스크 해방작전 같이 2차 세계대전에 기록된 굵직한 전투들이 언급돼요. 사실 우리 역사책에 기록된 건 그런 이야기들이죠. 하지만 동시대에 애너 같은 여성도 전쟁의 승리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는 사실, 그런 사실을 이 소설이 다시 일깨워주는 거죠.
ann 역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이 되살려주기도 하죠.
j 그리고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라서는 미국의 뒷바탕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해주죠. 조직적인 범죄와 정치, 경제를 움직이는 숨은 세력들, 그리고 마약과 총, 돈세탁 같은 것들까지. 범죄조직이 애너의 아버지를 바다에 밀어넣어버린 것처럼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역사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우려고 했던 어둠의 역사를 이 소설이 다시 살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인 덱스터, 애너, 에디는 모두 이민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미국 주류 사회의 변두리에 머물러야 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미국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도 참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죠.
ann 소설에서 인상 깊은 문장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j 하나의 문장이라기보다는 작가인 제니퍼 이건이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여주인공인 애너의 이름이 어디에서 따온 건지를 설명해요. 바로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에서 애너라는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안나는 성적인 분방함 때문에 결국 죽게되죠. 제니퍼 이건은 이걸 톨스토이가 안나를 단죄한 거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자신은 톨스토이가 단죄한 안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애너라고 지은 거락 합니다. 기 세고 자유분방한 여성이 그로 인해 더는 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는 거죠. 아마도 애너는 우리 시대의 많은 여성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소설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M2 혁오 - Ohio
ann 오늘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여성이라는 주제의 책 이야기 중입니다.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요?
j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타라 웨스트오버가 쓴 '배움의 발견'이라는 에세이입니다. 30대의 젊은 작가가 본인의 인생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회고록인데요. 앞에서 소개해드린 '맨해튼 비치'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다룬 것 같은 소설이라면, 이번에 소개해드릴 '배움의 발견'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쓴 에세이지만 마치 소설 같은 내용입니다. 정말 이런 일이 21세기에 있었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ann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았길래 그런 말이 나오는 거죠?
j 타라 웨스트오버는 1986년에 미국 아이다호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납니다. 저희랑 같은 해에 태어난 거죠. 그런데 저자의 7남매 중에 네 명은 출생증명서가 아예 없었다고 해요. 가정 분만으로 태어나서 병원에 가본 적도 없고요. 아버지가 모르몬교 근본주의자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거예요. 세상이 곧 종말을 맞을 거라고 믿고 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그저 순종해서 살고요. 그래서 저자는 열여섯살까지 학교에 가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다 집을 떠나 대학에 들어간 셋째 오빠 덕분에 집 밖의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홈스쿨링으로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땄고, 작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히기도 합니다.
ann 열여섯까지는 대학은커녕 학교도 못 가본 아이가 그다음 17년 동안은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된 거네요. 정말 극적인 인생의 반전이군요.
j 그렇죠. 그런데 이런 소개만 보고 이 책을 산골 출신 아이의 인생 역전 드라마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조금 더 나아가서 공부법에 대한 책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게 전혀 아닙니다. 그냥 인생 역전에 성공한 사람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한 여성이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기록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홈스쿨링으로 어떻게 케임브리지를 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을 떠나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고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인 거죠.
ann 책의 제목은 어떤 뜻인가요? '배움의 발견'이라는 제목은 스토리에 비해 좀 단순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j 이 책의 영어 원제는 educated인데요. 어떻게 보면 타라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겪는 이야기를 극단으로 끌고 간 거라고 볼 수도 있어요. 모두가 부모에게서 뭔가를 배우잖아요. 사회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또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뭔가를 배우기도 하죠. 타라는 그게 극단적으로 표출된 경우였고요. 이때 우리는 사회에 한 발 내딛기 위해 부모와의 관계를 끊어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모와 갈등을 겪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는 경우도 있죠. 이 책에 나오는 타라는 그런 불안과 갈등을 배움의 발견이 선사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의지를 통해 극복합니다. 진정으로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거죠.
M3 Anne-Marie - Perfect to me
ann 모르몬교 근본주의 집안에서 나고 자라 열여섯까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소녀 타라 웨스트오버. 그녀가 독학으로 대학에 가고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게 된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배움의 발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열여섯까지 학교에도 못 가본 소녀가 갑자기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 많은 것이 새로울 것 같아요.
j 세상의 모든 게 새롭게 다가오겠죠.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타라가 제대로 읽어본 책이라고는 성경과 모르몬교 경전밖에 없었다고 해요. 대학 입학시험을 치를 때는 OMR 카드를 어떻게 적는지 몰라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요. 나폴레옹과 장발장 중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 물어보는 아주 초보적인 질문에도 답을 못합니다. 역사책이나 소설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수업 도중에 '홀로코스트'라는 단어가 나와서 이게 무슨 뜻이냐고 질문을 던진 에피소드도 나와요. 그러자 교수가 '그런 걸로 농담하면 안 된다'고 혼내기도 하고요. 수업이 끝나고 컴퓨터실에 가서 검색한 뒤에야 홀로코스트가 뭔지 알게 됐다고 합니다.
ann 정말 세상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로 갑자기 뛰어나온 거네요.
j 그렇죠. 타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바로잡히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잘못 알고 있던 규모가 너무도 커서 그것을 바로잡으면 세상 전체가 변할 정도였다.'
어릴 때 집에 있을 때는 타라의 아버지가 늘 세상 사람들이 이방인이고 자신들은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고 했대요. 그런데 세상에 나온 뒤에 비로소 깨달은 거죠. 자기 가족이야말로 이방인처럼 살고 있었다는 걸요. 이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건 두 가지죠. 우선 집이라는 울타리를 빠져나와 세상으로 나온 그녀의 용기와 의지가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한 배움의 기회가 보장돼 있었기 때문이겠죠. 이 두 가지 덕분에 타라는 남들보다 조금 늦었지만 누구 못지않게 당당한 한 사람으로 세상에 설 수 있었고요.
ann 타라의 가족은 여전히 같은 삶을 유지하고 있겠죠?
j 그런 것 같습니다. 책에 보면 그녀의 아버지가 타라에게 돌아오라는 식으로 편지를 쓰는 이야기가 나와요. 미국에만 있으면 언제든 네가 있는 곳에 가서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 지하 탱크에 연료가 4000리터나 있으니 종말이 와도 문제가 없다. 이러면서요. 케임브리지는 영국이니까 바다 건너 떠나지 말라고 한 거죠. 하지만 타라는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아요. 자신만의 길을 계속 가기로 결심하고 케임브리지로, 하버드로 계속 배움을 찾아 떠나죠.
ann 그렇게 해서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게 됐군요.
j 그 원천이 바로 배움이라는 건데요. 이 책의 저자인 타라가 오프라 윈프리와 나눈 인터뷰에서 배움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배움은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성장하고, 책임을 받아들이고, 놓을 것은 놓아 보내고, 품을 것은 더 힘껏 품을 줄 알게 되는 과정 모두가 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움의 힘에 대해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겠죠.
ann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으면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j 저자인 타라의 전공이 역사학이에요. 교수가 하루는 칠판에 이렇게 썼대요. '누가 역사를 쓰는가?'라는 질문을요. 거기에 타라가 찾은 대답은 이래요. '그건 바로 나다' 역사를 쓰는 건 위대한 정치인이나 기업인, 역사학자나 정치학자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겁니다. 이 말을 우리 모두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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