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걷다걷따

숲에서 숨 쉬며 걷기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

by 이기자

제주에서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걸었다. 맑은 공기를 허파 가득 담아가려는 마음에 걸을 때마다 더 의식적으로 숨을 크게 쉬었던 것 같다.


일주일 간 제주를 다녀왔다. 1년에 한 번씩 다녀오는 제주이지만, 이번에는 '걷기'를 테마로 예전보다 다양한 곳들을 다녀왔다.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과 가파도 청보리길, 한라산 영실코스를 걸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중문관광단지의 엉덩물 계곡과 제주시 전농로 벚꽃길, 사라봉 해넘이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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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은 암괴들이 불규칙하게 널려 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을 말한다. 숲을 의미하는 '곶'과 덤불을 의미하는 '자왈'이 합쳐져 곶자왈이 됐다. 제주 4대 곶자왈은 '한경-안덕 곶자왈', '애월 곶자왈', '조천-함덕 곶자왈', '구좌-성산 곶자왈'인데, 내가 다녀온 곶자왈 도립공원은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에 있다.


제주시에 도착한 이튿날 아침 일찍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755번 버스를 타고 곶자왈 도립공원으로 향했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50분에 한 대씩 있는 755번 버스를 타고 제주영어교육도시에 도착하자 10시 반이 넘어 있었다. 곶자왈 도립공원 입구는 영어교육도시 바로 옆에 있었다. 짐을 맡기고 곶자왈 도립공원에 들어갔다.


공원은 크게 다섯개 길로 나눠져 있었다. 입구에서 숲의 한 가운데로 향하는 테우리길과 숲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한수기길, 오찬이길, 가시낭길, 빌레길이다. 이 가운데 따로 떨어져 있는 가시낭길을 제외하고 나머지 길을 걸었다. 대략 5km 정도를 2시간 동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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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은 숲이다. 숲 그 자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곶자왈은 용암 분출로 형성된 지대에 형성된 숲이다. 당연히 비옥한 토지보다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땅이었다. 그래서 곶자왈 지대에 만들어진 숲은 다른 지역의 숲보다 더 오랫동안 천천히 형성됐다고 한다. 식물들의 끈덕진 생명력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곶자왈인 셈이다. 테우리길을 따라서 20분 정도를 들어가면 나무 데크가 사라지고 숲의 흙바닥을 밟을 수 있게 된다. 높이 10m 정도의 나무들이 숲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어서 오전 시간인데도 햇빛이 잘 들지 않았다. 그만큼 공기는 신선했다. 그럼에도 숲 특유의 축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후에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거대한 공기청정기 바로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숲은 고요하면서도 분주했다.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었는데 실제로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은 없었다. 바람의 태반이 숲의 표면을 튕기듯 지나갔기 때문에 소리로만 바람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 때마다 숲 전체가 움직이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숲길에는 벚꽃잎이 한가득 깔려 있어서 신비롭기도 했다. 봄을 맞아 산벚나무가 숲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시선을 낮추면 각종 고사리가 지천에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며 난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숲 어딘가에 노루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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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은 걷기에 좋은 숲이 아니다. 곶자왈은 나무를 위한 숲이지 사람을 위한 숲이 아니다. 잘 정돈된 휴양림을 생각하고 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특히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대지의 특성상 암석이나 암괴가 많아 걸을 때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공원 곳곳에 나무 데크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구간을 걸을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운동화를 신었다가 발바닥이 아파서 제법 고생했다. 여러 길 중에서도 오찬이길이 특히 걷기가 힘들었다. 가보지 않았지만 가시낭길은 더 험하다고 한다.


길을 따라 이리저리 가다 보면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숲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온통 나무로 뒤덮인 숲이기 때문에 전망대에서 본다고 감탄할 만한 풍경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숲 안에서는 짐작하기 힘들었던 숲 전체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숲 너머로 한라산과 산방산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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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은 숲 그 자체다. 별다른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십 년, 수백 년을 숲에서 보냈을 나무들을 보다 보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나뭇잎은 흔들리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나뭇가지는 젖어든다. 곶자왈 도립공원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찾는 사람도 적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숲과 대화하며 걸을 수 있다. 2시간 남짓 걷자 다시 테우리길이 나타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곶자왈 도립공원 홈페이지를 못 찾았습니다. 전화번호는 064-792-6047입니다. 입장시간에 제한이 있으니 확인하고 가시는 게 좋습니다. 대중교통 이용하실 분은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755번 버스를 타면 됩니다. 영어교육도시로 향하는 755번 버스가 40~50분 간격으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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