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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걷다걷따

한라산과 함께 하는 제주의 음식들

by 이기자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4월의 첫 주에 제주를 다녀왔다. 맛있는 음식 덕분에 하루에 2만보, 3만보씩 걸으면서도 퍼지지 않을 수 있었다. 여러 맛집 블로거들과 신문기사를 토대로 나름 제주도의 여러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제주시-모슬포-중문-제주시로 이어지는 일주일의 여행 기간 들렀던 제주 식당에 대한 간략한 후기.


1. 한라식당

제주시 이도2동 1176-116


제주 전통음식을 내는 식당이다. 각종 국류와 조림류, 구이류가 있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왔다는 한라식당이 제주도에 또 있는데, 그곳과는 다른 곳이다. 메뉴 자체가 다르다. 흑돼지와 쑥빈대떡은 없다. 대신 옥돔무국과 고등어조림이 있다. 평일 오후 5시 반쯤 가게를 찾아 옥돔무국과 고등어조림을 먹었다. 제주에서는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넣는 생선국을 많이 먹는데, 이곳에서는 무를 함께 넣어준다. 크기가 쏠쏠한 옥돔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고 무도 한 가득이다. 국물은 굉장히 깔끔하고 시원하다. 한라산 소주를 함께 들이켜도 쉽게 취하지 않을 정도다. 제주의 유명 음식점인 네거리식당에서도 생선국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곳보다 더 깔끔한 맛이었다.


제주시청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유명 관광지가 근처에 딱히 없어서 인지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대체로 자리는 여유 있는 편이었다. 고등어조림도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약간 매운맛이 있었지만 과하지 않다.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DSC02398.JPG 한라식당 옥돔무국과 고등어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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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덕승식당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770-3


역시 제주 전통음식을 파는 식당이다. 모슬포항에 있다. 이곳은 조림이 유명하다. 특히나 갈치조림은 제주 현지인들도 인정하는 맛집이라고 한다. 덕승식당이 모슬포항에 두 곳이 있는데 2호점은 아들이 운영하는 듯했다. 본점을 가고 싶었지만 폭풍우가 몰아치는 지라 숙소 바로 앞에 있는 2호점에서 갈치조림 2인분을 먹었다.


덕승식당 갈치조림의 미덕은 가격에 있다. 제주의 웬만한 식당에서 갈치조림 2인분을 시키면 4만 원은 기본으로 넘을 텐데 이 곳에서는 한라산 소주에 공깃밥까지 시켰는데도 3만 원이면 충분했다. 제주 물가를 생각하면 아주아주 저렴하다. 그렇다고 갈치가 아주 작다거나 요리가 형편없다거나 하지도 않다. 갈치가 큰 편은 아니지만 양은 충분하다. 양념이 맵거나 짜지 않아서 계속해서 먹게 되는 매력이 있다. 갈치조림 밖에 먹지 않았지만 양념 맛으로 봐서는 다른 조림류도 맛있을 것 같다. 현지인들은 매운탕을 많이 시켰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가서 먹어보고 싶다.

5주년기념제주도여행_8874.jpg 덕승식당 갈치조림


3. 산방식당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864-3


밀냉면의 신세계다. 부산에 외갓집이 있는지라 밀면을 어릴 때부터 많이 먹었지만,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산방식당의 밀냉면은 맛있었다! 면이 제법 두꺼운데도 탱글탱글하고 쫄깃쫄깃하다. 그렇다고 쫄면 정도로 쫄깃한 것은 아니다. 딱 적당한 수준이어서 면의 맛을 즐기기 좋다. 새콤한 국물도 시원하게 들이키기에 좋다. 이런 류의 면요리는 허접해지기 십상인데, 산방식당의 밀냉면은 그 오묘한 맛의 중심을 정확하게 잡았다는 느낌이 든다.


곁들이는 음식은 수육이 있다.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주 물가나 서울 물가나 거기서 거기인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고기 자체도 퍽퍽하지 않고 좋았다. 찍어 먹으라고 주는 소스가 달짝지근하니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된다. 밀냉면의 양이 제법 되는지라 둘이 가면 밀냉면 하나에 수육 하나 시키면 되지 않나 싶다. 어차피 제주 여행을 가면 매끼 포식하게 되기 때문에 굳이 밀냉면으로 배를 꽉꽉 채울 필요는 없으니.


평일 오후의 한적한 시간대에 갔더니 줄도 없었고 테이블도 많이 비어 있었다. 피크타임을 피해서 가는 것이 여유롭게 밀냉면에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DSC02606.JPG 산방식당 밀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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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풍해장국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939-2


모슬포항은 가파도와 마라도를 잇는 제주의 거점 항구 중 하나지만, 생각보다 황량하다. 밤에는 항구 쪽은 거의 불빛이 없다시피 할 정도다. 은근히 밥 먹을 식당 찾기도 쉽지 않은데, 아침식사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해장국 집이 있다.


영풍해장국은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하는 아침식사, 점심식사 전문점이다. 대체로 현지인들이 뱃일을 하고 밥을 해결하는 곳으로 보인다. 해장국하면 흔히 떠올리는 콩나물해장국, 소머리 해장국뿐만 아니라 꽃성게해장국, 보말해장국, 오징어해장국, 굴해장국도 있다. 제주에 왔으니 해물이 들어간 해장국을 먹어보자. 오징어해장국과 보말해장국을 먹어 봤는데 굉장히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 오징어해장국은 오징어 한 마리가 거의 통째로 들어간 느낌이고, 보말해장국에는 전날 먹은 보말칼국수보다 더 많은 보말이 있었다.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느낌의 식당이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답게 한라산 소주가 냉장고 밖에 있는데, 해장국을 안주 삼아 한 잔 하는 것도 좋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술을 곁들인다. 아마도 일을 끝내고 마시는 것이겠지만.

S__22429698.jpg 영풍해장국 오징어해장국

5. 칠돈가 중문점

서귀포시 중문동 1493-1


중문은 모두 알다시피 관광단지다.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관광단지일 것이다. 그에 걸맞게 식당들도 굉장히 비싸고 호화스럽다. 최근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겨냥하는지 중국어 간판이 곳곳에 보인다. 이런 관광단지 식당들은 가성비에서 최악의 경우가 많으니 가급적 피하지만, 도저히 갈 곳이 없을 때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때는 그나마 맛이라도 검증된 곳을 찾는 편이 낫다. 칠돈가가 그런 경우다.


천제연 폭포 바로 앞에 있다. 제주 흑돼지야 워낙 유명하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칠돈가 중문점은 아주 비싸지만, 정말 맛있는 흑돼지를 낸다. 종업원이 테이블 몇 개를 맡아 고기를 일일이 구워주기 때문에 태울 염려 없이 비싼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2인분 가격이 5만2000원이나 되니 태워서는 안 된다. 가게가 다소 비좁아서 웨이팅이 항상 있다. 30분 정도라면 기다려서 먹을만한 곳이다. 근고기를 추가할 수 있지만, 지갑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니 김치찌개를 시켜서 배를 채웠다. 해가 지지 않았을 때는 여행 중이라도 가급적 소주를 한 병만 마셨는데, 칠돈가에서는 두 병을 마셨다. 그만큼 맛있다.

DSC02846.JPG 칠돈가 흑돼지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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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국수몽

서귀포시 중문동 2007-4


중문관광단지가 아닌 중문동 사거리 쪽에 있는 작은 식당이다. 고기국수를 비롯한 각종 국수류와 수육을 판다. 관광단지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골목길에 있다 보니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아침 일찍 한라산을 올랐다가 파김치가 된 채로 중문에 도착해 아무 데나 눈에 보이는 대로 들어간 식당이었다. 결과적으로는 행복한 선택이었다.


수육의 양이 많지는 않은데 파채를 밑에 깔아서 나온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다. 맛도 좋다. 고기국수도 가격 대비 나쁘지 않았다. 역시 양이 많지는 않은데 가격이 저렴하니 불만을 가질 게 없었다. 국물도 과하지 않고 편하게 먹기 좋은 맛이었다. 김치가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다. 물론 이 날은 한라산을 다녀와서 아주 배가 고픈데다 몸이 녹초였기 때문에 음식이 유난히 맛있었을 수 있다. 시원한 맥주까지 함께 들이켰으니 얼마나 맛있었을까.

5주년기념제주도여행_7607.jpg 국수몽 고기국수
5주년기념제주도여행_7863.jpg 국수몽 수육

7. 하르방밀면 모슬포점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3858-6


하르방밀면은 밀면과 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제주시에 몇 곳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모슬포에 있는 하르방밀면을 들렀다. 보말칼국수와 밀면, 수육을 먹었다. 밀면은 아무래도 근처에 있는 산방식당과 비교가 된다. 밀면만 놓고 보면 산방식당이 한 수 위다. 대신 하르방밀면에는 메뉴의 다양성이 있다. 보말칼국수는 날씨가 쌀쌀하거나 비가 올 때 제격이다. 따뜻하게 속을 데우기 좋다. 수육도 안주로 나쁘지 않다. 모슬포에서 가볍게 식사 한 끼 하기에 좋은 식당이다.

DSC02541.JPG 하르방밀면 보말칼국수

8. 동문시장 준호식당

제주시 일도1동 1102-43


제주여행의 마지막 식당은 동문시장 골목 안에 있는 준호식당이었다. 동문시장에 유명한 식당이 몇 군데 있는데, 이번에 간 곳은 허름한 순댓국집인 준호식당이었다. 주인 할머니가 가게 밖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길래 식사되는지 물어보고 바로 들어갔다. 손님은 우리 테이블뿐이었다. 금세 순대국밥이 나왔는데 노지 한라산 소주에 먹는 국밥 한 그릇은 꿀맛이었다. 유명 식당도 아니고 화려한 음식도 아니지만, 여행의 막바지에 시장에서 먹는 국밥 한 그릇은 언제나 맛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한라산 소주는 노지 걸로 마시는 게 제 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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