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번째 리뷰_아이, 로봇
알파고는 역사가 됐다. 사람들은 이미 머리 속에서 알파고를 지운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우리는 역사의 페이지가 한 장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후대 사람들은 알파고의 등장을 사피엔스 혹은 지구 문명사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사건으로 기록할 것이다.
알파고는 분명 많은 사람을 당혹시켰다. 천재 바둑기사인 이세돌의 능수능란한 대처에 고전하기도 했지만, 이제 인공지능의 창의성이 인간보다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창의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앞으로 인공지능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달할 테고, 인간은 퇴보하지 않으면 다행인 상태로 지낼 테니, 어떤 식으로 창의성을 정의하든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당황한 것이다.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미래에 당황한 것이다.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 또는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사람들은 미처 답을 내리지 못했다. 우왕좌왕. 이세돌이 알파고에 패배한 직후 언론과 대중의 반응이 딱 그랬다.
세상에 천재들은 많다. 이세돌이 바둑에 천재였다면,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소설의 천재였다. 전설이 된 그의 소설집 <아이, 로봇>을 읽었다. 아시모프는, 1920년 옛 소련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이 천재 소설가는 100여 년 뒤 알파고 같은 존재를 맞닥뜨린 인간들이 겪을 혼란을 이미 예상한 듯하다. 소설집의 마지막 소설 제목은 '피할 수 있는 갈등'이다. 세계조정자인 바이어리와 U.S.로보틱스의 로봇심리학자인 수잔 캘빈 박사는 세계 경제를 조절하는 슈퍼컴퓨터의 오류 가능성과 그 해결책을 논의한다. 바이어리는 슈퍼컴퓨터를 따르지 않아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처벌하려고 하고, 수잔 캘빈 박사는 그마저도 슈퍼컴퓨터가 다 계산해 넣을 것이라며 가만히 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맞선다. (1950년에 발간된 소설에 실린) 그들의 대화는 마치 알파고 쇼크를 겪은 현대인들의 대화 같으면서, 다음 세대의 알파고를 대면할 미래인들의 대화 같기도 하다.
"인류의 궁극적인 선을 달성하는 데 뭐가 필요한지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죠? 지금까지 생겨난 인간의 기술 문명은 그 문명이 없었을 때보다 훨씬 불행하고 비참한 상황을 만들어 냈어요. 우리 인간에게는 문화 수준도 떨어지고 사람도 훨씬 적은 농경 문화나 유목 문화가 훨씬 좋을 수도 있어요. 인간의 무식한 편견은 익숙한 것만 좋아해서 변화에 저항하겠지요. 그러니까 아예 말해 주지 않는 쪽이 더 좋을 거예요."
"그렇다면 박사님 말씀은 인류가 주도권을 잃게 될 거라는 '인간을 위한 사회'의 주장이 맞다는 뜻입니까?"
"사실 인류는 주도권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사회 현상과 경제 현상, 변덕스런 날씨와 전쟁의 운에 따라 늘 좌지우지되었지요."
아시모프의 통찰은 그가 살았던 시대를 떠올려보면 놀랍기만 하다. 인간에게 유목 문화가 훨씬 좋았을 수도 있다는 수잔 캘빈 박사의 말은 바로 지금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사피엔스>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사피엔스도 결국은 인류(사피엔스) 스스로 자신들을 뛰어넘는 어떤 존재를 만들어내면서 사피엔스의 역사가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생물학적인 진보일지 로봇공학적인 진보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좋은 로봇은 없을 것이다. 대신 입력된 명령어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로봇은 있을 것이다. 아시모프가 창안한 로봇공학의 3원칙은 실제 로봇공학에 접목되고 있다.
로봇공학의 3원칙은 사실 인간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3원칙과 다르지 않다. 인간 역시 다른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다른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한 사회구성원들이 합의한 법과 제도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이 원칙을 다 온전히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시모프는 로봇만큼은 그러리라고 확신한다.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 편에 나오는 수잔 캘빈 박사와 퀸의 대화에 아시모프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사실을 말씀드리면, 퀸 선생. 선생이 우리에게 이 문제를 제기한 직후에 바이어리 씨의 경력을 조사해 봤어요. 배심원에게 마감 연설을 할 때 사형을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더군요. 그리고 사형제 폐지를 위해 연설하고, 범죄자의 신경생리학에 관련된 조사 연구 기관에 상당한 돈을 기부한다는 사실도 알아냈어요. 범죄자를 형벌로 누르기보다 치료하는 쪽이 훨씬 좋다고 믿고 있는 게 확실해요. 정말 의미심장한 사실이죠."
퀸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요? 로봇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의미심장한 사실이겠지요."
"그럴 수도 있어요.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겠죠. 그런 행동은 그가 로봇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주 명예롭고 고귀한 인간이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선생이 알아야 할 건 로봇하고 아주 훌륭한 인간은 잘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알파고는 시작일 것이다. 큰 변화의 시작. 한 명 한 명 작디작은 인간이 그 변화 앞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다시 읽는 것은 어떨까.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로봇들은, 우리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낙관적인 희망을 갖게 되니까. 달리 할 일이 없다면 절망보다는 희망이 낫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