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덕 없는 아우슈비츠 '콜리마'의 기록

59번재 리뷰_콜리마 이야기

by 이기자

콜리마는 러시아 북동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으로 동시베리아해와 북극해, 남으로 오호츠크 해와 접하고 있다. 콜리마 강에서 그 지명이 유래했다. 1926년 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땅이었다. 북극권에 속하는 이 지역은 연중 9개월이 겨울이다. 대부분이 침엽수 밀림 지역으로 겨울에는 영하 70도까지 기온이 떨어진다. 그렇다. 연중 9개월 동안 영하 70도의 혹한이 이어지는 지역이다. 20세기 초에 콜리마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콜리마의 어두운 역사가 시작됐다. 소비에트는 경제발전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콜리마 지역의 금광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노동력은 소비에트의 이단자, 반역자들로 채워졌다. 소비에트 장군인 드미트리 볼코고노프는 콜리마에 투옥됐거나 여기서 살해된 자를 2250만명으로 추정했다. <콜리마 이야기>의 저자인 샬라모프는 콜리마를 '화덕 없는 아우슈비츠'라고 묘사했다.

<콜리마 이야기>는 실제로 콜리마 수용소에서 17년을 보낸 구소련의 작가 바를람 샬라모프가 1954년부터 1973년까지 써낸 일련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다. 샬라모프는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과 더불어 수용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렇지만 샬라모프의 소설은 앞선 두 명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샬라모프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그의 소설은 19세기나 20세기 러시아 휴머니스트들의 목소리와는 결이 다르다. 그는 1962년에 솔제니친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 편지에서 샬라모프는 선언했다. "수용소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누구에게나 부정적인 학교입니다. 사람은 그가 관리든 수인이든 수용소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았다 하면 아무리 무섭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나는 남은 모든 삶은 바로 이 진실에 바치겠다고 오래전에 결심했습니다."


샬라모프의 글을 읽으면서 콜리마 수용소를 상상해 봤다. 머리 속에 아무리 떠올려도 그 이미지가 뚜렷하지 않다. 샬라모프의 묘사는 치밀하다. 수용소 생활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샬라모프는 놓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도 콜리마 수용소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뚜렷하지 않다. 작가나 역자의 역량과는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콜리마는, 이 북국의 지역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다. 나로서는 기껏해야 헬싱키의 바닷바람을 한 시간 정도 맞은 것이 가장 추웠던 북국의 기억이었다. 영하 40도의 날씨에 따뜻해졌다고 말하는 콜리마 수인들의 생활을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꿋꿋이 읽어 나간 것은 샬라모프가 묘사한 콜리마 수용소에 삶에 대한 어떤 진실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들. 우정을 가장한 허위 섞인 웃음들, 조건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앵무새들. 수용소는 인간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일 것이다.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당연히 인간의 진실된 모습을 담고 있다. 샬라모프는 차분하게 묘사한다. 어떤 면에서 그의 글은 웃음기가 다분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숨이 막히는 어떤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누군가는 첫 단편인 '설원을 걸으며'를 읽다가 그런 경험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마지막 단편인 '티푸스 검역'을 읽고 나서야 그런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진실된 모습에 대해서, 또는 문학에 대해서,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문장들


추위는 온몸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이 민중의 표현은 결코 은유가 아니었다.

25p 두 목수


두가예프는 젊은데도 우정은 불행과 고난으로 검증될 수 있다는 속담의 허위를 다 알았다. 우정이 우정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내부에 인간적인 감정이 다 고갈되고 오직 불신과 증오와 허위만 남는 마지막 한계 상황에까지 여러 조건이나 생활이 아직 이르기 전에 우정의 기반이 튼튼히 다져져야 한다. 두가예프는 수인의 세 계율, 북국의 속담을 잘 기억했다. '믿지 마라, 두려워 하마, 구걸하지 마라.'

34p 단독 작업


모든 인간의 감정-사랑, 우정, 선망, 박애, 자비, 명예욕, 정직은 오랜 굶주림 동안 몸에서 빠져 달아나는 살과 함께 우리를 떠나 버렸다. 아직 우리의 뼈 위에 남아 있는, 아직 우리에게 먹고 움직이고 숨 쉬고 통나무 톱질까지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리고 삽으로 외바퀴 손수레에 돌과 모래를 퍼 담아 금광에서 끝없는 나무 발판을 따라, 좁은 나무 길을 따라 세광기 쪽으로 손수레를 운반까지 할 수 있게 해주는 미미한 근육층에, 그 근육층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가장 오랜 인간의 감정인 증오뿐이었다.

61p 휴대 식량


우리는 죽음이 삶보다 결코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았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위대한 냉담이 우리를 지배했다. 우리는 의지로 내일이라도 이 삶을 끝낼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또 이따금 그렇게 하려고 결심했지만, 그때마다 삶을 구성하고 있는 어떤 사소한 일로 그러질 못했다. 오늘은 '매점' -보너스로 빵 1킬로그램이 더 지급될 것이다. 이런 날에 자살하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우리는 최악의 삶이라 해도 그것이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의 교대로 이루어지며 실패가 성공보다 많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62p 휴대 식량


우리는 모두 다만 우연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75p 휴대 식량


인간이 바보가 아니라면 어떤 희망으로도 살아갈 수 없다. 때문에 그토록 많은 자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위본능, 삶에 대한 집착, 의식마저 종속되는 바로 그 육체적 집착으로 인간은 구원받는다. 인간은 돌, 나무, 새, 개가 살듯 그렇게 산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보다 강하게 생명에 집착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 인내력이 강하다.

140p 뱀 부리는 사람


사람이 사는 것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랍니다. 삶의 본능이 어느 동물이나 보호하듯 사람을 보호해 줘요. 게다가 어느 나무나 어느 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겁니다.

무엇에 대항할 힘의 여분을 한 군데 집중시켜 두었다가 뒤에서 공격해 오는 걸 조심하세요. 익숙지 못한 새로운 싸움을 벌일 힘이 부족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자살은 이중의 영향, 적어도 두 가지 이유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197p 세라핌


여기서는 누구나 자신의 최후의 것, 다시 말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삶을 도와주고, 집요하고 끈질기게 우리에게서 앗아 가는 삶에 매달리도록 도와준다. 내 마지막 구원은 시였다. 다른 모든 것은 오래전에 망각되고 버려지고 기억에서 지워졌는데도 좋아하는 다른 사람의 시는 놀라울 정도로 기억이 또렷했다. 시는 피로에도, 혹한에도, 굶주림에도, 끝없는 모욕에도 아직 굴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었다.

204p 휴일


수용소 생활의 1분 1초가 독이 되지 않는 시간이 없다.

거기에 인간이 알아서는 안 될, 보아서는 안 될 일이 너무 많다. 만약 보았다면 죽는 편이 낫다.

수인은 거기서 노동에 대한 혐오를 배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도덕의 벽이 어디론가 옆으로 밀려났다.

비열한 짓을 하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거짓말하고도 살 수 있다.

약속은 할 수 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사람에게 저마다의 슬픔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자신의 고통을 과대평가한다. 타인의 슬픔에 대한 동정을 잊어버린다. 그냥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253p 적십자


시멜료프 작업반은 급식이 나쁘고 적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 속담을 잘 기억했다. "수용소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적은 배급 식량이 아니라 많은 배급 식량이다."

257p 법률가들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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