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햇살과 꽃이 만나고 바람과 연둣빛 새싹이 함께 손을 맞잡는다.
창밖 가득 화려한 듯, 수수하고, 한껏 꾸민 듯 수줍고, 온 세상 홀로 주인공인 듯 도도하다가도 어느새 스르르 배경으로 스며드는 우아하고 따뜻하고 수려한 봄의 색깔들이 펼쳐진다.
미니멀 라이프가 불필요한 것을 최대한 배제함으로 좀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 사람,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라면 지금 나에게 이 넘치는 아름다움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상의 우선순위이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차오르고 하루가 다르게 그 빛깔이 더 뚜렷하게 발하는데
어찌! 나만 밋밋하고 민숭민숭하게 이 다채로운 순간들을 지나갈 수 있겠는가...
내 출근룩에도 색깔이 더해진다.
오늘은 연분홍빛 조끼를 걸치고 나갔다. 4월의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벚꽃이 어깨 위로 떨어져도 어색하지 않도록 드레스코드를 은근히 맞춰본다.
복직하고 당장 학교에 들고 갈 가방이 마땅찮을 때 친정엄마의 옷장에서 오래된 갈색 가죽백을 꺼내 들었다.
가죽의 질도 좋고 특히 칸칸이 분리가 잘 되어서 기능적인 면이 마음에 들어 흔쾌히 사용을 하긴 했는데
어두운 갈색빛과 질리지 않는 클래식한 멋이라기보다는 좀 오래되어 무거운 느낌이 더해진 디자인, 무엇보다 가죽에 금장 장식까지 더해져서 어깨를 누르는 무게감에 시간이 지날수록 "들고 싶다" 보다는 " 다른 가방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더해지던 차에 다시 뒤져본 엄마의 옷장에서 비닐소재의 작은 흰색 토트백을 발견했다.
가벼운 무게감과 소재에 비해 탄탄하게 자리 잡은 모양새도 좋았지만 내 마음에 쏙 와닿은 건 바로 쨍하게 밝은 흰색과 실버소재의 지퍼 손잡이. 봄햇살의 깨끗한 밝음과 한층 더 잘 어우러지는 색감에 쏙 내 팔에 걸쳐진 가방으로 아마도 여름까지 나지 않을까.
내 책상 위에도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듯 봄 색이 내려앉았다.
커피 한잔을 마실 때도 티백으로 우려내는 심플한 차 한잔을 마실 때도 나는 찻잔과 잔 받침대를 챙긴다.
봄꽃을 닮은 듯한 찻잔세트의 소소한 아름다움에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들었던 물건이라 차를 마시는 즐거움 못지않게 찻잔을 들고 내려놓는 일련의 동작과 그 시간 자체를 즐기게 만들어 준다.
늘 사용해 온 스테인리스 머그컵을 사용하면 보온이 잘 되어 훨씬 긴 시간 따뜻하게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훨씬 빠르게 식어버리는 도기 찻잔을 이용하면서 대신 봄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손으로 귀로 누린다.
뜨거운 차가 도기 찻잔에서 빠르게 식어가듯
봄도 어느샌가 여름에게로 자리를 비껴줄 것이다.
지나고 변하는 것이기에 마음을 들이고 찬찬히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자칫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시간이 원래 여기 있는 것 같았는데, 머무는 것 같았는데
금세 지나가는 것이지 않겠나.
그래서 지금, 자세히 보고 천천히 느끼고
감사히 누려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봄이다.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