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4인용 식탁, 5인도 거뜬할 3인용 소파까지 집에서 차례로 내보내고 나니 집은 둘러보기에도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고 미니멀리즘의 상징과도 같은 빈 벽을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했다.
틈틈이 곳곳에 자리 잡은 잔 짐도 부지런히 비우는 중이었다. 필요할 것 같았으나 이사 후 1년 여가 넘도록 손 한번 가지 않았던 주방도구와 옷가지들은 정리하기도 쉬웠다. 다만 큰 박스에 주방도구를 넣어 기증을 하거나 큰 쓰레기봉투에 옷과 이불을 넣어 쓰레기장에 내어놓는 일련의 과정들은 늘 수고롭고 피곤을 동반했지만 그때마다 넓어지는 여백의 공간이 품은 여유로움과 단정함은 나만 아는 격려요, 응원이 되어주었다.
비우기를 위해 무작정 비우기. 사실 이것은 원래 미니멀라이프가 지닌 의도와 방향과는 맞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잘 설명해 주었듯이 미니멀리즘이란 불필요할 것을 줄이고 없애므로 정말 가치 있고 필요한 것(시간)으로 삶을 알차게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비우기가 핵심이 아니라 무엇을 남겨서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결국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기에 비우는 행위를 하기 위해 미니멀 라이프라는 삶의 방식을 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시 첫 단추를 끼워야 바른 자리에 두 번째 단추도 끼워 넣을 수 있듯이 일의 최종결과를 바라보며 순서를 이왕이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밟아나가고 통과하는 것도 참 의미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우기는 나에게 맞는 순서였고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남기고 채우느냐라는 고민보다는 한동안 열심히 비우기에 몰입했다.
안 입는 옷, 어제 입어보니 불편한 옷, 받았으나 구석에 고이 보관만 한 옷, 있으면 일주일에 한 번쯤 입기는 하겠으나 없어도 충분히 다른 옷으로 대체가능한 옷 등을 쓰레기봉투에 넣기도 하고 기증도 하고 옷 수거함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상당 부분 정리를 했더니 옷장에도 바람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가 입은 옷에 신경 쓰지 않고 오늘 나의 출근룩을 내 옆동료는 기억하지 못한다 는 사실은 나에게도 진리였고 그 진리는 나를 자유롭게 했다.
생전에 친정아버지는 그때 당시 결혼 전 내가 아주 단순한 디자인의 흰색셔츠 한벌을 준명품 브랜드에서 몇십만 원의 가격을 주고 사 왔을 때, 어이없어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그 돈 다음에 내한테 주면 내가 더 좋은 거 여러 벌 사주마"
그때 나는 열심히 설명해 드렸다.
"이런 기본 디자인의 옷일수록 재질과 광택이 중요하고 그래서 비싼 브랜드에서 고가로 구입을 해야 오래 입는다!"
그렇게 오래 입자고 거듭 다짐하며 샀던 흰색 셔츠는 몇 년 옷장에 넣어뒀더니 목둘레와 소매 부분에 누런 때가 배어 있고 아이 둘을 낳고 키가 더 커지지도 않았을 나에게 어찌나 딱 붙고 짧아서 어울리지 않던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다시 돌아본 나의 싱글 시절 패션은 나의 리즈시절이 이렇게 지나갔구나... 하는 아쉬움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그때 입었던 비싸고 디자인 좋은 옷들을 이제 와서 못 입게 되어 아쉽거나 몸매관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다.
나는 그 옷들을 정리하며 알았다. 물론 그 나이, 그 당시에 나에게는 좋았고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하지만 대부분의 옷들은 나 자신이 타인의 시선을 언제나 의식하며 거기서 인정받고 만족을 느끼기 위해 구매한 옷들이 대부분이었음을.
딱 붙는 펜슬스커트, 밥 한 끼 먹고 나면 숨을 반만 쉬어야 될 것 같은 스키니 진, 다림질은 기본이요, 세탁소의 손길이 없이는 입을 수 없었던 까다로운 재질들의 재킷과 블라우스들. 옷에 나를 맞추기 위해 옷과 함께 갖춰야앴던 기능성 액세서리들.
옷에 나를 맞추고 타인의 기대에 나를 맞추며 샀던 수많은 옷, 옷, 옷.
그 옷들을 정리하며 나는 나를 옥죄었던 시선과 판단과 자격지심도 같이 정리했다.
나를 포장하고 꾸미고 나서야만 사회생활이 가능하다고 여기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
꾸민 만큼, 포장을 잘 한만큼 인정받는 다 여겼기에 조금이라도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작든 크든 켜켜이 쌓여 나를 주눅 들게 만든 왜곡된 시간들을 옷과 함께 버렸다.
그렇게 옷장이 비워지고 나니, 순서를 제대로 지키고 나니 두 번째 단추가 제대로 맞춰 들어갔다.
바로 무엇을 남기고 채울 것인가?라는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워진 옷장에는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 그 남은 것이 지금의 내가 사회생활을 대하는 태도의 한 면일 것이다.
지금 내 옷장은 거의 다 비워지고 출근용 옷을 포함해 평소 늘 입는 4계절 옷이 1/5 정도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개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출근용으로 정장바지 4벌 / 조끼 2개 / 티셔츠 및 셔츠 10벌 내외 정도로 돌려 입고 있다. 추워지면 더 껴입고 더우면 덜 입는 방식이기에 바지의 경우 계절구분이 없다. 가방도 다 비워내고 지금은 출근용 백팩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도시락 넣고 오고 가는 길에 자주 들르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넣고 가끔 들러서 장을 보면 장본 물건까지 넣어도 모양변화 없고 세탁도 늘 가능한 만능 가방이어서 아주 만족한다. 장신구는 결혼반지 외에는 없다. 시계를 사랑했는데 여름에 이마저 땀이 배어 나와 귀찮다 싶을 즈음에 시계는 본인의 퇴장시간을 알고 멎어버렸다.
신발은 걸어서 출근하는 나에게 최적화된 운동화 2켤레로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지금의 나는 일단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더 정확하게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내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들었는지 별 관심이 없고 기억도 잘 못한다.
이전의 내가 너무 과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눈치를 봤던 것이다.
내가 꾸밀수록 더 사람들이 봐주길 바랐던 인정욕구도 잠잠해졌다.
이제는 내가 편하니 좋구나... 하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인정해 주는 게 가능해졌다.
다른 여러 말을 제하고 분명하건 이제 많이 편해졌다.
나를 관리 안 하고 방치하는 식의 나태함이나 무기력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알뜰살뜰히 나 자신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되도록 돌보고 묶인 것을 풀어주니 여유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 자리에 정작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처음 질문이 서서히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