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가 나가야 했던 이유

by 빛나는 지금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첫 이사 선물로 받은 것이 소파였다. 그만큼 소파는 그릇, 숟가락처럼 반드시 있어야 할 집안 물건 중 당연 상위에 있었고 처음에 언니가 사진으로 소파를 보여주며 사이즈를 선택하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때 나는 모름지기 "소파는 커야지" 하고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사이즈로 가장 큰 것을 선택했다. 덕분에 소파는 거실 한쪽 벽을 거의 다 차지했고 다른 짐들이 곳곳을 채우기 전까지 약 며칠간은 소파가 뭔가 집의 중심을 잡아주는 듯 든든한 느낌이 들어 볼 때마다 만족했고 앉았을 때는 그 편안함에 더 흐뭇해졌다.


그리고 소파 옆으로, 맞은편으로 다른 가구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 먼저 맞은편으로 큰 책장 두 개가 마주 앉았다. 그리고 옆으로는 추운 겨울 내 건강을 담당해 줄 거라 자신하며 언니집에서 꾸역꾸역 이고 온 러닝머신, 실내 공기를 정화해 주리라 기대하며 들인 대형 화분 2개가 양 옆으로 자리했다.


곧이어 바닥에는 놀이매트 3장이 깔렸고 거실 전체가 알록달록해지면서 이후 소파는 아이들의 퐁퐁이 놀이터가 되어갔다. 첫째는 거실에서 뛰다가 곧이어 소파로 올라가 천장까지 뚫어버릴 듯 온 힘을 다해 신나게 뛰기 시작했고 형의 기세에 발맞춰 이제 돌이 지난 둘째도 열심히 그 짧고 통통한 아기 다리로 기어코 등산하듯 소파로 기어올라가 등판을 붙잡고 뛰는 형 옆에서 그 출렁거림을 즐기며 깍깍 거리며 웃어댔다. 아이들이 좀 잠잠해진 밤이 되면 소파는 그다음 역할을 이어갔으니 이름하여 빨랫대였다. 베란다에서 한가득 안고 나온 빨래를 소파 위에 우르르 다 쏟아놓고 개기도 하고 덜 마른빨래를 소파 여기저기에 널어둘 때면 목적은 달라졌지만 역시 소파는 커야 제맛이라는 처음 내 판단을 재차 확신하기도 했다.


그렇게 소파는 여로모로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쉼을 위한 가구로서도 은은한 핑크 베이지톤이 감도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인테리어의 역할도 모두 상실한 채 하루하루 한 번은 퐁퐁이가 되었다가 또 한 번은 빨랫대가 되었다가 하며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었다.


다용도로 활용가능한 가구는 유용하다. 그러나 원래 목적을 잃어버린 가구는 무의미해진다. 소파는 큰 덩치를 웅크린 채 그저 앉아있는 듯 답답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버리기를 진행하면서 일종의 촉이랄까, 어떤 분명한 감이 오는데 바로 이제 이 물건 혹은 가구를 버릴 때가 되었다고 느껴질 때이다. 그것은 그 물건의 의미가 없어지면서 물건을 볼 때마다 필요보다는 답답함이 몰려올 때였다.


소파를 사는데 들인 돈, 그간 원래 용도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모조모 유용하게 사용했던 점에 더해 거실에 당연히 소파는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집에 대한 기존의 뿌리 깊은 인테리어관(?)까지 합쳐져서 답답함은 분명했지만 버리기는 망설이고 있던 찰나, 둘째가 소파로 기어올라갔다가 굴러 떨어지고 앙앙 우는 과감한 행보가 이어지면서 결국 소파를 내보내기로 결론을 내렸다.


중고마켓을 통해 소파사진만 보고 우리 집을 방문한 아주머니는 여러 번 소파에 앉아도 보고 쓸어도 보시며 자세히 훑어보시더니 고양이가 긁어도 소파상태가 괜찮을지를 걱정하셨다. 이왕 내놓기로 마음먹고 나니 얼른 소파를 처리해야겠다는 급한 마음이 앞서서 소파를 가져가기로 결정만 하시면 만원도 더 깎아드릴 용의가 있었던 나였지만 고양이 앞에서는 드릴 대답이 좀 막막해졌다.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으면 이 소파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도 덩달아 그 아주머니 옆에서 연신 소파의 등판과 좌석을 쓰다듬으며 이번에는 고양이가 뛰어다니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고민하시다 결정을 못하시고 아주머니가 가신 이후에 불현듯 소파가 제 역할을 잘 해내면서 제대로 쓰임 받을 곳이 생각났다.


여러 사람들이 방문하고 앉아서 쉬고 담소를 나누는 곳. 테이블 위에 음료 등을 두고 나누며 함께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곳. 사방으로 뚫려있는 큰 창문을 통해 뒷산의 맑은 공기와 환한 햇살이 연신 쏟아져 들어오는 곳. 이 소파가 가장 사랑받고 원래 정체성대로 잘 쓰일 곳.


바로 탁구대가 놓여있는 교회 4층이었다. 평일에도 탁구운동을 즐기는 인근 주민들이 방문하여 자유롭게 탁구를 칠 수 있도록 교회에서 배려하여 마련한 곳이어서 늘 열린 공간이었고 탁구대 옆으로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한 곳이었다.


남편도 찬성! 드디어 봉고차에 소파가 실려서 나가던 날. 모듈소파라 등판까지 분리하여 차곡차곡 실어서 소파를 잘 떠나보내고 들어선 거실.


이사 후 처음으로 이사하기 전 보았던 빈 벽과 그 위에 아롱진 나무 그림자를 만났다.


그렇게 우리 집은 시원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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