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을 줄였다.
써놓고 보니 좀 이상하다. 집이 바지나 치마도 아니고 어떻게 줄이지?
그런데 실제로 집을 줄였다.
흔히 표현하듯 평수를 10평대 이상 줄여서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간 것이 아니라
현재 집을 더 작게 줄인 것이다.
우리 집은 전용면적 18평에 방 세 개, 안방 화장실 포함하여 2개 구조의 아파트이다.
그 집에서 방 하나와 화장실 하나를 없앴다.
화장실 청소를 말끔하게 하고 안에 물기까지 다 제거한 이후에 등뒤로 문을 닫으며 아이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 집은 화장실 한 개야."
물론 거실 화장실만 쓰는 아이들은 빙글거리며 '우리 엄마 또 집놀이 하네' 하는 표정으로 웃기만 했지만.
놀이터 쪽으로 나있는 방 청소를 말끔히 끝내고 마지막으로 벽에 달아놓은 작은 벽시계까지 내릴까 잠깐 고민하다가 보관이 애매할 것 같아 그대로 둔 채 문을 꼭 닫으며 아이들에게 또 한 번 더 말했다.
" 이제 이 방문은 벽이야. 그래서 들어갈 수가 없단다. 이제 우리 집에는 방이 2개야."
큰아들은 금세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우다다 뛰어들어가서는
"우아아!! 나는 벽을 뚫고 들어가는 티라노다!"
하고 텅 빈 방을 쿵쿵 뛰어다니기는 했지만
나올 때는 꼭 내가 한 것처럼 방문을 단단히 닫고 나와주었다.
그렇게 이제 우리 집은 방 두 개의 화장실 한 개의 집이 되었다.
평수는 잘 모르겠지만 꼭 그만큼 줄어들지 않았겠나.
고무줄처럼 집을 줄이는 것.
이 자유로움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미니멀리즘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나의 하루하루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었고 그렇게 찾은 답이 미니멀라이프였다.
모든 물건을 다이고 지고 온갖 다양한 정리법을 총동원해 보아도
우리 집은 정리 전과 후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아이 둘, 그것도 공룡을 사랑하는 아들 둘을 키우면서 이게 당연한 거라고
친정엄마는 널려있는 장난감 사이를 겅중겅중 징검다리 건너듯 가로질러 걸으시면서 늘 말씀하셨지만
나는 벽에 부딪힌 듯 늘답답했다.
그 답답함은 내 삶의 어느 한 부분도 뜻대로, 나의 힘으로 주도적으로 해나가고 있지 못하다는 무력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오직 그 이유만으로 버티듯 다니고 있는 직장.
우리 집, 내 살림이라고 하지만 정작 살림을 사는 안주인인 나는 제대로 손도 대어보지 못하는 하루하루.
정리한다고 냄비를 이 서랍에서 저 서랍으로 옮겨놓아도
퇴근하고 오면 늘 한 번씩 들르시는 친정엄마와 남편의 손에 의해 또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키를 맞추고 색깔별로 아이들 책을 꽂아둔들 책장풍경은 매일 저녁 다시 뒤죽박죽 섞인 채로 책 뒤에서 먹다 남긴 과자봉지를 꺼내며 마무리가 되곤 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원한 삶이 아니다.라고 하는 내 안의 깊은 외침.
내가 정성스럽게 가꾸어 가야 할 일상도, 살림도 다 타인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도, 나를 묶어둔 채 내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타인의 손길도
무작정 집어던져버릴 수는 없는 노릇.
제일 만만하게 버릴 수 있는 것이 물건이었나 보다.
나는 정리법을 버리고
그 정리법을 가지고 놀듯 까불던
물건도 버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