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자리

by 빛나는 지금

한 장 한 장 그림 화보를 감상하듯 책 속의 사진들을 감상했다.


다른 사람 집 구경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그것도 깔끔하게 정리되고 여백 가득 햇살이 들어찬 정갈한 풍경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쉼이 되어주었다.


책에서 눈을 떼면 상대적으로 우리 집의 너저분함이 더 부각되어 보인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책 속의 집들은 더 빛나보였고 덕분에 더욱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도 틈틈이 빌려온 살림살이 책들을 읽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책을 통해 남의 집 부엌세간들을 살폈고 서랍장에 잘 개어져 정리된 옷가지들에 벙글거리며 즐거워했다. 깨끗함과 정돈됨이 주는 시각적 청량감은 어지러웠던 나의 머릿속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듯했다.


그들의 살림살이를 닮고 싶었다. 책 속에서 소개한 대로 하나하나 정리법을 적용해 보았다. 그릇장에 그릇들을 세로로 세워도 보고 가로로 눕혀도 보았다. 커트러리도 종류별로 나누어 칸칸이 다시 넣어주었다. 이불장의 이불을 와르르 다 꺼낸 다음 ( 일단 다 꺼내야 된다고 쓰여있었다) 두께별로 나누고 삼단, 혹은 오단으로 차곡차곡 잘 개어 층층이 쌓아보았다. 아이들 책도 키를 맞추고 색깔을 통일하여 가지런히 책장에 다시 꽂았다. 버리려던 종이가방과 복사용지 상자들은 훌륭한 수납함이 되어주었다. 책 속에는 수납의 아이디어들이 참으로 다양했다. 집 어딘가에 있던 각종 박스들을 이용하여 옷도 종류별로 나누어 다시 넣고 신발장의 신발들도 종이박스를 오려서 이 층단을 쌓아 정리하였다. 군데군데 지저분하게 나와 있었던 전선줄도 책 속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머리끈으로 묶거나 뒤에 양면테이프를 붙여서 안 보이게 구석진 곳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청소. 일하는 김에 청소까지 하라고 추천하여 그때부터 샤워하고 나오면서 화장실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치면서 싱크대 상단과 가스레인지 주변을 닦았다. 물건은 가급적 식탁 위나 책장 위에 두지 않으려 종종걸음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치우고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책 속의 집과는 달랐지만 나름 전과 비교하여 많이 깔끔해진 우리 집의 모습에 감탄했다. 발에 차이고 밟히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식탁의 맨얼굴을 마주 대하는 시간도 더 길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책에서 느꼈던 청량한 바람이 내 얼굴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 상쾌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속가능성이었다. 하루를 마치고 몸을 끌듯이 들어와 위에서 열거한 모든 일을 하기란 힘들었다. 주말에 잠깐 빛을 발했던 청소와 각종 정리법들은 월요일 오후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힘을 잃어버렸다.


물건의 주소를 찾아주라고 하여 종이박스를 동원해서 이미 선반으로 나뉘어 져있는 수납장을 다시 구분하여 약품이며 학용품이며 물건의 자리를 찾아주었건만 너무 구분을 많이 해둔 탓인지 나조차도 물건의 주소를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모든 물건을 다 안고 정리와 청소를 병행하며 단정하고 정돈된 집을 꾸리기엔 나의 에너지와 시간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다시 벽을 만난 느낌이었다. 책을 보고 따라 했는데

이번에는 책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 이 방법 말고 다른 건 없니? 따라 하는 것 말고 너의 방법을 좀 고민해봐."


물건의 자리를 찾아주느라 바빠서 정작 내 살림의 자리는 여전히 표류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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