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좋아한다. 고로 책이 가득한 도서관도 좋아한다. 도서관에 들어서서 책이 가득한 서고와 그 사이를 산책하듯 거니는 것, 책을 찾고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는 것. 책의 내용보다는 때로는 책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이런 시간이 더 설레고 좋을 때도 있다.
마치 연인을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초조함을 순간순간 즐기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마침내 모퉁이를 돌아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연인을 맞이하는 기쁨을 만끽하듯 나는 도서관에서 나를 기다려온 듯한 그 한 권의 책을 향해 다가가는 그 모든 시간을 좋아한다.
도서관은 늘 열려있다. 책은 말없이 나의 고민과 봇물 터진 듯 나도 감당이 안 되는 감정의 홍수를 묵묵히 받아낸다. 때로 사실 책이 사람보다 더 듬직하고 편안하다고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묻기 전에 먼저 책에게 물을 때가 많다. 책은 안전했고 믿음직했으며 강요하거나 조종하지 않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천천히 해답을 찾아가도 되는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어떻게 직장을 그만둘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도서관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자기 계발 관련 책이나 재테크 관련 책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다른 수단이 필요했고 그리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빨리 나 자신을 키워서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고 진작부터 나 자신을 몰아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천히 서가를 돌면서 "00 재테크"와 같은 제목들을 만나기는 했으나 그런 책에는 그다지 눈길도 손길도 가 닿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며 보내다 보니
'아... 이건 하기 싫은데...'라는 감정에 민감해진다.
필요나 유익은 분명한데 그런 책들은 읽기가 싫었다. 하루종일 의무에 쌓여 해야 할 일만 하고 온 나에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나 해야 하거나 하면 좋은 일을 더 던져주고 싶지 않았다.
일단 현실적인 고민은 뒤로 젖혀두고 다시 질문했다.
' 지금 읽고 싶은 책은 뭐지?'
질문이 달라지면 답도 당연히 달라진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서가를 돌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눈길을 끄는 책들이 있었다.
그 책들은 이미 표지도 상큼하고 예쁜 살림 관련 책들이었다.
제목보다는 표지에 끌려 몇 권을 꺼내어 후루룩 넘기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책 속의 집들은 단정하고 깨끗하고 말끔했다. 잘 자고 일어나 차가운 물에 가볍게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아침햇살과 선선한 공기가 가득한 산책로를 가볍게 걷듯 맑은 기운들이 가득했다.
왜일까? 나도 이 책 속의 저자들도 살림을 하는 주부요, 집을 가꾸는 비슷한 일들을 하는데 그들과 나의 집은 왜 이렇게 다른 모습일까?
아이의 유무, 직장의 유무, 책에 보여주기 위해 꾸며진 인테리어 등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그저 내 눈에는 그 집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는 맑음. 햇빛, 바람이 보였고 그 모든 좋은 것들을 우리집안으로 들이고 싶다는 바람이 찰랑찰랑 차올랐다.
무엇보다 사진을 보며 편안해졌다. 흔히 말하듯 대리만족이었던 것 같다. 현실은 발에 밟히고 채이는 장남감과 옷더미에 살고 있지만 어쩌면 이런 삶도 가능하다는 희망이 불러온 만족감.
그리고 그 사진아래에 글들도 좋았다. 그릇, 접시, 옷장, 책장, 설거지, 청소, 식탁, 현관, 세탁, 창문, 이불.
이런 생활과 살림과 관련된 단어들이 참 좋았다.
예쁜 시 한편을 읽듯 그 단어들을 입안에서 천천히 발음하며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집과 방이 보였다.
그곳에서 나는 편안했고 즐거웠다.
도서관에서 살림관련 책을 몇권 빌려서 나오는 길에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일"이 아니라 "살림"을 살고 싶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