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내보내면서 처음에는 나의 정신상태가 조금 염려스러운 적이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요모조모 고민하고 뜯어보고 들여서 쓸고 닦으며 같이 지내온 물건들을 내다 버리면
최소한 아쉬움이 좀 느껴져야 하는 게 아닌가?
뭐든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어제까지 내 머리맡에 있던 가구가 오늘은 없는데 어떻게 그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버릴 때마다 시원한 쾌감이 몰려오는데 점점 버리는 횟수가 늘고 버리는 정도도 과감해지면서 그 쾌감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같이 강화되는 것을 경험하며 이렇게 버리면서 좋아해도 되나 싶은 적이 종종 있었다.
나중에는 빨리 버리고 싶어서 종종걸음을 칠 정도였다.
누워서도 내일은 뭘 버려볼까? 하고 질문하며 잠을 청했다.
버리고자 하는 물건이 확실해지면 이후 사야 할 쓰레기봉투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그 안에 테트리스처럼 물건을 쌓아 올릴 생각을 하며 퇴근길을 재촉했던 적도 많다.
여하튼 버리기가 가져오는 에너지는 하루의 피곤을 물리고 새로운 추진력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동력이었다.
일단 버리는 과정들을 통과하며 내가 얻은 몇 가지 결론은 이러했다.
1. 먼저 버리고 나야 정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 고로 물건을 그대로 이고 지고 깔끔한 집으로 매일 환골탈태하기란 기존의 정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저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이동시키는 수준으로는 매일 반복된 노동만이 있을 뿐이다.
2. 물건 버리기는 정신적 치유를 동반한다. 그 치유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치유 이후 발전이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탐구해보려 한다.
3. 일단 과감하게 큰 물건(가구) 위주로 버려서 자신의 버리기 담을 처음부터 확 키워야 그다음 버리기 및 처분과정이 순조로우며 또한 가속도가 붙어서 이후의 정돈 및 유지의 선순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4. 과감하게 버려서 시각적으로 넓어진 집과 쾌적한 공간을 다 같이 한번 경험하고 나면 의외로 가족들의 지지도 순조롭게 받을 수 있다.
5. 버리기를 결심하고 솟아오르는 내 안의 추진 에너지와 버린 이후에 만나는 상쾌함. 그런데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버리는 과정은 지난한 버리기의 노동이었는데 이 힘듦을 겪으며 "내가 이 물건(가구)을 또 사면!!"
이라는 성찰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니 분명한 가치와 필요가 있는 노동임을 잊지 않는다면 버리기는 늘 할만한 씨름이 된다.
6. 버리기는 천천히 꾸준히 진행하기보다는 한 번에, 크게, 단박에, 해야 효과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버리기 차체는 힘든 노동이 당연히 수반된다. 그 노동을 보상해 줄 결과물. 정돈되고 쾌적한 집과 이어지는 단정한 일상. 그리고 내, 외적으로 나도 모르게 일어나고 벌어지는 변화들. 그것이 따라줘야 그 노동을 지속할 수 있지 않겠는가. 크게, 단박에 버리기를 시도하면 그 결과물도 아주 분명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게 동기부여가 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누가 뭐래도 미니멀 라이프 전으로 돌아가기란 어려워진다.
7. 그리고 버리기로 시작했으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 버린 자리에는 다른 채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쓰지 않는 가구처럼 무겁거나 더 이상 보지 않으나 버리기도 힘들었던 옛 일기장이나 앨범들처럼 마음의 짐이 되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뿐사뿐 나를 다시 걷게 하는 자유를 향한 여정의 시작이었고 그 길을 잘 걷도록 돕는 싱그러운 격려와 반짝이는 아이디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위의 결론을 처음부터 알아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큰 가구부터 버리기를 잘했던 건 가구들이 한 점씩 없어질 때마다 나는 월반하는 학생처럼 빠르게 미니멀라이프를 배워가기 시작했다.
침대를 시작으로 오래된 통 원목 4인용 식탁이 나가던 날은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부드럽던 날 오후였다.
마침 퇴근하고 오니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모두 나가 놀고 있었고
중고마켓에 올린 사진을 보고 두 부부가 용달트럭을 몰고 아파트 입구 앞으로 찾아왔다.
무거운 통원목 식탁을 세 사람이서 현관 중문 사이로 통과시켜 보겠노라고 낑낑대고 있는데
이 식탁이 워낙 컸던 지라 중문에서 딱 걸려서 나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같이 오신 아주머니가 "에효... 못 들고 가겠다.." 하는데 내 마음에 일던 큰 실망. 그때 깨달았다. 내가 간절히 버리기를 원한다는 것을.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는 했는지 아저씨는 공구 몇 개를 이용해서 중문을 뚝딱하고 분리시키고 식탁을 밖으로 기어이 빼내셨는데 그때 혼자 속으로 환호성을 불렀다.
아! 통원목식탁과 의자가 실려 떠나는 용달트럭을 바라보며 일순간 그 식탁 위에서 나눈 우리 가족의 담소와 웃음, 이유식을 잘 받아먹던 둘째의 모습등이 스치기라도 할 법한데.
봄바람처럼 상쾌한 마음에 어찌할 바 모르고 배시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남편은 그 비싼 통원목 식탁세트를 고작 2만 원에 넘겼나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줬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는 오랜만에 내가 무언갈 추진하고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함이 더 컸다.
그리고 그다음 내 눈에 잡힌 아이는 바로 엄청난 크기의 소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