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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추는 균형의 지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by 빛나는 지금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면서 어쩌면 자연스럽게도 친환경, 채식주의, 제로웨이스트 등의 삶의 다양한 양식들과도 만나게 되었다.


미니멀라이프와 같지는 않지만 어느 한 일면 맞닿아 있고 공유하는 가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것은 줄이고 필요한 것들로 나 자신과 삶의 본질을 세우고 채워가는 것이 내가 이해한 미니멀 라이프이기에 물건을 줄이고 무분별한 소비주의에 맞서게 되는 친환경 흐름에 기울게 되고 전 지구가 하나의 생태 공동체라는 문장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보면 육류는 줄이고 채식위주의 식단에 조금씩 더 마음이 기울게도 된다. 우리가 사고 버리는 물건이 쓰레기가 되어 결국 나의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지구에게는 더 큰 부담을 주는 결과로 이어지는 광대한 사이클을 마주하게 되면 물건 소비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때 그러한 회의감에 근거를 제시해 주는 제로웨이스트의 끝자락에 살며시 걸터앉아 보기도 한다.


내 주변에 발에 차이고 손에 걸리적거리는 작은 물건을 비우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내 책장에는 이런 더 큰 담론들을 담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물론 아주 깊이 있게 그 세계에 몰입하고 그 삶의 양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단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흥미롭고 다채로워서 때때로 내 눈과 귀를 기울여 그 세계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시간을 내어준다.


어느 정도, 일정 부분 나의 삶의 기준을 재조정하게 만들고 그 근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질문들을 던지는 이러한 주제들에 나는 앞으로도 청객으로 찾아가고 또 그들을 맞이할 것이다.


다만, 여러 다양한 주제들을 파악하고 흥미가 느껴지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 내 일상에 적용도 해보면서 천천히 내린 결론은 그 무엇도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양식을 그것만으로 규정하게 만드는 '극단'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결국 삶은 이러해야 한다는 정답으로 채워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열린 태도와 균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니멀 라이프와 제로웨이스트가 만나 물건소비 자체를 극도록 절제하던 때가 있다.


필요한 것도 구매하지 않았고 꼭 필요한 것은 일단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을 살피든지 중고마켓을 둘러보고 구했다. 그렇게 들인 물건들은 각각 소재도 디자인도 다 달랐다. 모아놓고 보니 참 맛없는 비빔밥 같았고 봐도 봐도 모르겠는 어지러운 추상화 같기도 한 풍경이 펼쳐진다. 내가 바라던 공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조금씩 불만은 쌓여가고 조금씩 체념하며 나는 내 일상의 한 행복을 매일 약간씩 갉아먹는 기분이 든다.


품위있고 아름다운 것들, 품질이 좋고 쓸수록 더 고와지는 것들. 사람의 일상과 함께 하며 그 사람의 삶의 질을 전보다 한층 고급스럽게 높여주는 것들. 그 물건을 보고 쓸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를 주는 것들.

나와 나의 삶의 크고 작은 서사들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함께 나이 먹어가는 것들.


다리가 후덜 거릴 정도로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공간의 분위기를 재정의 내리는 아름답고 우아한 오브제들.


그 물건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을 꿈꾼다. 그 공간을 직접 지휘하고 창조해 내고 알뜰히 살피는 나 자신은 그중에서 단연코 빛나고 우아한 존재이다. 우아한 존재가 머무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공간.


예전에 나 같으면 이런 욕망 앞에서 끊임없이 나를 질책하고 몰아세웠을 말들이 있다. ' 보이는 게 다가 아니지.' ' 내 경제 수준을 벗어나면 허영일뿐이다.' ' 돈을 더 가치 있게 써야지' ' 기본적인 것을 갖추었으면 만족하고 감사해라'


근데 그런 말들이 내 안에서 잠잠하다.


내 안에 다른 이야기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더 정직한 말들. 더 솔직한 욕구들. 무시하고 때때로 억눌렀더니 이제는 안에서부터 더 커지는 이 목소리들.


요즘 나는 자꾸 더 삐딱해진다. 붙들고 살았던 많은 것들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너 진짜 맞는 거야?'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 일상의 균형이 많이 깨졌다는 것을. 이 질문들을 무시하지 않고 솔직한 답을 찾아가다 보면, 아니 정답은 없지만 이 질문들이 나의 정직한 욕구를 보여주고 있음을 제대로 인지한다면 기울어진 추는 조금씩 다시 균형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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