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저축하는 여자 ③ | 시간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by 빛나는 지금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힌 시간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디서 시간이 새는지, 흩어져버리는지, 왜 그 질감은 하루가 지날때쯤 뿌듯한 일상이었다는 보람으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지 알고 싶었다.


변명이 아니라 나는 정말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출근해서 일, 집에 와서 일, 쉼과 노동의 경계가 이렇게 흐린 워킹맘이라는 자리가 참 버거워 매일 끓기 직전의 냄비처럼 '쉬익'하고 짜증과 긴장의 김을 뿜어내며 산다.

출근과 동시에 진하디 진한 커피를 내려 그렇게 마시고도 오후가 되면 끌리는 피곤을 벗삼아 믹스커피를 타서 또 마신다. 커피에 심장이 두근거리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 카페인마저 하루의 피곤과 곤두선 긴장은 다 덮어버렸는지 누우면 잠이 쏟아진다. 때때로 잠은 따뜻한 이불과 부드러운 덮개의 촉감을 즐기면서 천천히 누리는 달콤한 휴식이라기 보다 무언가에 등 떠밀려 허겁지겁 빠져드는 급한 바람처럼 나를 보챈다.


이런 나를 게을러서 시간이 없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신경이 잔뜩 곤두서서 나를 비난하는 자는 그게 설령 나의 자아라 할지라도 가만두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또 급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며 반복해서 시간표를 바라보았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집중해야 할 시간과 흘려보내야 할 시간의 경계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집중과 이완의 경계를 조금씩 인식해가며

시간을 ‘모으는 실험’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대단한 계획은 아니었다.
하루 중 가장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흐릿해지는 오후 3시,
그리고 가장 무의미하게 흘러가던 밤 9시를 조금만 다르게 써보기로 했다.


3시엔 수업이 없을 경우 업무창을 일단 닫는다.

그리고 따뜻한 차 한잔과 햇살이 길게 스며드는 오후의 창가와 마주한다.

아무 생각 하지 않기. 5분. 그렇게 일단 마음을 비운다.

그리고 짧은 산책을 했다.
교무실을 벗어나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눈앞의 공기가 달라지자 생각의 결이 바뀌었다.
10분 후 자리로 돌아왔을 때, 마음은 어느정도 차분해지고 몸은 눌러붙던 피곤을 다소 덜어내고 가벼워졌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일은 이전보다 속도가 빠르게 처리되었다.


밤 9시.
예의 스마트폰을 늘 찾던 시간이다.
식탁위에 앉아 노트를 펼쳐들었다.

주방불을 하나씩 끄고 작은 공간을 비추는 식탁 등을 켰다.

노트의 하얀 여백위에 하루를 닫으며 남는 생각 하나를 문장으로 적었다.


“시간이 새는 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패턴 때문이다.”


내가 흘려보낸 건 ‘시간’이 아니라 ‘집중의 방향’이었다.


밤 9시. 아이들은 자기들의 놀이를 하고 남편은 남편서재방에 들어가고 아주 잠깐 나에게 주어지는 나의 시간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10분정도 노트에 짧은 문장을 쓴다.
가버린 시간은 실체가 없었지만 그 시간에 남긴 문장은 분명했고 확실했다.


그 단단한 바닥, 든든한 언덕 같은 실체가 필요했다. 그래야 닫히지 않는 문이 있어 아무리 난로를 피워도 열이 새어나가 따뜻해지지 않는 오래된 집처럼 에너지를 풀가동해서 일을 해도 헛헛했던 나의 하루가 이 땅에 어떤 형태로든 그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10분이었지만, 그 10분은 내 안에 균형이 맞춰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모은 하루 20분이
다음 날의 컨디션을 조금씩 개선했다.
마치 흩어졌던 하루가 천천히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시간도 나 아닌 타인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영역 밖의 일들을 대할때 나는 늘 싸우고 악다구니를 썼다.


내 뜻대로 하기 위해서. 그러나 싸우고 지고 싸우고 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존재하도록 두는 것 밖에는 길이 없었다.


다만 그 안에서 혹은 그 곁에서 나의 리듬과 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며

나 또한 타인도 시간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로 다져지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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