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인 압박이 평안을 흔들 때
돌아보면, 내가 이렇게까지 돈 생각을 많이 한 적이 있었나 싶다.
해외살이 1년 후, 다시 월세와 카드값, 대출이자를 마주했다.
외벌이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일터에서도 버티고, 가정에서도 버티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4인가족 귀국하는데만 450여만 원이 들었다.
고스란히 카드로 계산하고 다음 달부터 갚아나갔지만
카드값 빼고 남는 돈으로 생활하려니 다시 카드이용은 이어졌다.
해외에서도 정착비는 어마어마하게 들었지만 한국에서 다시 정착하는 것도 돈과 돈의 연속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 월세집을 구하면서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초초했던 시간들.
월 10%에 가까운 카드 대출 이자에 심장이 두근거려
어떻게든 빨리 갚아보려 이리저리 헤매던 시간들.
보증금, 월세, 관리비, 카드값, 대출이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이 숫자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래서 밤에 잠을 자도 머릿속은 멈추지 않았다.
외벌이 가정이라는 건,
한 사람이 버는 수입에 모든 게 매달려 있다는 뜻이다.
지출은 예측할 수 없는데, 수입은 일정하니까
무언가가 생길 때마다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A4 종이를 꺼내고 주르륵 써 내려갔다. 고정비에 생활비에 대출이자에.
어디서 줄여볼까 거듭 들여다봐도 줄일 수 있는 건 늘 없어 보였다.
그래도 매달 써 내려갔다. 몇만 원 이라도 비는 구석이 있으면 막겠다는 마음으로.
한 달 예산표를 짜면서,
‘이번 달은 이걸 조금 줄여야겠다’
‘다음 달엔 이걸 미뤄야겠다’
그런 생각이 이어진다. 늘 결핍과 절제로 이어가는것도 큰 스트레스다. 적당한 수위로 이어져야 할 것들이 매일의 일상이 되면 나는 여지없이 초라함을 느낀다.
경제적인 압박은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불안이 커지면, 말투가 짧아지고 여유가 줄면, 웃음이 줄어든다.
내가 그걸 가장 먼저 느낀 건 결국 가족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였다.
남편과는 돈에 관한 대화가 점점 늘어났다. 즐거운 대화가 아니니 남편도 나도 얼굴이 굳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경제적으로 벌이가 없는 남편에 대한 실망의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남편의 어려움을 모르지 않지만 기분은 나의 이성과는 별개로 움직였다.
대출과 돈문제가 가져오는 메타인지의 부조화.
스트레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람은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짜증이 난다.
왜 짜증이 나는지 설명하기 어려울때도 기분은 우울하고 무기력하다.
아이는 늘 같은 톤으로 말을 거는데 내 대답이 점점 짧아지고 건조해졌다.
“지금 말하지 말고.”
아이 앞에서도 자꾸 돈돈 하니 아이가 하루는 묻는다.
"엄마 우리 집 가난해?"
에효...
사람들은 말한다.
“돈이 다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돈이 부족하면
마음을 지키는 게 정말 어렵다.
그리고 돈은 사실 삶의 만족도를 확실히 올려준다.
이 점을 소홀히 여겼거나 여타의 위선으로 부정했던 과거를 후회한다.
돈 걱정이 계속되면
판단이 조급해지고, 감정이 쉽게 흔들린다.
그리고 그 여파는 가장 가까운 관계로 흘러간다.
아이와의 대화, 가족의 분위기, 하루의 표정까지.
요즘 나는 ‘평안’이란 단어를 자주 생각한다.
경제적인 안정이 모든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건 아닐지 모르지만
경제적 불안이 마음의 평안을 가장 먼저 무너뜨린다는 건
살면서 분명히 배운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제 문제는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균형을 시험하는 일이다.
나는 그 균형을 잃지 않으려 오늘도 계산하고, 또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