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복도는 소리로 가득하다.
걷는 것과 뛰는 것이 혼연일체가 된 듯한 십대들의 에너지가 운동장 다음으로 가장 자유롭게 펼쳐지는 곳이 학교 복도다. 아이들은 점심 급식시간이 되면 두세 계단을 날듯이 뛰어 내려간다. 조용할 수가 없다.
뛰고 소리치고 분주하게 오고 가고. 그 소리에 질세라 학교를 울리는 종소리와 교내 방송.
소리와 풀썩이는 먼지가 뒤엉킨 학교 복도는 그 자체로 학교가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 모든 흔적이 한바탕 지나간 자리. 오후 복도는 다른 풍경을 입는다.
사람의 기운이 가라앉으면 오전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조용하던 것들이 천천히 실체를 드러낸다.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복도는 넓어진다.
낮에는 분주함으로 가득 찼던 그 공간이,
늦은 오후 무렵엔 빛과 천천히 가라앉는 먼지만이 남는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벽면에 길게 눕고,
저녁의 서늘함과 남은 햇살의 따뜻함이 서로의 공간을 조금씩 조욜해가듯
그림자는 순간순간 모습이 달라진다.
나는 그 복도를 천천히 걷는다.
업무로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도, 수업으로 교실로 이동하는 것도 아닌
복도를 산책하기 위해서다.
나는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던 시절을 초등학생으로 폴짝거리며 보냈다.
교실을 나서면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던 길.
바로 ‘골마루’라 불리던 복도가 있었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골마루의 풍경은 비슷하다.
아이들은 장난을 치고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지도하시고
나는 틈틈이 뛰었다가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하며 골마루를 끊임없이 오고 갔다.
가끔 늦게 학교를 마치고 혼자 골마루를 걸어 나와 신발을 신고 하교를 할 때면 걸어 나온 골마루를 가만히 돌아보곤 했다.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혼자 남겨진 순간엔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때 느꼈던 정적은 두려움보다도 ‘깊은 숨’ 같았다.
세상의 소음이 닿지 않는, 오로지 나의 발소리만 또렷하게 울리는 곳.
조용히 하라는 선생님의 호랑이 같은 얼굴도 없는데 괜스레 그 골마루의 정적이 좋아서 나는 조용히 신발을 신고 문을 닫고 걸어 나오곤 했다.
지금의 나는 그 ‘골마루’를 다시 걷는 기분으로,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복도를 걷는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반복이지만, 그 단순함 속에 놀라운 질서가 있다.
발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이 생각을 정리한다.
교무실에 앉아 있을 땐 뒤엉켰던 생각들이,
걷는 동안에는 저절로 한 줄씩 맞춰진다.
복도의 바닥은 매끈해서 걸음이 끊기지 않는다.
매번 같은 길을 걷지만, 마음은 매번 다르게 흐른다.
바깥의 하늘색이 바뀌고, 창문 사이로 비치는 나무 그림자가 미묘하게 움직인다.
그 변화의 미세함이 좋다.
이 길 위에서는 ‘시간이 간다’가 아니라
‘시간이 흐른다’라는 감각이 살아난다.
걷기에는 목적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자유롭다.
생각을 멈추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무언가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저 떠오르게 두는 일 —
그저 자연스럽게 온 것들은 또 때가 되니
자연스럽게 사라지더라. 굳이 비우려 하지 않아도 억지로 끼어들었던 잡다한 생각의 조각들은
비워진다.
저녁 무렵 복도를 걸을 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 더 부드러워 보일 때가 있다.
아마 그건, 생각이 잠시 멈추고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얼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