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나는 순간

by 빛나는 지금

가끔 슬픈 일이 전혀 없는데도 울고 싶을때가 있다. 혼자라면 그냥 앉아서 좀 훌쩍거리며, 더 안전한 공간이라면 소리라도 내면서 울고 싶을때가 있다.


사실 의아해했다. 왜 울고 싶지? 슬픈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기분이 그래서 그냥 울기에는 이제 너무 나이가 많은데... 나이가 들면 쉽게 울기가 힘들다. 울어도 되는 안전한 공간과 관계는 더욱 희박해진다.

그래도 내 몸은 울고 싶어할 때가 있다.


내 몸과 마음이 '눈물'로 표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질문: 왜 슬프지도 않는데 눈물이 날까?


답: 그건 감정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오래 버텨온 몸과 마음이
스스로 균형을 찾기 위해 보내는 "회복 신호" 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를 정서적 과부하라고 부른다.
내가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내 신경계가 우는 것이다.


우리는 성인이 된 뒤에도 스트레스가 한계치를 넘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입술이 떨리고, 숨이 가빠지고,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일종의 자동적 방출이다.
억눌린 감정과 긴장이 조용히 밖으로 나오는 방식.


즉, 내 몸과 마음이 살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균형 조율과정이자 지친 줄도 모르고 그냥 내달리기만 하는 나를 지켜주는

내면의 안전장치 같은 것이다.


하루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졌을 때,
내 몸이 먼저 “이제 잠시 쉬자”고 말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표현 방식이 훨씬 다양해진다. 그러다 보니, 가장 단순한 방식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나곤 한다.

바로 몸의 소리.
우는 것.
눈물.


표현 수단이 거의 없었던 아기 때,
우리에게 눈물은 유일한 소통 창구였고 세상에 말할 수 있는 거의 전부였다.

자라면서 우리는 이런 단순하고 원초적인 표현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조금 더 성숙해 보이는 방식,
조금 더 복잡하고 그럴듯한 방식을 선택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솔직한 자기표현인 눈물은

내가 스스로를 가장 보호해야 할 순간에
여전히 정확하고 어김없이 나타난다.


눈물은
reset — 다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어른의 감정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이자

가장 변하지 않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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