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체중계에 올려본다면?
집은 몸무게 숫자에 기뻐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은 배터리가 다 되어서 작동을 멈췄지만 임신 막달에 열심히 사용했던 체중계 위에 집을 올려보면 어떨까? 집을 재는 체중계가 있어서 숫자를 확인한다면 집은 어떤 생각과 기분이 들까?
다이어트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가뿐해져 가는 몸무게가 성취감과 행복을 가져다주듯 집도 가벼워질수록 행복하지 않을까?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내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나에게 미니멀라이프의 시작은 바로 이 행복감이 큰 동기였다.
첫째가 트램펄린 뛰듯 침대 위에서 뛰다가 떨어지고 울기를 반복한 후에 드디어 침대를 내놓기로 결심했다. 결심 후 바라본 침대는 무슨 묵직한 암석 덩어리 마냥 크고 둔해 보였다. 신혼 가구로 원목 프레임에 매트리스까지 꽤 큰돈을 주고 구입한 침대였으나 실제로 사용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좋은 상태였지만 어른이 오르기에도 상당한 높이의 퀸 사이즈 침대여서 이미 방은 침대방이라고 명명해야 할 만큼 그 존재감이 엄청났다.
침대를 피해서 큰 배를 안고 베란다를 오고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때만 해도 침대를 내놓을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이런 기발한 해결책이라니!
그리하여 드디어 중고마켓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이후 이 중고마켓은 내 미니멀 라이프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침대는 워낙 부피가 커서 용달트럭도 필요하고 프레임을 분해하고 매트리스를 들고 갈 인력까지 요하는 고된 과정이 필요했다. 처음 사진을 찍어 처음 구입가의 1/10 분 정도의 가격으로 침대를 올릴 때만 해도 이 고된 작업을 감수하며 그것도 중고침대를 누가 사갈까? 라는 걱정 및 궁금증이 들었다.
그때의 나에게 물건구매는 오로지 가게에서 이제 갓 공장에서 생산된 새 것을 사는 것이었지,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새 주인을 만나 순환의 과정에 들어가는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고 그럴 때 물건의 수명은 늘고 나의 행복은 증가된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과연 누가 다른 사람이 사용한 중고물품을 사갈까? 내심 참 궁금했다.
그날 저녁 중고마트 앱을 통해 연락이 왔고 부모님 침대를 바꿔 드리고 싶다며 앳된 얼굴의 청년과 그 청년의 아버지가 집을 직접 방문하셨다.
남편이 그분들을 맞이하는 동안 나는 첫째와 옆방에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뚝딱뚝딱 소리가 나더니 현관문을 통해 분해된 침대를 이동시키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남편이 환한 미소로 방문을 열고 " 침대 팔렸어!" 하고 말했다. 남편도 이런 식의 거래가 나름 신나고 재미 었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뛰듯 침대방으로 건너가 보니 방은 이사오기 전 텅 빈 공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이사 오면서 새로 한 도배로 은은한 흰색 벽지가 차분하게 공간을 감싸주는 안온하고 밝은 느낌.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걸어도 걸리거나 부딪치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고 베란다도 막달에 다다른 임산부가 어떤 불편함 없이 왕래가 가능했다.
비어있는 공간이 주는 자유함. 콩콩 뛰면서 재미있게 놀던 침대라는 놀잇감이 하루 저녁에 없어졌지만 첫째는 아랑곳없이 빈 방을 놀이터처럼 뛰어다녔다.
아이는 아이답게 나는 나답게 물건이 떠나고 남은 빈 공간의 여유와 자유로움을 누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물건이 없어지고 집이 가벼워지고 그리고 내 마음도 한결 여유가 생기면서 행복해진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렇게 미니멀라이프는 "안녕!" 하며,
침대를 팔고 받은 돈을 들고 해맑게 웃던 남편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