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는 지금 Jul 24. 2024

밥 한끼. 오늘도 잘 사는 내 살림.

해외 나오니 밥준비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직장에 다닐때는 친정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2~3일에 한번씩 친정엄마표 반찬을 받아 먹었다. 자연스럽게 두 아이들은 할머니 손맛에 익숙해졌다. 당연히 따뜻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외할머니표 집밥으로 우리 네 가족은 늘 맛난 식탁을 감사하게 누릴 수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늘 마음의 갈등이 있었다.

감사했지만 그리고 늘 맛있게 밥 한그릇을 비워내는 나였지만 주방을 다른 누군가에게 내어준다는 건 결국 살림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이 많은 친정 엄마의 밥상을 마흔 넘어까지 거기다 이제는 나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거의 매일 같이 받는다는게 늘 마음 한켠 죄송했고 불편했다.


그래서 해외살이가 시작되고 나만의 레시피가 거의 없는 빈약한 요리 솜씨여도 주방에 나 혼자 당당히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다.


이제 냄비도 후라이팬도 도마도 내 손에서 제자리를 잡게된 것이다.


주방살림이 집살림이라는 걸 매일 실감했다.

그만큼 매끼 식사 준비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들고 온 미니밥솥은 딱 1.5끼 분량이라 매일 두번씩 솥을 씻고 새로 밥을 안친다. 국 하나에 반찬 하나라도 식탁에 올리려고 하면 즉석식품에 밑반찬도 만들어져 나오는 한국의 마트가 저절로 그려진다.


밥준비하고

하루 세번씩 설거지를 반복하다보면 종아리가 뻐근해진다.


학교에서 20여년을 근무하며 서있는 것만큼은 이력이 났다 싶었는데 주방일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그렇게 먹어본 맛, 누가 가르쳐 준 맛, 네OO에 물어보고 찾아낸 맛. 등등을 어떻게든 조합해서 한 끼 밥상을 식탁에 올리면  피곤과 잔잔한 편안함이 동시에 몰려온다.


"오늘도 밥 한그릇을 먹는다.

오늘도 하루를 잘 살고있다."


는 말 같아서

나 혼자 밥상을 앞에 두고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가족들을 바라본다.

맛을 검증 받는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


남편은 고맙게도 뭐든 크게 가리지 않고 잘먹는다.

그래서 제일 먼저 물어본다.

"맛있네!"

"조금만 더 먹어보고..."

주로 이 두가지 반응이 나오는데 이제는 대충 안다.

후자의 반응은 조금 맛이 떨어진다는 말을 완곡하게 돌려말할때 쓰는 표현이란걸.

여튼 남편은 대부분 잘 먹어주어 오히려 큰 부담이 없다.


아이들은 평가기준이 좀 높다.

"할머니 국수, 김밥, 비빔밥 먹고싶다"

"음. 엄마 내일 또 해줘!"

주로 이 두 반응이 나오는데 비율은 아직 전자가 좀 높다.


사람은 누구나 배우는 과정을 거치는 법.

그래서 나의 요리는 앞으로도 무궁한 희망이 있다.


더  좋은 소식은

사람은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이들도 매 세끼. 외할머니와는 다른 엄마의 손 맛에 자기도 모르게 적응 중이라는 것.


곧 나의 식탁은 최고의 식탁이 되리라

혼자 꿈꿔본다.


오늘은 버섯밥에 쌈채소. 그리고 참치김치찌개.

버섯향이 뭉근한 갓 지은 밥.

보글보글 찌개도 완성.


상추는 싸게 양많게 먹을 수 있는 고마운 채소.

된장 고추장 참기름 다진 풋고추 싹싹 섞어 양념장 만들기.



오늘도 맛있고 든든하게 하루를 마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살림. 여름 비빔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