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못 먹던 알쓰가 술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내가 처음 술을 마셨을 때는 수능 시험을 마치고 대학의 합격을 기다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사실 완벽한 성인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우리들은 수능이 끝나고 곧 대학생의 신분이 되는 스스로를 성인이라 생각했다. 친구들과 저녁으로 삼겹살집에 가면 으레 다들 소주를 곁들여 시키고 마셨다. 사실 그런 분위기에서도 나는 선뜻 나는 소주를 들이키지는 못했는데 그것은 내가 아직 대학생은 아니라는 것과 사실 친구들과 달리 나는 빠른 년생이라 대학생이 되어도 완전한 20살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엔 별다른 할 일이 없었던 우리는 성당 예술제 준비를 도와주기도 하고 그 핑계로 만나 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내가 원하던 대학에 기어코 불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나도 그 소주라는 것을 들이켜고 싶어졌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불판을 바라보며 그동안 공부했던 지난날의 허무를 느꼈을까. 처음 마시는 술을 그냥 무작정 두 세잔 들이켠 것 같다. 처음 맛보는 소주는 어쩜 그리도 맛이 없는지. 맛있게 느껴지던 삼겹살의 맛마저 앗아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때 소주의 맛은 매니큐어를 지우는 아세톤 맛이었달까. 두 세잔의 소주는 맛만 문제가 아니었다 이후에 찾아오는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은 술이 취하는 인간의 상태 변화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게 소주로 첫 음주를 한 이후에 난 대학 생활 내내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입학한 이후에 각종 개강 종강 파티에서도 엠티를 갔어도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콜라와 사이다만을 마셨다. 국어교육과는 여자가 많은 학과라 그런지 그런 나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던 터라 나는 논알코올의 대학시절을 보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술자리에서 모두가 흐트러지는 중에 꼿꼿한 내 정신으로 그들의 흐트러짐을 보는 것이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나는 그 이후에도 술자리를 잘 찾지 않았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술이 나에겐 맛도 없었지만 마셨을 때의 즐거움을 당시엔 하나도 몰랐던 것 같다. 술이 주는 흐트러짐과 자유로움이 나에겐 불안하기만 했달까. 술 먹지 않는 사람의 눈으로 술 마시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조마조마하고 위태로워 보였던 때가 있었기에 술이란 내겐 약간의 금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술을 즐긴다. 술을 다시 마시게 되던 날을 되짚어보니 아이 둘의 육아가 벅차게 느껴지던 밤이 있었다. 칭얼대던 둘째와 그런 둘째를 돌보는 나에게 계속 매달리던 첫째가 유난했던 어느 밤. 두 아이를 힘겹게 재우고 거실로 나와 문득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어 졌더랬다. 그렇게 마셨던 맥주는 어찌나 시원했던지 육아로 벅찼던 내 안의 갈증이 한순간에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청량감 있는 맥주의 시원함이 하루의 피로를 씻겨줬달까. 그날 이후 종종 아이들을 재우고 맥주를 마시는 일탈 아닌 일탈을 시작했고 점점 아이 재우고 마시는 맥주의 맛에 푹 빠져 하루 중 육퇴 후 맥주 한잔의 시간을 가장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은 저녁을 먹다가도, 주말의 경우에는 점심 식사 중에도 맥주도 마시고 와인도 마신다. 친구들을 만나도 함께 하는 식사와 어울리는 주류를 골라 함께 마신다. 술이 주는 자유로움과 흐트러짐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고 일주일 내내 꽉 맞는 사회적 슈트를 입고 일했던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가볍게 맥주 한 잔 주고받으며 일터의 스트레스를 나누기도 하고 일터에서 나누지 못한 진솔한 이야기도 주고받으니 사회적 관계가 개인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도 하니 술이 더더욱 좋아졌다.
오늘은 주말 저녁, 늦잠을 잤지만 주중이 피곤했는지 낮잠도 늘어지게 잤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 각자의 자리에서 나는 글을 쓰고 막내는 숙제를 하고 남편은 고기를 굽는 것 같은데, 고기 냄새가 전해지니 자연스레 술 한 잔이 또 하고 싶어진다. 학기말 피로가 쌓이고 갖은 학교 일에 심란하기도 했던 지난 주였다. 푹 자고 일어나 몸의 피로는 풀었지만, 아직 마음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나. 남편이 고기를 굽는 동안 얼마 남지 않은 보드카를 꺼내 술 마실 준비를 해야겠다. 마음껏 흐트러져도 되는 이 공간 안에서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나의 베프인 남편과 지난주 고생한 내 마음을 술과 함께 다독이고 싶다.
(@대문사진은 얼마전 만난 대학 동기들과 혜화동에서 와인을 마셨다. 대학 땐 한 잔도 안 마시던 나인데 저날 와인을 내가 가장 많이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