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잊지 말아야 할 말뚝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공장 하나에 불이 크게 나 많은 사상자가 생기는 불의의 사고가 있었다. 이런 화재 뉴스나 사고 뉴스는 어쩜 이리도 잊힐만하면 계속해서 일어나는 걸까. 하지만 사고 바로 다음 날에는 유명 가수의 컴백 공연이 있어 화재 뉴스는 금방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화재로 가족을 잃거나 동료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일 테지만 세상에서는 그저 종종 일어나던 화재 사고 뉴스였을 뿐일까.
소설 말뚝들은 '장'이라는 주인공이 트렁크에 갇혀 납치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납치되어 어떤 낯선 곳으로 끌려갔다 돌아온다. 잃은 것도 빼앗긴 것도 없건만 다소 우스꽝스럽고 미궁의 이 사건 이후 세상 곳곳에서 말뚝들이 나타난다. 말뚝들을 본 사람들은 대체로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게 되는데 어떤 한스러움이 담겨있는 말뚝들이기에 영문도 모르는 채 눈물이 흐르는지 사람들은 알 수 없다. 그러다 장이 말뚝들 중 첫 번째 말뚝과 과거 인연이 있었던 것이 밝혀지며, 그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 말뚝을 돌려보내기까지의 과정이 재치 있으면서, 현실 고증이 너무 사실적이라 아프기도 하다.
온갖 사회적 재난으로 목숨을 갑작스레 잃은 사람들. 그렇게 이름이 잊히고 사연이 잊히지만 사회적 재난은 계속된다. 과다한 업무량으로 피로에 지친 택배노동자, 그 노동자가 운전하던 차에 치인 어린 학생, 공장에서 유독물질에 중독되어 산업재해로 사라진 외국인 노등자 등등 한 번쯤은 뉴스로 접해봤지만 오래 관심두지 않았던 사연들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말뚝이 되어 우리 사회 곳곳에 박혀있다. 그들의 죽음은 쉽사리 잊혔다. 그런 말뚝들의 서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반짝이는 면 뒤에는 이런 말뚝들의 애달픈 사연이 있음을 우리는 여전히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 '장'역시 자신의 삶 이외에는 별 관심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납치를 당하게 되고, 또 첫 번째 말뚝이 자신에게 빚진 사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말뚝의 원래 자리를 찾아가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며 자신이 내어준 배려의 빚을 갚는 것으로 나아간다. 위기의 순간마다 장을 돕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데 아마도 말뚝의 사연을 슬퍼하고 되돌려 고치려고 하는 선한 마음들의 힘이 아니었을까.
"장은 이제까지 삶에 대해 너무 큰 거짓말을 해왔다는 걸 이쯤에서 인정하고 싶었다. 희망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기적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다는 명백한 느낌을 믿었다. 그들은 말뚝을 지킬 것이고 말뚝을 지키려는 장을 지킬 것이었다. 그 사실은 이후로도 내내 장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
결국 세상을 바꾸고 어둠을 빛으로 변화하게 하는 것은 어떤 누군가의 강한 힘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같은 마음이 모여서가 아닐까? 사람이 둘셋만 모여도 잘 나가는 주식과 부동산 얘기로 채워지는 자본주의 세계이지만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마음은 그런 자본의 힘은 아닐 것이다. 거대한 자본의 뒤에 하나의 도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테니, 그러한 자본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도 우리는 인간다움을 놓지 않아야겠다. 이 소설에는 단 돈 오십만 원의 빚을 평생 갚지 못했지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꾹꾹 눌러써 말뚝이 된 사람이 있다. 그 말뚝을 보며 자신이 잊고 살았던 시간과 사람들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서로에게 졌던 마음의 빚을 새하얀 빛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진심으로 타인을 향해 마음을 써야만 가능할 것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닐까.
"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
소설이 시작할 때의 주인공이 끝날 때 다른 사람으로 달라져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이야기의 사연을 통과한 주인공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 책을 읽은 나에게도 일어나길 바라서일까? 이야기 속의 '장'은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해결한 후 만신창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장'은 만신창이 상태에서 발작이 올 때면 말뚝을 빛냈던 하얀빛을 기억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며 나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장'을 보니 저절로 응원하고 싶어 졌다. 왜냐면 '장'은 이런 다짐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이 확신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그에게 빚졌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 빚으로 계속 살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망해버린다."
'장'은 아마 그 터널을 나온 뒤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겠지. 나는 사회적 참사를 바라볼 때 또는 어려움을 겪는 타인에게 어떤 마음을 보내고 있었나. 생각해 본다. '나'는 장처럼 그렇게 트렁크에 갇히지도, 말뚝을 집에 들이지도 못했지만 그러기에 '장'과 나를 그리고 우리를 응원해 본다. 그런 마음이 모여 세상이 망하지 않고 나아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