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Sep 27. 2023

다시 쓰는 일기

청첩장을 보고 떠오른 우리의 이야기


좋아하는 선생님의 청첩장을 받았다.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이라 일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었던 선생님이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다 헤어지게 되어 못내 서운했는데 기쁜 소식을 들고 나타난 그녀와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그녀를 아끼던 다른 동료선생님들과 같이 근처 찻집에서 우리 중에서 가장 호봉이 높은 부장님이 쏘신 샌드위치와 차를 곁들이며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았다. 청첩장을 열어보니 전통 한복을 입은 신랑 신부 그림이 있는 귀여운 청첩장이었는데 청첩장조차 주인을 따라 닮은 느낌이었다. 결혼 축하 인사와 더불어 자연스레 결혼 준비 이야기 신혼여행 및 웨딩 촬영 이야기로 즐거운 수다가 오고 갔다. 모두 결혼한 사람들이라 새 신부의 이야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조언을 더하기도 하며, 신혼여행 이야기가 나오니 함께 설레며 이야기를 더해갔다.


여자 넷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 생활 이야기, 명절 이야기로 이야기의 화제가 바뀌어가니, 아까의 화기애애함보다는 진중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게 어째 새신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결혼해서 좋은 건 별로 없나요?” 급기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에게 묻는 새 신부 선생님의 물음에 우리 모두는 한바탕 웃게 되었다.

“좋은 점도 많아. 음…”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던 차에, 한 부장님이 신혼 때 이야기를 꺼내셨다. 남편과 방학을 함께 보내며, 천 피스 퍼즐을 맞추기도 하고 같이 영화도 보고 즐거웠던 말랑말랑했던 그 신혼의 이야기. 듣다 보니 나에게도 그런 달콤한 시기가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즐거웠던 담소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나의 푸릇푸릇했던 신혼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던 나에게는 모든 가정 살림은 그저 소꿉놀이 같았다. 청소도 요리도 빨래도 그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마냥 즐거웠던 때였다. 늘 남편보다 먼저 퇴근하는 나였기에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려 동네 맛집을 다니기도 했고, 집 주변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다. 동네 공원을 산책하러 가며 본 노란 꽃을 보며 남편이 산수유라고 알려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산수유를 보면 그때의 시간이 떠올라 아련하다. 가끔은 운동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맥줏집에 들어가 소시지와 맥주를 들이켜기도 했었다. 남편과 도장 깨기 하듯 전국 각지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보너스를 받은 그런 날에는 함께 백화점에 가서 예쁜 옷을 한 벌씩 서로에게 사주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면 달콤하기 그지없던 시간인데, 그런데 사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푸릇푸릇한 신혼 시절 이후,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다투기도 하고 의견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와인 한두 잔에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단단해진 우리였다. 결혼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함께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이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은 결혼 생활에 가장 어울리는 속담일 것 같다.  남편은 이제 사랑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밉기도, 때로는 안쓰럽기도, 때로는 부럽기도, 때로는 안되었기도 하는 복합적인 감정의 선물세트처럼 자리하게 되었다. 나 역시 남편에게 그런 존재일 거 같다. 그러나 우리가 단단하게 쌓아 올린 우리의 시간 안에서 어떤 순간에도 남편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진정한 동반자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시간 동안 우리는 아이들을 낳아 함께 키우고, 우리도 함께 어른으로 성장했다. 살다가 마주하게 되는 때때로의 위기에는 결연한 의지를 함께 다지기도 했고, 세상이 내 편이 아닌 것만 같은 그런 때에도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되어 주며 함께 살아간 지 어느덧 벌써 14년이 되었다. 돌아보니 참 새삼스러운 시간이다.


앞으로의 시간은 어떻게 될까. 지난 14년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저축한 돈을 털어 집을 사기도 하고, 차를 바꾸기도 하는 등 안과 밖으로 변화무쌍한 시기였다. 다가오는 시간의 템포는 다소 느려지려나. 알 수가 없다. 지난 14년은 기대가 더 컸던 시간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이상하게도 걱정과 염려가 많아진다. 곧 두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면 그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부부는 중심을 잘 지키고 있을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신체의 특정 부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는데, 어느덧 비가 오기 전 온몸이 쑤시는 때가 되어버렸다. 점점 더하겠지 싶어 지니 다가올 시간이 더 걱정이다. 이러저러한 걱정과 염려가 앞서지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단단하게 시간을 빚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단단해지는 것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지난한 세월이 알려주었지만, 아름답고 달콤하기만 한 것은 위험한 것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돌아보니 나와 남편은 참 열심히, 꾸준히 노력하고 잘 산 것만 같아 서로에게 대견해진다. 둘째 아이와 축구 경기를 보러 나간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함께 수고한 시간을 같이 치하해야겠다. 아무래도 안주를 주문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내일부터 무려 6일이나 휴일이니 오늘은 시원한 맥주로 앞으로의 나날에 파이팅을 더해봐야겠다.



살아남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이 든 언니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하곤 한다. 하나의 고생을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어떤 언니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끝내주는 인생이었다고. 그 언니 말을 들으면 너무 용기가 나서 막 웃는다.

 나는 내가 고생 한복판에서도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오 끝내주는데?” 임종 직전에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정말 마지막 순간에, 남편과 서로를 보며 ‘정말 끝내주는 인생이었어’라고 말하게 되길! 함께 열심히 살자 남편!!





@표지사진은 어제 받은 따끈따끈한 청첩장


.

작가의 이전글 멈추지 못했던 공교육 멈춤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