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자기 결정을 읽고 나서

행복하고 존엄한 삶. 그 삶을 위해 나를 알아가기

by 주연

이번 대학원의 과제 중에 '미래에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인'에 대해 조사하여 제출하는 보고서가 있었다. 이미 직업인인 내가 미래에 되고 싶은 직업인이라... 여러 차례 고민 끝에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여성 작가 한 명을 주인공으로 선정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작가는 잘 나가던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목소리에 따라 여행하고 글을 쓰고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사람인데 잘 나가던 아마도 꽤 높은 급여도 받고 있었던 삶,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던 삶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여행을 하며 책을 읽고 읽자고 독려하는 누가 봐도 돈이 안 될 것 같은 일을 하는 삶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이런 사람은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그야말로 멋진 사람이었기에 보고서의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김민철 작가님과 함께하는 오독오독 북클럽의 마지막 도서는 페터 베이리의 [자기 결정]이라는 책이었다.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라는 부제가 적혀있는 이 책은 자기 결정하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보고서로 선정한 인물은 그야말로 자기 결정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고 내가 되고 싶은 미래의 삶도 자기 결정하는 삶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성인이고 성인이 되고 난 이후의 모든 선택은 스스로가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인데 자기 결정하는 삶을 동경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과 소망을 주관하여 말 그래도 삶의 작가요, 그의 주체가 되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사건을 단순히 맞닥뜨리거나 당하여 그 일로 인한 경험에 속수무책으로 압도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주체가 되는 대신에 단순히 경험이 펼쳐지는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을 가리킵니다. (@ 자기 결정)



그동안 내가 했던 선택들을 돌아본다.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들 가운데 내가 스스로 나의 목소리를 들어 선택했던 일, 즉 주체가 되어했던 선택과 타인과 사회의 기대에 맞게 모두의 평화를 고려해서 선택했던 선택들, 그러니까 그저 무대가 되었던 선택들이 스쳐 지나간다. 페터 비에리는 자기 인식과 이해를 통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를 테마로 삼아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삶의 주체가 되는 자기 결정의 삶이라고 말한다.


만약 내 인생에서 나를 테마로 삼고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했던 나의 자기 결정을 묻는다면 나는 '결혼'이라고 말할 것 같다. 나는 26세에 결혼했는데 결혼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그 당시에도 결혼하기엔 몹시 어린 나이였다. 결혼을 26살에 했지 결혼을 하겠다는 결정은 25살에 했던 것이니 어리긴 어렸다. 그때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좀 더 놀다가 결혼하라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의 말보다 이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내 마음의 소리로 결정했던 결혼의 결정을 들여다보니 이게 자기 결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장녀인데 한 살 차이의 동생은 허약한 편이어서 자주 아팠다. 엄마 아빠는 나와 동생을 모두 사랑했지만 동생에게 돌봄의 손길이 더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주 아픈 동생을 보며 어린 마음에도 나는 집에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지만 그런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은 크게 없었다. 그래도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를 안마해주기도 했고 집안을 치우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다 보니 그보다 더 자주 어질렀을 것이고 자주 내 할 일을 미루고 잊어버려 혼나기도 했다. 그러면 나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가뜩이나 힘든데 나는 엄마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더해졌다. 어린 나이에 나는 그것이 무거운 줄도 모른 채 그렇게 혼자만의 책임감을 무겁게 지니고 있었다. 그런 책임감의 일환으로 나는 힘든 내색을 잘 안 하는 아이였다. 최소한 나로 인해 엄마 아빠가 걱정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그런 어린 생각. 물론 그것도 잘 안 되었다. 중요한 결정을 엄마 아빠와 공유하지 않고 혼자만 끙끙대다 엄마 아빠를 더욱 걱정시킨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힘든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는 일이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었을 때나 참 힘들었다. 그것은 고스란히 내 성격으로 자리 잡아 '힘들어'라는 말보다 '괜찮아'라는 말이 더 편하고 자주 나오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러던 내가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고 학교에 발령을 받아 교사로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사실 나는 학교가 참 힘들었다. 애들도 수업도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교사가 해야 할 일은 수업만 있는 줄 알았는데 행정 업무의 홍수 안에서 날마다 허덕였다. 당시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던 직업을 얻은 이른바 꿈을 이룬 사람이었기에 힘든 내색을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학교 안에서 내 또래의 친구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나에 비해 너무나 잘 해내고 있었기에 뒤쳐진다는 느낌에 말하지 못했고 내 주변엔 여전히 임용을 위해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배부른 고민인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힘든 일이 생겨 마음이 무너지는 날들이 있었는데 그걸 털어놓을 곳이 없던 그때, 말하지 않아도 나의 힘듦을 알아주는 사람이 지금의 내 남편이었다. 남편은 너무나 세심한 사람인데 나의 약간의 표정 변화와 작은 한숨도 잘 듣는 사람이었다. 나의 소리와 표정에 귀 기울여주고 자세히 들여다봐주며 진심으로 걱정하고 기도해 주는 사랑을 받으니 나는 그런 남편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혼을 생각했고 우리는 결혼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26살에 결혼했다고 하면 나에게 가장 많이 돌아오는 질문이 '그래서 후회하지 않냐'는 것이다. 여러분 후회의 순간이 어떻게 없을 수가 있나요.결혼이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과의 결합이 아닌 여러 가지 의무와 책임이 더해지는 일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들이 무거워서 후회한 순간이 분명히 있다. 그런 후회의 감정이 나를 찾아올 때 나는 몹시도 불안해졌던 것 같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했던 그것. 후회할 것이라던 그 말들이 문득 생각나서이다. 이제 시작인가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나. 그러나 그런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다. 내가 선택한 이 결정이 틀리지 않았을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불안은 종종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스멀스멀 불안이 올라올 때엔 이를 떨치려 책을 읽었다. 소설도 읽고 에세이도 읽고 그냥 잡히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기 결정]에 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문학작품을 읽으면 사고의 측면에서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열립니다(중략) 뿐만 아니라 한 삶의 내적 관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 능력이 성장합니다 (중략)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는 것은 자기 결정을 추구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문하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 자기 결정)


나는 몰랐다. 그저 내 안의 불안을 몰아내기 위해서 읽었을 뿐이었는데 그런 과정조차도 모두 자기 결정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니. 그러고 보니 그렇다. 삶에서 자기 결정의 과정이 어떻게 선택의 순간뿐이겠나. 내가 선택한 그 순간이 옳음을 증명해 내는 것. 내 안의 목소리로 만들어낸 그 선택이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고 내 인생이었음을 책임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기 결정의 삶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한 선택을 오롯한 내 인생으로 살기 위해 읽었던 책들은 나를 자기 결정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던 것 아닐까?


결혼 이후의 출산, 육아, 사춘기인 아이들과의 관계 유지, 직장에서의 업무 능력 유지 등등을 위한 수많은 선택들을 오롯한 내 목소리로 했는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내가 한 선택이 결국 내 삶이 되는 것이기에 그 선택들을 오롯하게 책임지려 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선택의 순간마다 내가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느라 정작 중요한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써본다. 나의 마음의 소리들을. 이렇게 글로.


막스프리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중략) 자신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뜻입니다.

(@자기 결정)


그래서 쓴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인생인 것 같아서. 그리고 오롯하게 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서. 그렇게 내가 결정한 내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내고 싶다. 현재에 충실한 자기 결정의 삶. 그것이 미래의 내가 살아가고픈 나이다.

(@표지사진은 남편과 함께 본 연극 사의 찬미. 윤심덕과 김우진 자기결정에 충실한 두 인물을 보고 오니 더욱 글이 쓰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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