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을 읽고
'나는 지금,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가?' [자기 결정]을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이다.
이 책에서 작가 페터 비에리는,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그 물음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 '내 삶을 나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자유라고 말한다.
[제인 에어]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읽고 만난 책이라 자연스럽게 책 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제인, 로체스터, 버사. 세 인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기 결정'과 마주한다.
제인은 로체스터의 청혼을 받지만, 그의 아내인 버사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끝내 떠난다. 로체스터를 사랑하는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윤리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 곁을 떠나는 선택을 한다. 로체스터가 제인에게 비싼 드레스를 사주려 할 때도 제인은 단호히 거절한다. 그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며, 자신의 사랑이 '의존'이나 '보상'의 관계로 오해받는 걸 거부한다. 그 장면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처럼 마음에 오래 남는다.
"타인의 시선과의 대결이 자기 결정적인 성질을 띠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인은 그걸 해낸 사람이다.
그에 비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나오는 버사(앙투아네트)는 너무 안타까웠다. 자기가 누구인지 깊이 고민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채 여러 상황에 끌려다니다가, 끝내 말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는 '광기'라는 이미지로만 남게 된 인물이라서.
"자기 결정이 한계에 부딪히거나 실패하는 것은 자아상과 현실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할 때입니다." 버사의 비극은 바로 이 '자기 이미지'와 '타인의 시선으로 덧입혀진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녀는 바로 이 간극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깊게 무너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로체스터는 좀 복잡하다. 겉으로 보기엔 선택의 기회도 많고, 사랑에도 적극적이지만, 사실은 자기기만에 갇힌 인물이다. 그는 버사의 존재를 숨긴 채 제인을 붙잡으려 하고, 그 선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버사와의 결혼은 돈에 자신이 팔려간 것이라고, 스스로 끝없이 자기 합리화를 한다.
"자기기만은 이익이 동기가 된, 자기 자신에 대한 착각입니다."라는 비에리의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곧장 로체스터를 떠올렸다. 그는 결국 진실을 외면하고 타인의 자유를 억누른 대가로 많은 것을 잃는다.
이 세 사람의 삶을 보면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덮고 나서 내 삶을 돌아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때로 제인 같았고, 때로는 버사 같았으며, 때로는 로체스터 같기도 했다. 나는 제인처럼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외로움을 감수한 적도 있지만, 로체스터처럼 스스로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합리화를 일삼기도 했다. 또, 버사처럼 침묵하며 현실에 끌려다니는 시간을 오래 보내기도 했다. 내 안에 있는 여러 인물들과 조용히 마주해 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청소년기까지 변함없이 이어진 부모님의 권유로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됐다. 안정적이고 주변의 인정을 받는 일이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뭘 할 때 즐거운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를 묻는 대신, '이게 최고야'라는 확신에 가까운 권유 앞에서 나는 그저 착한 아이처럼 따랐다.
사실 예전부터 주변에서 '넌 참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남에게 맞춰주는 게 배려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선택을 남에게, 혹은 미래의 나에게 계속 미뤄온 덕분에 얻은 칭찬이었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조차 쉽게 고르지 못하고 대세에 따르는 것이 습관이 된 내가 있었다. 그건 착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삶에 대해 뚜렷한 기준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걸,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고의 들러리가 되지 말자. 다른 사람이 먼저 살아보고 말한 걸 그냥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이 말해주는 논리를 따라 살아야 해."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는 어쩌면 그런 나를 되찾는 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은 일(경험)과 내가 그리는 나(자아상) 사이의 간극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 그게 바로 자기 결정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아직 많이 서툴지만, 그리고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이제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 "나는 지금,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고 싶다. 예전에는 경제적 여건이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중요한 역할이었고 그걸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모든 현실을 감안하면서도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쪽을 택하고 싶다. '자기 결정'이란 결국 현실을 무시하고 고결한 선택만 하는게 아니라,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끝까지 놓지 않는 자세니까. [자기 결정]이라는 책과 제인, 버사, 로체스터. 이 인물들과 함께 걸은 시간은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사는 연습'을 시작해 보자는 작은 다짐으로 남았다.
덧붙여서 표지 설명 - 책을 덮고 나서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 결혼, 직업에 대한 여성용 '정해진 답'을 거부하고, 글을 쓰며 자기 삶을 만들어 간 사람. 조는 이 글에서 언급한 [자기 결정] 속 문장들의 살아 있는 증거 같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독서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입니다.", "소설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그와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