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는요.

동네에서만 보낸 이 주 간의 휴식

by 주연

올해가 시작될 때부터 10월을 기다렸다. 10월 10일 임시 공휴일 지정이 되지 않더라도 열흘 간의 긴 휴가. 10월이면 날씨도 좋을 때니까 가까운 일본이나, 아니 제주라도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으로 비행기표를 검색해 본 나는 가격 란에 표시된 숫자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시장의 가격이란 무릇 수요가 반영되기 마련이라지만 평상시보다도 두 배가 훌쩍 넘는 비행기의 가격, 그뿐이 아니었다. 숙박 업소의 가격도 덩달아 올라있었다. 명절 연휴라 차가 밀려 비행기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는 것은 더 힘들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긴 연휴가 아까워 이곳저곳을 검색해 봤다. 그러나 연휴는 연휴인 것일까. 어림으로 계산해 봐도 4명의 가족이 함께 이동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어디 여행 가려는 계획은 접고, 또 운전해서 다른 지역을 여행해 보려는 계획 역시 접고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연휴를 맞이했다.


그러나 연휴 중 예상치 못한 조문을 해야 해 두 번의 상갓집을 다녀왔는데 그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동네에 머물렀다. 바쁜 일상으로 쉼이 필요했는데 빨간 숫자가 연달아 있는 달력은 또 쉼 대신 여행을 욕망하게 만들었다. 매우 현실적인 이유로 여행을 접었는데 중요한 계획 없이 동네에 머무는데 오랜만의 여유가 나쁘지 않았다.


긴 연휴가 시작되는 날, 명절이 지나고 나면 피로해진 몸으로 집에서 쉬고 싶을 나를 위해 막내와 동네 책방에 다녀왔다. 연휴 전인데도 북적북적 사람이 많은 책방에 들어서니 마음이 좋았다. 긴 휴가를 위해 몇 권의 책을 담고 아이의 책도 담았다. 청소년 도서 지원 사업으로 1권은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 무료로 지급된다니 2권을 고르라는 내 말에 아이가 1권도 충분하다며 사양한다. 하. 아들이여.


그렇게 책을 고르고 다음날엔 동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최근 들어 자주 가게 되는 카페인데 카페의 커피 맛도 맛이지만 카페를 꽉 채우는 클래식 음악이 정말 좋다. 그래서 늘 커피를 주문하고 스피커를 유심히 본다. 클래식은 저렇게 좋은 스피커로 들어야 하는구나. 마치 내 눈앞에서 첼로의 현을 움직이는 듯 음악이 생생하다. 남편과 감탄하며 음악이 정말 좋다는 얘기를 연달아 하자 사장님께서 흐뭇한 눈길을 보내신다. 사장님의 눈길이 닿은 곳에는 트럼펫 같은 관악기가 있다. 관악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선곡한 클래식 음악이라니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누리기에는 넘치는 귀호강이었다.

그런데 저 자리는 딱 글쓰기 친구들과 함께 오고 싶은 자히였다. 글쓰기 친구들도 모두 동네 친구들


어떤 날은 남편과 찻집에도 갔다. 카페에 가면 으레 에스프레소 음료를 마시게 되는데 연휴라 잠을 많이 자서인지 낮동안 커피를 많이 마시면 밤중 수면에 방해가 되는 듯했다. 함께 카페에 가고 싶기는 하니까 커피뿐 아니라 다양한 차가 있는 카페에서 둘 다 읽던 책을 들고 가 읽었다. 당연히 집에서도 차를 내려 책을 읽어도 되지만 계속 집에 있으려니 콧바람을 좀 넣어주고 싶었달까? 새로운 이름의 향긋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으니 활자에 더 집중하게 된다.

둘 다 낯선 이름의 차를 마시고 향긋함에 반했다. 골라온 책도 너무 좋았고


지저분하게 길어버린 머리도 잘랐다. 이 동네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런저런 미용실을 떠돌다가 이젠 어떤 스타일로 잘라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미용실에 예약해 둘 다 지저분한 머리를 정리한다. 사실 집에서 가장 머리가 지저분한 건 둘째인데 왜 사춘기의 아이들은 이리도 머리 자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인지. 막내에게도 다가온 사춘기를 이해해 주기로 하며 그럼 다음에 자르라고 남편과 나만 미용실을 간다. 내 예상보다는 조금 짧게 머리를 잘랐는데 가벼워진 머리칼 때문에 마음도 한 결 가벼워졌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난 직후에는 명절 내내 과식했던 내 몸을 위해 집 앞 천변을 조금 달리기도 했다. 많이 먹은 만큼 몸이 무거워졌는지 뛰는 것이 쉽지 않아 평소보다 느리고 짧게 뛰었지만 그래도 조금 뛰니까 가벼워진 기분이다. 이렇게 가벼워진 기분으로 시원하게 샤워한 뒤 자기 전 보드카를 한 잔 마시기도 했다. 비운만큼 아니 그보다 더 채운 연휴였달까.


또 하루에 세끼를 먹어야 했는데 차를 좀 타고 나와 장을 봐도 되었지만 주로 집 앞 로컬 마트에서 재료를 구했다. 그리고 그 재료들로 만든 음식과 명절 연휴에 얻어 온 음식들로 소박한 집밥을 차렸다. 그렇게 차린 음식과 어쩔 수 없는 한 잔의 술을 곁들여 밤이 늦도록 남편과 대화를 주고받았고 그런 음주의 다음날은 게으름을 실컷 누리며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공식적인 이동은 명절 연휴를 보내기 위해 친정과 시댁으로의 이동이었는데 두 곳 모두 나의 동네와 같은 지역에 있다. 심지어 시댁은 비슷한 동네라서 시댁 식구들과 즐겁게 저녁식사를 하고 시부모님의 배려로 집에 와서 편안히 잠을 잤다. 집에 오는 길에는 늘 그랬듯 막내와 명절을 보내러 집을 비운 동네 친구의 집에 가서 친구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물을 갈아주고 왔다. 고양이와 막내가 잠시 노는 동안 자주 놀러 가 편안한 친구의 집안 의자에 앉아 귀여우려고 태어난 그들을 바라보는 눈호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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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에게만 곁을 주던 친구의 고양이. 귀여운 두 생명체 보기만 해도 행복해짐


이렇듯 긴 연휴 동안 빛나는 일정이 없었다. 연휴 동안 비행기 티켓 값이 그렇게 비쌌음에도 가까운 나라부터 먼 나라까지 다녀온 사람도 있었고 국내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있었다. 하다못해 가까운 아웃렛에도 다녀와 쇼핑을 즐겼다는 이도, 명절을 맞이해 고급 호텔 식사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일정에 비하면 나의 동네 여행 일정은 소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풍경을 보기 위해 무리해서 떠났다면 많이 지불한 여행 비용이 생각나 여행 중간중간 계속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 또 비싼 한 끼 식사의 경험은 호사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겠지만 지나친 지출이 부담스러워 나를 마냥 즐겁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렇게 간이 작은 나는 소박한 나의 모양에 맞는 연휴를 보냈다. 모두 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에서. 새로운 나라와 도시도 좋지만 소박한 일정도 내 안에서 빛날 수 있게 하는 곳이라서 나는 내 동네가 참 좋다. 편안한 복장으로 나의 상태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이곳에서 연휴 기간 동안 우리는 충분히 시간을 누렸다. 이 동네에 살게 된 지도 얼추 10년이 되어간다. 예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 시간인데 생각해 보면 유치원 생이던 막내가 중학생이 되는 시간이었으니 강산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이런 우리의 변화를 쌓아 온 이 동네에서 우리는 이렇게 내 안에서 빛나는 우리만의 역사를 계속 만들어 가고 싶다.


(@표지 사진은 역시 동네 카페 이 글은 동네 단골 카페에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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