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람들
오은 시인은 작가의 첫 책 읽기를 좋아한단다. 첫 작품에 담긴 설렘과 풋풋함 때문일까.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일까. 노래도 비슷해서 자꾸 찾아 듣는 첫 앨범이 있다. 김현철의 1집이 그렇다. '춘천 가는 기차'가 담긴 이 앨범은 늘 내게 아련한 그리움을 준다. 최애곡은 '비가 와'로 '눈이 오는 날이면'과 함께 날씨에 맞게 혹은 꼭 비나 눈이 오지 않더라도 일부러 찾아 듣는다. 어려서부터 들어서일까? 이 음악들이 내 감성을 키워온 것만 같다. '동네'에 대해 써보자는 주수희의 제안에 제일 먼저 김현철의 '동네'를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짧지 않은 스무 해를 넘도록
나의 모든 잘못을 다 감싸준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내가 걷는 거리거리 거리마다
오 나를 믿어왔고
내가 믿어가야만 하는
사람들 사람들
그리고 나에겐 잊혀질 수 없는
한 소녀를 내가 처음 만난 곳
둘이 아무 말도 없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돌아다니던 그곳"
고작 스물밖에 안 된 사람이 썼다기엔 동네에 대한 내 생각과 너무 닮아있다. 동네에 대해 글을 쓴다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우리 동네의 좋은 점, 좋은 동네의 요건 정도다. 내 조건은 까다롭지 않아서 산책로가 있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맛집(피자집, 치킨집, 밥집 등), 맛난 커피집, 빵집이 있으면 된다. 하지만 역시 동네의 구성원들이 좋아야겠다. 서로를 믿을 수 있어서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동네가 되도록. 그 아이가 자라서 좋아하는 소녀 혹은 소년과 지치도록 걸을 수 있는, 그런 동네가 좋은 곳이지. 노래의 후렴구가 ‘사람들 사람들~'이듯. 그러다가 어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가 진짜 내 동네네. 어쩌면 여기가 어른이 되고서는 나의 첫 동네가 아닐까?
지금, 여기를 나의 첫 동네라고 명명할 수 있는 데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큰 몫을 한다. 자녀로서 살던 동네 말고 독립하고 보금자리가 되는 내 동네. 독립은 이미 오래전에 했지만, 친한 사람들이 동네에 있는 경험은 어른이 되고서는 처음인 것 같다. 신혼집은 대전이란 낯선 곳에서 주말, 방학 때만 지냈고, 아이가 생기고는 다시 친정에 붙어 지내느라 서울로 집을 꾸려 주말부부로 지냈다. 그러다가 다시 온 대전은 낯설었지만 직장을 이 도시로 옮기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좀 나았다. 그때의 내게 기쁨을 준 건 도서관이 근처에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지금은 내 좋은 사람들이 근처에 산다는 점이 큰 행복을 준다. 산책하다 만난다거나 문득 같이 산책을 할 수도 있고, 카풀을 해서 이동하기도 한다. 무람없이 집에 초대해 차나 술을 즐길 수 있고, 우리 고양이 겨울이의 화장실이며 끼니를 대신 봐주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 만난 사람들과 동네에서 이런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게 특별하게 느껴져, 지금에야 여기가 내 동네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첫사랑이 끝나고서야 아쉬움이 드는 것처럼. 처음의 경험이란 얼떨떨해서 지나고 나서야 그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꾸리는 관계의 커뮤니티, 좋은 사람을 이웃으로 가진 마음 또한 그럴지 모른다. 이렇게 동네 이웃으로 만나는 시간에도 한계는 있고, 지나고 나면 분명히 아쉬울 것이므로. 하지만 쓰기의 특성이 회고라는 점에서, 동네 이웃으로서의 첫 마음을 지금, 되새기고 싶다. 동료 창작자 싱수와 더 자주 차를 마시며 서로를 북돋고 싶다. 나는 그에게 종종 삶에 대한 젊은 감각을 선물 받곤 한다. 주수희 만남은 더 밭게 가져야겠다. 같이 동네 서점에 가고, 북토크에 가고, 술 한 잔을 할 때마다 얼마나 좋은지, 하고 싶은 건 왜 자꾸 생기는 건지. 서로를 깊게 이해하고 있는 모임에 소속되어 있어 두터운 안정감을 느낀다.
좋은 걸 보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사람들이 다 내 주위에 있다는 건 정말 큰 복. 자,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란지교를 꿈꾸며’ 아니 꿈만 꾸지 말고 맑고 향기로운 사귐에 더 적극적이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러한 우정을 시작할 수 있고, 사귐과 더불어 취미를 같이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 김현철, ‘동네’
@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