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책상 프로젝트
나만의 책상은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 부모님 집에서 처음 갖게 되었다. 중간 톤의 원목 나무와 짙은 초록색이 조화를 이루던 책상의 모습이 아득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공부에 별 취미가 없던 나였기에 그 책상에서 공부를 한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학교 강의실이나, 동네 도서관, 혹은 카페에서 주로 벼락치기를 하던 기억이 오히려 더 선명하다.
현재 우리 집 서재의 책상은 듀얼모니터와 무지개 불빛이 반짝이는 컴퓨터를 소유한 남편의 차지이다. 나는 보통 거실 식탁에서 활동한다. 게다가 카페에 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해서 밖에서 글을 쓰고, 뜨개를 하고, 무언가 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던 새해 첫날, 갑자기 책상이라는 존재에 확 꽂혔다. 이른바 '나만의 책상 프로젝트'의 시작은 올해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꿈과 관련이 있다. 2025년에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식탁에서 할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노트북 거치대를 펼쳤다가 또 접었다가, 아이패드를 열었다가 다시 합체하고, 무언가에 집중하다가 밥때가 되어 식사 준비를 하려면 후다닥 전부 치워야만 했다. 심지어 뜨개질을 하다가 한쪽에 치우고 밥을 먹을 때면 국을 뜨다가 괜히 털실이 숟가락에 함께 올라오지는 않을까 상상한 적도 있다.
진지하게 꽂혀버린 나는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금전적인 부분과 집안의 공간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은 프로젝트였다. 처음에는 나중에 천천히 고민해 보자던 남편이 나의 집요한 작전에 조금씩 스며들었는지, 문득 이케아 방문 날짜에 대해 함께 논의하자고 말을 꺼냈다. 그때는 이미 제대로 한 우물 파는 내가 이케아 어플로 마음에 드는 제품들에 대한 사전조사를 끝낸 상태였다. 바로 그 주 주말, 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토요일 오후 시간대의 이케아에 방문하였다.
수많은 쇼룸들을 제치고 오직 책상 하나만을 바라보고 직진했다. 안락한 거실을, 환하게 밝은 주방을, 옷을 정갈하게 걸어 놓은 옷방을 지나고 지나... 찾았다, 책상! 내가 원하는 하얀색 상판과 다리로 결합된, 사이즈만 조금 다른 전시 제품을 발견한 것이다. 요리조리 살펴보고, 만져보고, 그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며, 결국 최종 합격 버튼을 눌렀다.
이케아 매장의 가구 구매 경험이 없는 어리둥절한 상태의 우리는 주변에 있던 직원의 도움으로 구매방법을 터득했다. 또다시 시작된 직진본능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겨, 크고 작은 재고들이 있는 커다란 창고에 도착하였다. 책상의 상판, 다리, 기타 부속품들을 하나씩 찾아서 집어 들어 이동식 카트에 싣고 계산대로 향했다. 삑, 삑, 삑, 삑, 삑. 결제 완료 후 의자 시트를 미리 접어둔 차 뒷좌석으로 나의 책상 조각들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껏 부푼 마음으로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전했다. 만학도이자 글을 읽고 또 짓기를 즐겨하는 배우자의 꿈을 든든하게 응원해 주는 남편에게 언제나 참 감사하다. 감사의 의미를 담아 의자만큼은 창고에 보관 중인 남편이 예전에 쓰던 사무용 의자를 꺼내어 사용하기로 했다. 돈도 절약하고 잠자고 있던 의자에게 다시 생명도 불어넣고, 일석이조이지 않은가?
남편과 내가 함께 조립하여 완성된 나만의 책상. 그날 저녁,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하루 종일 나는 책상에서 놀고, 먹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신년 계획을 세우며 시간을 보냈다.
잠시 쉬는 시간에 함께 보던 TV에 나온 한 사람이 책상에서 무언가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에
“우와, 저 사람도 책상에서 뭐 한다!”
라고 나는 외쳤고,
“원래 다들 책상에서 뭐 해."
라고 남편은 대답하며 웃었다.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되어 다시 갖게 된 나만의 책상이라니. 이 충만한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젠가는 그저 자연스럽게 제 위치에서 잠잠히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될 수도 있겠지. 우선 당분간은 이 행복을 만끽해보려 한다. 필연적으로 필요한 상판을 덮어줄 가죽 매트와 펜 수납함, 스탠드 조명 그리고 블루라이트 안경을 주문함으로 책상에게 새 친구들을 만들어 줄 계획이다. 이 책상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달으며 기록하고 만들어낼 나의 날들을 더없이 고대한다.